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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열
6월 하순 <그곳에 가면 나를 잊는다>란 제목으로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통방산 산행기를 쓴 적이 있었다. 첫 회에는 통방산에 살고 있는 들꽃들의 이야기를, 두 번째에는 정곡사를 중심으로 스님과 함께 한 통방산의 풍경을 전했었다.

통방산의 사계절을 모두 알고 있는 스님과의 동행이었기에 단순한 여행객으로서 다른 곳을 여행 했을 때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좁은 등산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군락을 이룬 은방울꽃, 한여름 하늘을 향해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던 하늘나리, 야생 상태로 거의 대한 적이 없는 더덕도 지천이었다.

ⓒ 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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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야생 상태의 더덕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틈만 나면 산에 가서 시간을 보냈던 20대에도 말이다. 통도사에서 시작해 표충사로 하산한 영남알프스 자락을 2박 3일에 걸쳐 종주한 20대의 끝자락에 밀양 표충사 뒤 사자평의 고사리 분교에서 더덕을 만난 적은 있었다.

89년 10월 3일은 개천절이자 고사리 분교의 가을 운동회 날이었다. 손바닥만한 교실이 하나뿐인 고지 분교의 가을 운동회는 사자평 마을 사람들의 축제였다. 흥에 오른 사람들과 여행자들 모두 하나가 되어 축제를 즐겼다. 사자평 더덕을 넣어 담근 막걸리는 삼 일간 산행으로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고도 남았다. 밀양역에서의 기차 시간 때문에 표충사까지 뛰다시피 하면서도 허리춤에 더덕 막걸리 한 병을 꿰차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기차 시간에 대기 위해 고사리분교부터 함께 뛰기 시작한 부산 총각이 모퉁이를 도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숲 속에서 더덕 한 뿌리를 캐왔다. 워낙 영남알프스에 자주 오는지라 오래 전에 발견한 더덕을 아껴둔 것이라 했다. 고사리 분교에서 만난, 영남알프스 종주 기념 가을의 선물이라 했다.

ⓒ 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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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을철이라 꽃은 없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재배되지 않은 야생의 더덕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더덕꽃은 지리산 자락의 평지 절 실상사 앞에서 처음 만났었다. 실상사 담장 아래 너른 밭에 지주 대를 감고 오르는 더덕 덩굴에 더덕꽃이 다닥다닥 달려 있었다.

많은 야생화 농원에서 애써 가꾼 우리의 야생화를 대하는 것도 고맙고 기쁜 일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들꽃을 야생의 상태에서 만나는 것은 더욱 행복한 일이다. 언젠가는 야생에서 저 혼자 스스로 자라고 있는 들꽃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스님과의 동행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평생 처음으로 야생 상태의 더덕을 만났다. 한두 뿌리도 아니고 더덕 밭이었다. 처음으로 더덕을 만난 행운에 앞, 뒤 잴 것도 없이 더덕을 보았노라고, 캐었노라고 자랑하고 뿌듯해 했다.

산행을 마치고 정곡사로 돌아와 캔 더덕을 보니 정말 후회되었다. 아무리 더덕밭 이었다 한들 그것들을 캐어내어 더덕무침을 만들 것도 아니고 더덕구이를 할 것도 아니면서 순간적인 물욕에 한 생명을 시들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축 늘어진 줄기, 손가락 마디 굵기 만한 뿌리 이미 저질러진 일,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본래의 자리는 떠나게 했지만 통방산에 자라게 하고 싶었다. 알맞은 위치를 잡고 땅을 파고 다시 더덕을 심고 지주 대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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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꽃이 필 여름이 되었다. 더덕의 안부가 궁금했다. 여름철 장마에 녹아내리지는 않았는지. 대전에서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양평군은 내내 호우경보가 발령되고 있었다. 비포장 산길이 엉망이 되어 흙탕물이 흐르는 풍경이 스님의 홈에 올라왔다.

더덕은 통방산의 바람, 햇살, 이슬, 달빛, 통자 돌림을 개들, 스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다시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옮겨 심은 덕분에 다음에 꽃이 늦게 피어 엄청난 비바람에 녹아내린 다른 더덕과 달리 아직도 탱탱한 꽃을 맘껏 자랑하고 있었다.

녹색의 꽃이 아름다웠다. 자주색 속살, 노란 수술, 청명하게 종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 아늑한 꽃 속에서 개미들이 쉬고 있었다. 가을철 씨앗이 여물면 씨앗을 받아 여러 곳에, 여러 사람에게 네 삶을 퍼트리마. 그것으로 네 자리 옮김을 용서하렴.

정곡사 가는 길. 칡꽃이 지천이다. 너무 성해 산을 망가트리기도 하지만 저 아름다운 꽃과 향은 미워할 수가 없다.
정곡사 가는 길. 칡꽃이 지천이다. 너무 성해 산을 망가트리기도 하지만 저 아름다운 꽃과 향은 미워할 수가 없다. ⓒ 이승열

더덕꽃 옆의 참취꽃. 봄에는 나물이 되어, 여름에는 별모양의 아름다운 꽃이 되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더덕꽃 옆의 참취꽃. 봄에는 나물이 되어, 여름에는 별모양의 아름다운 꽃이 되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 이승열

익모초꽃. 여름철 땡볕에서 놀다 지쳐 더위를 먹으면 엄마는 익모초를 확독에 갈아 즙을 한종지 마시게 했다. 그 쓰디쓴 맛, 배앓이가 바로 사라지고 기운이 차려졌다.
익모초꽃. 여름철 땡볕에서 놀다 지쳐 더위를 먹으면 엄마는 익모초를 확독에 갈아 즙을 한종지 마시게 했다. 그 쓰디쓴 맛, 배앓이가 바로 사라지고 기운이 차려졌다. ⓒ 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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