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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인천 자유공원에서 보수우익단체와 실향민들이 맥아더 동상 사수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달 17일 인천 자유공원에서 보수우익단체와 실향민들이 맥아더 동상 사수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 지난 7월 17일 인천 자유공원. 진보세력의 맥아더장군 동상 철거집회를 막기 위해 자유총연맹,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무한전진, 인천지구 황해도민회 등 보수단체 회원 1천여명이 모였다. 마이크를 잡은 한 우익단체 회원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는 맥아더장군 동상 철거반대를 위해 모였습니다. 혹시 노무현 정부에 대해 비판하려는 분이 있으면 즉시 나가주세요. 여기는 정치집회장이 아닙니다."

순간 일부 참가자들이 "무슨 소리"냐며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우익집회에서는 빠짐없이 노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이 쏟아졌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14일 보수우익단체 회원들이 북한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를 저지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14일 보수우익단체 회원들이 북한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를 저지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2. 14일 오전 8.15 민족대축전 참가 북측 대표단이 이날 오후 서울 동작동 현충원을 방문할 예정인 가운데 현충원 앞에 우익단체 회원 20여명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이 모일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곧 실망하는 표정.

재향군인회, 보수교회 등 더 이상의 지원군이 오지 않는다. 정오쯤 한 참가자는 "재향군인회는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서 이런데 나오는데 눈치를 본다"며 "이런데 수구세력은 오지 못한다. 일반 시민들, 진정한 보수만 올 수 있다"고 다른 참가자에게 말했다.

극우세력이 분열하고 있다. 굵직한 현안 때마다 한 목소리를 내왔던 우익단체 내부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 우익단체들이 주최하는 집회 참가자 규모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우선 지난 14일, 8.15 민족축전 북측대표단의 현충원 방문 반대 집회에는 불과 20여명만이 현장에 나왔다. 무한전진, 북핵저지시민연대, 자유개척청년단,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참가 단체명은 많았지만 정작 인원은 거의 없었다. 이날 오후 민족축전 본행사가 열린 서울 상암경기장 앞 집회에는 불과 5, 6명만이 모여 취재 갔던 기자들을 멋쩍게 했다.

14일 저녁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 개막식과 남북 축구경기가 열리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앞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시위를 벌이던 6명의 우익단체 회원들이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14일 저녁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 개막식과 남북 축구경기가 열리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앞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시위를 벌이던 6명의 우익단체 회원들이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러한 분위기는 광복절 행사로 이어졌다. 오래 전부터 광복 60주년 기념행사로 준비돼 온 '대한민국 정통세력 광복60주년 국민대회'(정오, 서울역 앞)와 '북핵폐기, 북한해방을 위한 국민대회'(오후 3시 광화문 동화면세점)에 각각 1천여명의 보수우익 인사들만 참여했다.

특히 다른 때도 아닌 60주년 광복절 행사에 우익단체가 비난해 왔던 북한 인사들이 남한을 찾은 비상(?) 상황인데도 이 정도 인원만 모였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충격일 수도 있다. 친미시위와 노 대통령 탄핵찬성 집회에 수만명의 인파들이 몰렸던 것과 너무 대조적이었다.

북측 현충원 방문에 20명 모여... 분열현상 뚜렷

이러한 현상은 우익단체들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여론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것에서 출발한다.

지난 2000년 남북한 정상이 만나 6.15 공동선언을 발표한 뒤 남북은 화해와 협력의 기본 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한 채 여전히 북한을 "빨갱이 집단"으로 보고 있고 남한 정권을 "빨갱이 정권의 하수인"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은 현실에서 많이 벗어난다. 또 행사 때마다 인공기를 소각하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보여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번 북측의 현충원 참배 반대 이유에 대해서도 이들은 "6.25 전쟁과 테러 등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갑자기 현충원 참배를 한다는 것은 나중에 김일성 무덤에 우리더러 참배하라고 하려는 수작"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내부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맥아더 동상 철거반대 집회에서 '노 정권 비난 거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다.

한나라당 의원이 연사로 나선 광화문 집회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앞에서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주최로 열린 '북핵폐기·북한해방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반북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이 연사로 나선 광화문 집회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앞에서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주최로 열린 '북핵폐기·북한해방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반북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자민련 의원이 연사로 나선 서울역 집회  '대한민국 정통세력 8·15국민대회'가 국민행동본부 주최로 15일 낮 서울역광장에서 열렸다.
자민련 의원이 연사로 나선 서울역 집회 '대한민국 정통세력 8·15국민대회'가 국민행동본부 주최로 15일 낮 서울역광장에서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와 함께 지난 6월 우익단체 내부의 불협화음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광복절 행사는 같은 성격의 우익집회가 두 곳으로 나뉘어 열렸다. 서울역 행사는 국민행동본부(대표 서정갑)가, 광화문 동화면세점 집회는 반핵반김국민협의회(공동의장 김동길 등)가 각각 주최했다.

이들은 불과 6월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단체였다. 그러나 이들의 내분 양상은 국민협의회 현6기 집행부(위원장 임광규)와 서정갑씨가 맡았던 전임 집행부의 갈등에서 시작됐다.

현 집행부가 지난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모 일간지에 전임 집행부가 운영비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면서부터다. 급기야 서정갑씨를 주축으로 한 전임 집행부 세력이 국민협의회와 별개의 보수조직을 구성하게 된 것.

이런 가운데 재향군인회와 보수 교계 등 인원몰이를 해주던 단체에서 발을 빼면서 우익세력 분열현상이 가속화 됐다.

주장 비현실적... 우익세력 내분, 분열에 큰 몫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우익단체 내부에서도 다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15일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약간 의견차이가 있었을 뿐 다른 사람이 보는 것처럼 분열이나 갈라서는 것은 아니다"며 "그리고 오늘 같은 날 여러 보수단체가 흩어져서 행사를 여는 것도 좋지 않은가"라고 보수단체 분열론을 부인했다.

그러나 국민협의회 소속 박찬성 목사는 "우리는 순수한 시민단체"라며 "서정갑씨의 국민행동본부는 자민련과 깊은 연관이 있는 정치집단"이라고 국민행동을 비판했다. 이날 국민행동본부 집회에는 김학원 자민련 의원이 참가한 반면 반핵반김집회에는 이규택 한나라당 의원이 참석했다.

보수우익단체 분열의 뿌리는
지난해 9월 시작.. 서정갑-임광규 결별

수십 만명의 인파를 동원하며 "친북 좌파 노무현 정부 타도"와 "김정일 축출"을 한 목소리로 높였던 보수우익 단체의 분열양상이 수면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4월 22일.

보수우익단체의 총집합체라 할 수 있는 반핵반김국민협의회가 회비 모금 광고를 <동아일보>에 게재하면서부터다. 이 광고에서 6기를 맞이한 반핵반김국민협의회(운영위원장 임광규)는 전임 5기 서정갑 집행부 체제의 수입·지출내역의 불투명성을 제기했다.

이에 서정갑 대표는 "국민행동본부를 와해하려는 음모"라고 맞섰다. 겉으로 보면 '돈'을 둘러싼 잡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보수우익단체내 의견 충돌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각계 보수우익 인사들이 참여,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5공화국 인사인 안응모 전 내무부 장관을 비롯한 과거 독재정권의 주역들까지 끼어 논란을 일으켰다.

이때 서정갑 대표는 과거 독재 정부와 연루된 원로들의 퇴진과 능력 있는 젊은 보수인사들의 발탁을 제기해 '원로'들의 눈총을 받았다. 일종의 세대교체론이자 주도권을 누가 확보하느냐 문제인 셈.

그러나 서 대표는 물러서지 않고 지난해 12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9·9 비상 시국선언에 나선 1700여명 원로 중 상당수는 3·5·6공화국 시절에 한 자리씩 하면서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이며, 나이만 들었다고 모두 원로대접을 받을 수는 없다. 더러는 집에 가서 쉬는 게 좋다"며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러자 서 대표의 공격목표가 된 보수우익인사들은 자유시민연대측 힘을 빌어 지난해 12월 7일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의장단 회의를 소집해 서 위원장을 해임하고, 현 위원장인 임광규 변호사를 후임으로 선출했다.

서정갑 대표는 반핵반김국민협의회의 정관에 따라 위원장직을 유지하다 그해 12월 23일 스스로 물러났다. 이때부터 보수단체는 '한 목소리'는 내도, '한 장소'에는 모이지 않는 다소 기이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정갑 대표의 국민행동본부와 임광규 위원장의 반핵반김국민협회의는 15일 똑같은 주장을 외치는 집회를 서울역과 광화문에서 따로 열었다. 이들은 "따로 행사를 여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고 말하고 있지만, 보수우익단체가 다시 한자리에 모이기에는 갈등의 골이 깊어 보인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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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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