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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과일만 쪼아먹는 까치의 날카로운 부리. 마치 독수리같다.
맛있는 과일만 쪼아먹는 까치의 날카로운 부리. 마치 독수리같다. ⓒ 이승열

까치와 까마귀가 은하수에 오작교를 만들고 1년만에 해후한 견우와 직녀의 눈물이 온 나라에 호우경보를 발령시켰던 지난주 칠월칠석날. 가슴 졸이며 지켜봤던 엄마의 기관지 내시경 결과가 종양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 논산군 양촌면 전원식당으로 향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가야곡면이나 우리 가족의 지도에 그곳은 언제나 양촌이다. 전원식당은 사과, 배, 감, 포도, 복숭아 등 온갖 과수를 재배하면서 매운탕 집까지 겸하는 우리 가족이 고향집처럼 생각하는 곳이다.

고향마을 순덕이 언니같은 아주머니.
고향마을 순덕이 언니같은 아주머니. ⓒ 이승열
1984년 620사업으로 명명된 계룡대 이전에 따라 졸지에 고향을 빼앗긴 사람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좀 젊은 축에 드는 아직 기운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시 농사를 지으러 당진 간척지로, 고향땅을 좀처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고향 언저리에 눌러 앉았다. 양촌은 옛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는 고향 신도안 바로 옆 동네이기도 하다. 만식이 아저씨네, 셋째 외삼촌네, 희교 아저씨네 등 네댓 가구가 자리를 잡은 곳이다.

피를 말리는 여러 검사에 지친 엄마가 영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계시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양촌에 가서 쏘가리 매운탕을 드시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돈 많이 쓴다고 벌써 손사래부터 치신다.

"저, 신도안집이에요. 엄마가 통 식사를 못하셔서요. 혹 복숭아 익었어요. 엄마가 그 집 복숭아 제일 좋아하시잖아요."
"복숭아는 딱 알맞게 익었는데, 올해는 영 시원찮게 달렸네요. 그냥 오세요. 먹을 만큼은 달렸어요."

요 놈이 짖으면 아주머니가 나온다.
요 놈이 짖으면 아주머니가 나온다. ⓒ 이승열
한상 가득 차려진 나물, 쏘가리 매운탕이 벌써 끓고 있다. 국물의 반을 차지하는 민물새우. 딸 셋에 조카 하나, 엄마 아버지가 국물 한 점 남기지 않고 매운탕을 해치운다. 누른밥에 차 안에서 먹을 누룽지까지 한 아름 받아들고 마당으로 나서니 아주머니는 벌써 복숭아를 한 봉지 가득 따 놓았다. 복숭아 값을 받지 않는 아주머니, 결국 아이 손에 돈을 들려주시는 엄마. 아주머니가 다시 밭으로 달려가 복숭아를 한 아름 더 따 봉지 속에 넣는 것으로 복숭아 셈은 일단락되었다. 이번엔 아저씨가 조카에게 야생까치를 보여주겠다고 나선다.

녹색 포획틀에 갇힌 까치가 다섯 마리. 설이 되면 고향을 찾는 이의 소식을 동구 밖에서 제일 먼저 고향집에 전해주는 친근한 까치가 아니다. 목숨을 다해 폐사의 종을 울려 목숨을 구해준 선비에게 은혜를 갚은 치악산 상원사의 까치는 더욱 아니다. 날카로운 부리가 독수리 같다. 고등학교 때 본 영화 <오멘>에 나오는 재앙을 예고하는 기분 나쁜 '까마귀'보다 더 위협적이다.

그물 밖으로 고개를 밀어넣고 빠져 나가려 안간힘을 써도 소용 없지롱.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자 저 작은 틈으로 들어와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물 밖으로 고개를 밀어넣고 빠져 나가려 안간힘을 써도 소용 없지롱.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자 저 작은 틈으로 들어와 빠져나가지 못한다. ⓒ 이승열

부리를 맘껏 드러낸 까치들. 좁은 철망 안에서의 날개짓이 무섭다.
부리를 맘껏 드러낸 까치들. 좁은 철망 안에서의 날개짓이 무섭다. ⓒ 이승열

금방이라도 새장에서 튀어나와 인간을 쪼아댈 것 같은 살벌한 날짐승이 좁은 새장 안에서 퍼덕거리고 있었다. 우리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던 길조(吉鳥) 까치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인간과 함께 살며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며 길조(吉鳥) 까치가 천덕꾸러기 해조(害鳥)로 변해버린 것은 생태계의 먹이사슬의 파괴로 까치의 천적이 사라지고 개체수가 기하학적으로 늘고 나서부터이다.

국립환경연구원이 파악한 까치 등 유해조류에 의한 피해액은 연간 50억 원대. 그 중 까치에 의한 피해가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을 전하며 사랑 받던 길조 까치가 이처럼 공공의 적이 된 이유는 사과, 배 등 과일을 맛있는 것만 닥치는 대로 쪼아 먹어 과수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아이큐가 70~80 정도의 학습능력이 뛰어난 까치는 화약총, 거울반사기 등의 퇴치기에는 금방 적응해버려 별 효과가 없다 한다. 까치 피해를 막기 위해 과수원 전체에 그물망을 치기도 하지만 평당 가격이 2000원으로 비싼 데다가 한 해밖에 쓸 수 없어 그 또한 어려움이 많다 한다.

ⓒ 이승열

까치가 눈치채면 새로운 것을 다시 개발하고. 까치와의 전쟁은 계속된다.
까치가 눈치채면 새로운 것을 다시 개발하고. 까치와의 전쟁은 계속된다. ⓒ 이승열

아저씨는 올해 처음으로 가로, 세로, 높이가 2~3m 정도인 철망틀을 설치했다. 철망틀 속에 다른 동네의 까치를 넣어두면 텃세가 심한 까치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다른 까치를 쫓아내기 위해 포획틀 안의 틈새로 들어온다. 들어올 때는 까치 맘대로지만 한번 들어온 까치는 절대 맘대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설치한 지 겨우 삼일 째인데 벌써 다섯 마리가 포획되었다. 한 마리 포획할 때마다 면사무소에서 3000원씩 쳐줄 만큼 까치는 이제 골치 덩어리로 전락해 버렸다.

한여름 불볕더위 속에서 벼가 익고 있다. 풍성한 가을을 준비하며 과일도 영글고 있다. 머리 좋은 까치와 한 해의 수확을 지키려는 농부들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많은 지자제에서 시조(市鳥)로 정했던 까치를 다른 새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 한다. 이러다가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내일이래요"라는 노래조차 금지곡이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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