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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지구 유대인 정착촌 철수에 반대하는 2명의 이스라엘 소녀들이 8일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간선도로 입구에서 데모 중 경찰에 붙잡혀 울먹이고 있다.
가자 지구 유대인 정착촌 철수에 반대하는 2명의 이스라엘 소녀들이 8일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간선도로 입구에서 데모 중 경찰에 붙잡혀 울먹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지난 8월 10일 오후 6시, 예루살렘 통곡의 벽 광장에는 가자정착촌 철수를 반대하는 2만5천의 우익 유대인들이 모여 대대적인 절규의 기도회를 가졌다. 다음날 일간지에는 가자철수를 반대하는 '눈물의 통곡의 벽'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 여파를 몰아 다음 날인 11일에는 15만의 시민이 텔아비브 라빈 광장에 모여 가자 철수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두 집회 모두 통곡의 벽과 텔아비브 라빈 광장에 가장 많은 시위대가 모인 행사로 기록됐다. 왜 이들은 통곡의 벽과 텔아비브 라빈 광장에 모여든 것일까?

성전파괴일 다음날, 유대인에 의해 쫓겨나는 유대인들

3천 년 전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건설한 예루살렘 성전은 바빌론에 의해 파괴됐다. 그리고 바빌론에서 귀환한 유대인 포로들이 건설한 제2성전은 로마에 의해서 파괴됐다. 약 4백여 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일어난 두 사건에는 묘한 우연이 있다. 두 번의 성전 파괴 모두 유대력으로 같은 달, 같은 날에 일어난 것이다. 바로 아빕월 9일, 유대인들은 성전파괴일을 '티샤 베아브', 즉 '아빕월 9일'이라고 부른다.

유대력에 따르면 올 성전파괴일은 바로 오늘 8월 14일이다. 매년 있는 기념일이지만 올해 성전파괴일은 좀 더 남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다름 아닌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가자정착촌 철수 시기를 성전파괴일 다음날인 8월 15일로 정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스라엘 사회학자들은 올 성전 파괴일이 종교적 성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사건과 결부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2003년 12월, 샤론 총리의 가자 정착촌 철수 발표 후 1년8개월 동안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최대의 정치적 소용돌이라고 할 만큼 길고 긴 우익과 좌익 간의 투쟁에 휩싸였다.

애초의 가자정착촌 철수 시점은 2005년 7월 20일이었다. 우익의 어떠한 공격에도 굳건히 견디던 샤론 수상도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인 랍비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철수 시기를 3주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랍비들은 성전 파괴를 기억하면서 온 백성이 금식하며 슬퍼하는 성전 파괴일에는 이사가 금지된다는 유대교의 해석을 근거로 가자정착촌 철수 연기를 주장했다. 만약 7월 20일에 가자 정착촌 철수가 시작되면 성전파괴일인 8월 14일까지 철수가 계속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결국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 같았던 샤론 수상도 랍비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철수 시기를 성전파괴일 다음 날인 8월 15일로 전격 연기했다.

하지만 샤론 수상이 예측하지 못한 것이 있다. 성전파괴일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가자정착촌 철수가 묘한 배합 효과를 내면서 이스라엘인들을 자극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착촌 철수 반대론자들이 성전파괴일을 전후로 대규모 시위를 조직화하는 악몽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착촌 철수 반대론자들은 성전 파괴일이라는 종교적인 기념일에 유대인들에 의해 유대인들이 쫒겨 나는 가자청착촌 철수라는 정치적 비극을 절묘하게 덧씌우고 있다. 철수 반대론자들이 가자 지구의 구시카티프 외에 성전 파괴 현장인 통곡의 벽에서 주로 시위를 벌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가자지구는 하나님이 주신 땅... 물러날 수 없다

8월 10일,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 모인 가자 정착촌 철수 반대 기도회를 보도한 한 이스라엘 신문.
8월 10일,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 모인 가자 정착촌 철수 반대 기도회를 보도한 한 이스라엘 신문.
현재 가자정착촌 철수를 반대하는 우파 유대인 중심에는 바로 종교인들이 있다. 이들은 1967년 6일 전쟁과 73년 욤키프(대속죄일) 전쟁 이후 요르단 서안에 들어가 정착촌을 일군 개척자들이었다. 당시 종교인들은 '불법 거주'를 이유로 자신들을 내몰던 이스라엘군 앞에서 옷을 찢으며 "나를 내모느니 차라리 내게 돼지고기를 먹여라"고 저항했다(돼지고기는 유대인들이 종교적으로 가장 혐오하는 음식이다).

이처럼 종교인들은 요르단 서안 팔레스타인 지구의 점령지 내에서 정착촌을 확장하는 데 선봉에 서왔다. 그들은 요르단 서안 땅이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고 생각했고 하나님이 주신 땅에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땅을 이방인들에게 넘겨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며 죄악이라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땅을 이방인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종교적인 신념과 유대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분쟁의 땅에서 유대인을 불러 들여야 한다는 정치적인 명분이 충돌하면서부터 발생했다. 명분과 명분이 충돌하면서 그 접점은 만날 수 없게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이 양 극단에는 정착촌 철수를 지지하는 좌파와 그것을 반대하는 우파가 있다. 여기에다 우파는 법과 질서의 테두리에서 투쟁해야 한다는 온건 우파와 죽어도 이 땅을 내줄 수 없다는 극우파로 나뉜다.

정착촌 철수 반대 투쟁의 선봉에 선 이들은 시온주의 우익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시온주의 기치 아래 옛 유대 땅에 국가를 세우고, 온갖 위험에도 팔레스타인 깊숙이 정착촌을 세우며 유대인의 땅을 확장해 왔다. 하지만 샤론 정부의 정착촌 철수 결정에 직면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투쟁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혼란에 부딪혔다.

그들은 가자정착촌 철수에 동의할 수도 없지만, 국가를 부정하면서 샤론 정부의 철수 정책에 반대할 수도 없었다. 시온주의자들이 어찌 이스라엘 국가를 반대할 수 있단 말인가?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그토록 고대하던 땅에 세운 유대 국가 이스라엘을 말이다. 하지만 이제 시온주의자들은 건국 50여년 만에 가자정착촌 철수 정책에 반대하면 국가를 반대하는 운명에 처하게 됐다.

샤론 총리에게 저주를... 갈 데까지 간 우익의 분노

샤론 총리를 암살하겠다는 우익의 음모는 오래 전부터 나돌았다. 이를 단순 협박으로 볼 수 없는 것은, 팔레스타인 독립을 추진하던 이츠하크 라빈 전 수상이 1995년 11월 극우 청년에 의해 암살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1일 일간지 <예디옷아하로노트>에는 가장 극우적인 랍비가 샤론에게 저주를 내려 죽게 해 달라는 종교 예식을 행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라빈이 암살되던 1995년 11월에도 똑같은 저주 예식이 있었고, 어쨌든 라빈은 2주 후 암살됐다. 라빈 수상을 암살한 '이갈 아미르'라는 대학생은 마지막 법정 증언에서 "하나님이 라빈을 죽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아직 감옥에 있는 그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암살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력 행사도 늘어나고 있다. 8월 초 한 극우 이스라엘 병사가 정착촌 철수에 반대하며 무장 탈영,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아랍인이 탄 버스에 무차별 보복 난사해 아랍인 4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보기 드물게 이 사건을 유대인에 의한 첫 테러로 규정했고, 분노한 아랍인의 돌에 맞아 사망한 이 탈영병의 시신을 국군묘지에 안장할 것을 거부했다.

이 탈영병은 바로 '카흐'라는 극우 단체의 회원이었는데 카흐는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이스라엘 유대인 저항 단체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단체로 꼽힌다. 오슬로 평화협정이 순탄하게 진행 중이던 지난 1994년, 헤브론의 막벨라 사원에서 기도하던 아랍인들에게 총을 난사, 수십 명이 사망케 한 극우 유대인도 바로 카흐 소속이었다.

사건 직후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극우 성향의 무장 탈영병이 9명이나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 군과 경찰은 최선을 다해 이들을 체포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유사 사건 재발 위험은 아직도 도사리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정착촌에 대한 권리가 없다

한 유대인 정착촌 소년이 4일 가자지구의 네처 하자니 유대인 정착촌에서 유대인 거주자들의 무기 반납을 앞두고 헬멧을 들고 있다.
한 유대인 정착촌 소년이 4일 가자지구의 네처 하자니 유대인 정착촌에서 유대인 거주자들의 무기 반납을 앞두고 헬멧을 들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처음부터 유대인들이 무력 시위를 일삼았던 것은 아니었다. 2003년 12월 가자정착촌 철수가 발표됐을 때 이를 반대하는 우파 유대인들은 민주적인 시위를 벌였다. 최초의 대규모 행사는 가자에서 예루살렘까지 사람들의 손과 손을 연결하는 인간띠 잇기였다.

하지만 우파 유대인들은 당내 표결, 국회 표결, 국무회의 표결, 철거 예산안 표결 등 정착촌 철수를 위한 매 단계마다 투쟁의 수위를 높여 갔다. 하지만 샤론 총리는 반대하는 장관을 경질하고 반대하는 의원은 연합정부에서 탈퇴 시키며 철수를 밀어 붙였고 결국 정치적인 모든 절차를 마쳤다.

이러한 민주적인 절차에도 불구하고 유대교 랍비들은 반정부 투쟁을 부추겼다. "하나님이 준 이 땅을 이방인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랍비들의 선언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스라엘 내에서 정부에 대항하는 민병대가 만들어질 기미가 보였고, 결사 저항을 다짐한 극우 유대인들은 자살 폭탄까지 감행할 뜻을 내비쳤다. 심지어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도 반대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반발은 극우 랍비들이 '군 명령에 불복종하라'고 선포하는 초유의 사태를 낳았다.

이들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세워지기 전부터 이슈브(정착촌)를 이루며 살아왔고, 그 이슈브들이 연합해 세운 국가인 이스라엘이 도리어 자신을 내쫓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 랍비들은 수상이 아닌 "이 땅을 넘겨주려는 사악한 샤론 총리로부터 이 땅을 지켜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본래 국가를 불신한다고 정치학자들은 말한다. 지난 2천여 년 동안 전 세계를 떠돌던 유대인들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 받지 못했다. 국가는 호의적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유대인을 핍박하는 가해자였고, 언제 자신들에게 등을 돌릴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라는 생각이 뿌리 박혀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가자정착촌에서 자신들을 내쫓는 국가는 건국 이전부터 살아온 자신과 그 조상들에게 총뿌리를 들이대는 가해자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결전의 날 8월 15일, 가자지구에서는 무슨 일이

물론 대다수 이스라엘인들을 비롯해 가자정착촌 거주자들도 철수 정책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난 주 스타인메츠연구소의 평화 지표에서도 59%의 이스라엘인들이 가자정착촌 철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전 주에 있었던 이스라엘 최대 일간지 <예디옷아하로노트>의 여론 조사에서는 62%의 지지도를 나타냈다.

유대인들은 13일 저녁부터 성전파괴일 금식에 들어갔다. 14일 저녁까지 계속되는 올해 성전파괴일에는 성전 파괴를 슬퍼하는 기도 외에 유대인에 의해 유대인이 가자정착촌에서 쫓겨나는 비통함이 담긴 기도가 울려 퍼질 것으로 보인다.

금식이 끝나고 14일 자정부터 가자 지구는 더 이상 이스라엘 시민은 들어갈 수 없는 군사 지역이 된다. 그리고 4200여명의 군과 경찰, 그리고 기타 인원을 합해 약 5300여 명이 가자 정착촌 강제 철거에 투입될 예정이다. 15일 아침부터 가자 철수 작전이 시작되고, 철수가 완료되면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에게 넘겨져 완전한 팔레스타인의 땅이 된다(이스라엘 정부는 15, 16일 이틀간의 말미를 주고 17일부터는 강제 철거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과연 이스라엘 정부 가자 철수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준 자신의 땅에서 순순히 물러날 것인가? 그 역사적인 순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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