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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리에 나가면 산소 벌초를 대행해 주는 업체의 홍보 문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요즘 거리에 나가면 산소 벌초를 대행해 주는 업체의 홍보 문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 장희용
대부분 가정이 그렇지만 추석을 앞둔 이맘 때쯤이면 벌초라는 것을 하지요. 저도 이번 주말에 벌초를 하러 큰 아버님 댁에 갑니다.

벌초를 하는 날에는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를 비롯해 사촌들과 당숙까지 모두 큰아버님 댁에 모입니다. 벌초는 일요일에 하지만 식구들은 대부분 토요일에 옵니다. 큰아버님 댁 사촌 형님께서 가축을 기르시는데, 매년 통 크게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즐거운 삼겹살 파티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위가 약한 편이라 옆에서 잔심부름을 주로 하는 편입니다. 사촌 형님들이 능숙한 솜씨로 돼지를 잡는 동안 장작 숯불도 만들고, 매끈한 돌을 주워 깨끗이 닦고, 고기에 뿌릴 왕소금도 준비하고, 텃밭에 가서 상추, 깻잎, 고추 등도 따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모든 일을 남자들이 다 준비한다는 겁니다. 명절 때는 남자들이 '왕'이니 이 날만큼은 여자들도 '여왕'이 되어야 한다면서 형수님들이 강력히 항의(?)했지요. 이에 큰아버님과 작은 아버님 그리고 제 아버님 등 우리 집 안 최고 어른들께서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니들 말 잘했다. 암 그래야지"하면서 '여왕'의 직위를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준비가 다 되면 본격적으로 삼겹살 파티에 들어가는데,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무슨 전쟁터 같습니다. 고기 굽는 장소를 3군데나 만들어 놓지만 50여명이나 되는 대 식구다 보니 고기 굽는 속도가 먹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당연히 익은 삼겹살을 잡기 위한 젓가락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지요.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고기 한 점 구경하지 못합니다. 사촌들 중 제가 제일 막내인지라, 특수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특수한 임무라는 게 뭐냐면 그 전쟁터 속에서 이유를 불문하고 '여왕'님들 드릴 고기를 확보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바탕 즐거운 전쟁을 치르고 나면 삼삼오오 모여 그동안 각자에게 있었던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버님과 큰아버님, 작은 아버님은 중학교 이상 된 아이들 데리고 미리 산소를 둘러보시면서 이런 저런 옛날 얘기를 들려주시곤 하지요.

그렇게 저희 집안의 벌초는 단순히 조상님의 묘를 깎는 것이 아니라 벌초라는 계기를 통해 식구들이 정겨움을 나누는 자리가 됩니다. 물론 명절에도 모이기는 하지만 다들 결혼을 한 탓에 처갓집도 가야 하고,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야 되니 아침 성묘만 지내고는 각자 목적지로 떠납니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집안 식구들이 이렇게 정겹게 모이는 자리는 벌초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인지 벌초라는 것을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몇몇의 사람들은 그것이 시간도 빼앗기고 힘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오늘 신문에서 난 기사를 읽고 나서입니다. 기사에서는 요즘 벌초대행업체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하더군요. 기사에 따르면 7월 말부터 시작된 벌초대행 의뢰가 8월 들어서면서부터는 아예 폭주를 하고 있다고 하던데, 제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경우 이곳저곳 합치면 대략 하루에 30-40건씩 들어온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 수치는 일반적으로 드러난 업체에 대한 대략적인 수치이고 보면 그 수많은 벌초대행 민간업체까지 따지면 아마 100건도 넘을 거라는 제 생각인데, 결코 무리한 추측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수치를 전국적으로 따지면 하루에 수천 건도 넘겠지요.

물론 다 나름대로 이유야 있겠지만, 그 이유라는 것이 저로서는 정당한 이유라기보다는 '핑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사를 보니까 벌초대행을 의뢰하는 사람 대다수가 고향을 떠난 사람들,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인데 그 이유라는 것이 '시간을 없어서'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시간이 없다는 것은 '바쁘다'는 의미하고, 또 '고향이 멀어서'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그거 다 핑계 아닙니까?

아무리 바빠도 휴가는 다 가데요. 혹시 사정이 있어 남들 갈 때 못 가면 어떡하든 날을 잡아서 하루라도 휴가를 가던데, 바빠서 벌초할 시간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건 그만큼 마음이 없다는 겁니다. 그냥 '누가 했든 묘만 깍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자기 마음 속에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바쁘다는 건 핑계입니다.

그리고 '고향이 멀어서' 그렇다는 것도 인정이 안 됩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휴가 때 그렇게 고속도로 막혀서 몇 시간씩 고생하면서도 휴가를 가잖아요. 그리고 가까운 데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2~4시간, 아니 그 이상 시간 걸리는 먼 곳으로 가잖아요.

놀러갈 때는 안 바쁘고 벌초 할 때는 바쁘다고? 설령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야지요. 나를 낳아 주신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가 계신 곳 아닙니까? 그리고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낳아 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곳이잖아요. 1년에 한 번 있는 일인데,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할아버지와 할머니한테 "저 왔습니다!" 인사하고 누워 계신 그 자리 불편한 데 없는지 한번 둘러보는 것이 자식으로서, 그리고 후손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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