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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어트와 미용에 특히 좋다는 싱싱한 쌈
ⓒ 이종찬
요즈음 '웰빙'이란 거센 바람을 타고 밭에서 유기농법으로 키운 싱싱한 채소를 싸먹는 쌈밥이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쌈밥에 사용하는 채소는 상추나 토종배추, 시금치, 깻잎처럼 날것으로 그냥 쌈을 싸먹어야 그 향과 맛이 뛰어난 게 있는가 하면 양배추나 호박잎처럼 뜨거운 김을 살짝 쏘여 익혀 싸먹어야 제맛이 나는 것들도 있다.

쌈은 우리 조상들이 논과 밭에서 땀 흘려 일을 하다가 끼니 때가 다가와 찬거리가 마땅치 않을 때 밭에서 자라는 여러 가지 채소잎을 따다가 물에 설렁설렁 씻어 된장과 함께 싸먹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쌈은 여름철 입맛이 통 없을 때 쌈 위에 밥을 올린 뒤 멸치젓국이나 강된장에 싸 먹으면 금세 사라진 입맛이 되살아나곤 했다.

내가 어릴 때에도 밭일을 나가신 어머니께서는 끼니 때만 다가오면 늘상 밭에서 자라는 상추나 고구마 잎사귀, 작두콩 잎사귀 등을 따오곤 하셨다. 그리고 그 잎사귀들을 우물물에 깨끗히 헹군 뒤 상추는 그대로 밥상 위에 올리고, 고구마 잎사귀나 작두콩 잎사귀는 살짝 삶아 익힌 뒤 강된장이나 멸치젓국과 함께 밥상 위에 푸짐하게 올렸다.

나와 형제들은 그런 싱싱한 쌈이 있는 밥상을 마주할 때마다 쌀이 서너 개 섞인 시커먼 보리밥을 두어 그릇씩 게눈 감추듯 비워내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나와 형제들이 쌈을 맛갈나게 싸먹을 때마다 "사내아이들이 쌈을 너무 좋아하면 나중에 장가 가서 딸만 줄줄이 놓는다"며 다른 반찬도 골고루 먹게 하셨다.

▲ 쌈밥전문점 창원 '초원'집
ⓒ 이종찬

▲ 밑반찬으로 열무 물김치, 김치, 콩나물, 오뎅볶음, 콩잎 조림, 부추전 등 10여 가지가 나온다
ⓒ 이종찬
하긴, 그래서 나는 지금 딸만 둘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늘상 싱싱한 쌈을 참 좋아했다. 사실, 요즘도 나는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거나 입맛이 떨어질 때면 그때 어머니께서 삶아 주시던 그 호박잎이나 작두콩잎, 고구마 잎사귀 등이 못견디게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그런 쌈을 싸먹는 생각만 해도 입맛이 절로 다셔진다.

"저희 집은 얼리지 않은 싱싱한 생삼겹살을 솥두껑에 구워 밭에서 금방 따온 싱싱한 쌈과 함께 싸먹도록 하지예. 요즈음 사람들은 고기도 한 점 없이 그냥 멸치젓갈과 강된장에 쌈을 싸먹으라고 하면 인상부터 찌푸리지예. 타고날 때부터 잡식성인 사람이 풀만 먹고 우째(어찌) 살라는 거냐는, 무언의 항의라고 봐야지예."

지난 19일(금) 저녁 6시. 경남민예총 준비위원들과 함께 도지사 간담회를 마치고 찾은 쌈밥정식 전문점 '초원'(경남 창원시 용호동 덕산빌딩 2층)집. 지금으로부터 3년 앞부터 쌈밥정식을 팔고 있다는 이 집 주인 정광수(56)씨는 "요즈음에는 누구나 웰빙, 웰빙 해서 그런지 쌈밥정식을 나이 드신 분보다 젊은 처녀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말한다.

정씨는 "처음 쌈밥정식을 차림표에 넣었을 때 나이 드신 분들과 계모임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옛 향수를 떠올려주는 음식"이라며 자주 찾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웰빙 바람이 슬슬 불기 시작하면서 쌈밥이 다이어트나 미용에 아주 좋다는 소문과 함께 직장생활을 하는 젊은 처녀들이 떼지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덧붙인다.

▲ 쌈밥정식을 시키면 생삼겹살을 구워준다
ⓒ 이종찬

▲ 삼겹살도 먹고 쌈밥도 즐기고
ⓒ 이종찬
실제, 30여 평 남짓한 식당 안에는 정씨의 말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이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아리따운 창원 처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쌈밥을 맛깔스럽게 입에 넣고 있다. 빨간 립스틱이 예쁘게 칠해진 작은 입을 한껏 벌려 동그랗게 싼 쌈밥을 잇따라 쏘옥 쏘옥 넣고 있는 그 모습이 볼수록 깜찍하고 귀엽기만 하다.

쌈밥정식(5천원)과 소주 한 병을 시킨 뒤 먼저 나온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그 발랄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주인 정씨가 밑반찬부터 먼저 내놓는다. 열무로 담근 물김치를 비롯한 배추김치, 다시마조림, 콩나물, 오뎅볶음, 부추무침, 부추전, 멸치액젓으로 절인 콩잎, 멸치젓국 등 10여 가지의 반찬이 금세 상 위를 빼곡하게 채운다.

그 중 멸치액젓으로 절인 노오란 콩잎이 참 맛깔스럽게 보인다. 그래. 붉은 고춧가루가 벌겋게 묻은 이 짭쪼롬한 콩잎은 경상도에서만 유일하게 먹는 음식이라고 했지, 아마. 그리고 이 콩잎은 요즈음 웬만한 식당에서는 구경조차 하기가 힘든 귀한 음식이 아닌가. 콩잎 한 잎 벗겨 입에 넣자 구수한 멸치젓갈 내음과 함께 혀끝을 톡톡 치는 맵싸한 맛이 어릴 때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그 콩잎 맛 그대로다.

잠시 뒤 주인 정씨가 쌈이 가득 담긴 접시와 쌀밥 한 공기를 식탁 위에 올린다. 날것으로 나온 쌈은 상추와 시금치, 토종배추, 깻잎, 풋고추, 다시마요, 삶은 것으로는 양배추와 호박잎 등이다. 이어 주인 정씨가 솥두껑이 올려진 가스레인지 위에 생고기 삼겹살을 올리자 잘잘하게 썰어진 삼겹살이 금세 '치익칙' 소리를 내며 노르스름 하게 구워지기 시작한다.

▲ 경상도에서만 먹는다는 멸치액젓으로 조린 노오란 콩잎
ⓒ 이종찬

▲ 상큼하고 고소한 토종배추에도 한번 싸먹어보고
ⓒ 이종찬
여러 가지 쌈과 솥두껑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생삼겹살은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입에 침이 가득 고이게 한다. 싱싱한 상추와 토종배추, 시금치 위에 노릇노릇 익어가는 삼겹살을 참기름에 찍어 쌈을 싸서 입에 쏘옥 집어넣자 고소하고 쫄깃하게 씹히는 삼겹살의 맛이 끝내준다. 언뜻 쌈밥을 먹으러 온 게 아니라 삼겹살을 먹으러 온 듯한 착각마저 인다.

다시마와 삶은 양배추 위에 하얀 쌀밥을 올려 멸치액젓을 얹어먹는 상큼한 그 맛도 끝내준다. 삶은 호박잎 위에 쌀밥 한 숟가락 올려 강된장을 얹어 동그렇게 싸먹는 맛, 그 향긋하고도 구수한 감칠맛도 어릴 때 어머니의 손맛이 솔솔 배어난다. 쌈밥을 꾸울꺽 삼키고 난 뒤 된장에 푸욱 찍어 한 입 베어먹는 풋고추의 알싸한 맛도 그만이다.

"쌈밥의 맛을 한 차원 더 높게 즐기기 위해서는 쌈마다 얹어먹는 양념장을 달리 해야 합니더. 상추와 토종배추, 시금치 잎사귀에는 삼겹살과 강된장, 쌀밥 한 숟가락을 올려 쌈을 싸야 향긋한 쌈맛과 구수한 삼겹살의 맛이 잘 어울리지예. 하지만 다시마와 삶은 양배추 잎사귀에는 멸치액젓을 얹어먹어야 제맛이 납니더."

삼겹살과 쌈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나오는 된장찌개 맛도 정말 시원하고 구수하다. 사실, 된장찌개 하나만으로도 소주 한 병과 밥 두어 공기쯤은 거뜬하게 먹어치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집 된장찌개는 집에서 담근 된장을 푼 물에 멸치 맛국물을 부은 뒤 미더덕과 바지락, 두부, 매운고추, 호박, 버섯 등을 뚝배기에 넣고 센불에서 팔팔 끓여 만든다.

▲ 다시마에 멸치액젓을 올려서 한번 싸먹어보고
ⓒ 이종찬

▲ 마지막으로 나오는 된장찌개의 시원하고도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 이종찬
주인 정씨는 "5천원을 받고 이렇게 푸짐하게 차려주고 나면 어디 남는 것이 있겠느냐?"라는 기자의 물음에 "다다익선"이란 네 글자를 읊으며 빙그시 웃는다. 게다가 자주 찾는 손님에게는 원하기만 하면 천 원이 할인된 식권까지 내준다고 하니, 이 식당의 수지 타산에 대해서 무얼 더 물어볼 게 있겠는가.

"다음에 오시면 제주에서 나는 갈치로 만든 갈치구이나 갈치찌개도 한번 드셔 보이소. 저희 집에서는 옛날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그 방식, 즉 경상도 방식으로 갈치구이나 갈치찌개를 만들기 때문에 경상도가 고향인 사람들은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수확의 계절, 가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요즈음 가까운 들판에 나가보면 지천으로 널린 게 싱싱한 호박잎과 고구마잎이다. 이럴 때 밭주인에게 말만 잘하면 호박잎이나 고구마잎 정도는 그냥 따올 수도 있다. 산들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불어오는 여름 막바지, 오늘 식탁 위에는 싱싱한 쌈을 올려 향긋한 쌈맛도 즐기고 건강도 챙겨보자.

▲ 삼겹살은 상치와 토종배추에 싸먹어야 제맛이 난다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대진고속도로-마산-동마산 나들목-창원-창원시청 후문 앞-덕산빌딩 2층-초원생삼겹(055-281-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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