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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동환
땅 속에서 잔뜩 불거진 고구마가 더위 따위 아랑곳없이 소록소록 잘도 잔다(왼쪽 위). 호박잎이 감때사납게 짙푸르다. 옛날에는 시골 뒷간 언저리에 호박 천지였는데. 볼일 다 보고나면 뚝 끊어다 쓱 닦고는 몇 잎 더 끊어다 쪄서 쌈 싸먹기도 했지(오른쪽 위). 대추가 제법 굵다. 며칠만 지나도 짙은 갈색 옷 입겠는 걸? 뭘 처먹고 저리 오롯하게 살이 올랐을까(사진 아래).

ⓒ 이동환
끝물 앞둔 고추가 그런 대로 약 올랐다. 그저 실한 놈으로 따다가 된장 찍어 먹으면 달짝지근한 게 찬밥 물 말아 넘길 때 딱 좋다(왼쪽 위). 어라, 해바라기 씨가 꽤 여물었네? 고놈 참, 맥주 안주에 맞춤인데(오른쪽 위). 뉘 집 담장에 담쟁이덩굴이 치렁치렁하다(왼쪽 아래). 밤송이는 아직 좀 멀었다. 그래도 입추랑 말복이랑 거뜬하게 보내버린 녀석이다. 무시할 수 없지(오른쪽 아래).

ⓒ 이동환
고 녀석들 참! 왕곡동 개울이 시끌시끌하다. 그래, 맘껏 담가라. 며칠만 지나면 돈 주고 담그래도 못 담글 걸(사진 위). 세상에, 칡덩굴이 무슨 '북청사자놀이' 나오는 사자탈처럼 버드러졌다. 덩굴이 저 정도니 땅 속에서는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저 덩굴 다 걷어 엎드린 칡 몽땅 캐면 웬만한 집 한 채는 너끈히 덮겠다(사진 아래).

ⓒ 이동환
뉘 집 오르는 길 양쪽에 꽤 볼만한 풍광이 잠시 눈길을 잡는다. 목각상은 김삿갓을 새긴 것도 같은데 너무 살쪘다. "백 년도 못 사는 인간들이 천 년의 근심으로 사느냐"며 일갈하던 김삿갓이 저렇게 배 내밀면 안 되지, 암만! 항아리에 단지 올린 정성으로 무엇을 기도했을까. 생긴 꼴 그대로 베어다 조금 손 본 얼굴상들이 무섭기는커녕 정답다.

ⓒ 이동환
백운사가 코앞이다. 제법 나무냄새가 난다. 시멘트 벽 냄새만 맡다가 나무냄새를 맡으니 살 것 같다. 올라오느라 지친 몸에 생기가 인다. '피톤치드'와 '테르펜' 덕분이다. 피톤치드는 주로 식물들이 미생물을 물리치기 위해 내뿜는 항균물질이다. 테르펜은 피톤치드에 함유되어 있는 성분으로 사람 몸에 들어왔을 때 대단한 효능을 발휘한다.

피부를 자극해 신체 활성을 높이고 피를 잘 돌게 한다. 또 심리안정 효과가 크고 살균작용도 한다. 테르펜의 다양한 약리효과는 일일이 설명하기 숨 가쁠 정도다. 우리가 삼림욕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테르펜 때문이다.

ⓒ 이동환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1-1번지에 있는 백운사(白雲寺). 원래는 지금 위치에서 동쪽으로 약 3km 지점인 백운산 중턱에 있었다. 1894년(고종 31년)에 발생한 산불로 모두 타버렸는데 그 다음 해에 청풍김씨 문중이 나서 지금 자리에 약 20 평 남짓한 암자를 지어 그 전통과 이름을 옮겼다.

백운사를 대표하는 승려로는 경흔스님과 금오스님이 있다. 우리나라 근대불교사를 대표하는 선승이었던 금오스님이 계심으로 오늘날 백운사의 위상이 부각되었다. 이후 1971년에 정화스님이 뒤를 이으면서 법당을 확장하고 증축해 오늘에 이르렀으며 1988년에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 이동환
풍경소리 한 번 들어볼까 했더니 바람 간 곳 없네. 더위에 풍경 때릴 바람마저 숨었나보군. 목이 빠져라 쳐다보다가 잉걸아빠 숨넘어갈 뻔했지. 맑은 소리? 포기했지. 힘 들어라.

ⓒ 이동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막 패기 시작한 벼들이 논마다 아우성이다. 알 불리다 가려운지 사르륵거리는 꼴이 밉지 않다. 더운 바람과 농지거리하느라 빤히 들여다보는데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덥다 더워, 헐떡이며 에어컨만 찾는 바로 이 시간. 우리 사는 언저리마다 자연은 가을준비에 한창이다. 언제나 그랬듯 자연은, 우리가 잠시 잊은 새 아무도 모르게 다음 막을 준비해왔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쉬는 날이나 잠시 짬 나실 때, 더위에 지지 마시고 가까운 곳을 정해 한 번 걸어보세요. 흐르는 땀 닦다보면 금세 상쾌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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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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