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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리
귀신 이야기도, 무당 이야기도 아니다. 이것은 성장이야기. 한 소녀가 슬픔과 아픔, 견디기 힘든 현실을 이겨내곤 마침내 행복해지는 그런 얘기다. ‘도깨비 신부’인 ‘선비’가 세상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만화 ‘도깨비 신부’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 말리를 만났다.

"무당 나온다고 다 무당 얘기는 아니죠."

"도깨비가 있는 것 같냐"는 말에 그녀는 조용히 웃는다.

"인간이면 누구나 신적인 존재는 느낄 거라 생각해요. 어떤 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는 일은 누구나 경험하지 않나요? 눈에 안 보이니 그냥 무시하고 사는 것뿐이죠."

<도깨비 신부>는 흔한 말로 '무당', 동시에 그녀의 작품 제목이다. 세습무의 피를 이어받은 소녀 '신선비'와 도깨비, 잡귀, 온갖 사연 많은 혼령들, 또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이 같은 세상에 뒤엉켜 울고 웃는 이야기다.

'한국적 상상력'이 머리와 가슴을 때렸다

<도깨비 신부>는 처음부터 만화팬들 사이의 큰 주목거리였다. 흔해 빠진 궁핍한 상상력, 소재 고갈에 시달리는 우리 만화계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그녀의 안정된 데생 솜씨에 감탄하고 전혀 새로운 이야기에 홀딱 반해버렸다. 처음부터 신인답지 않다는 평가가 그녀의 뒤를 따라붙기 시작했다. "너무 늦게 데뷔해서 신인답지 않다는 말을 듣는 건가?" 그녀는 기분 좋은 너스레를 떤다.

"책이 한권씩 나올 때마다 선비가 성장했고, 저도 성장했어요. 한권 한권 완성되어가는 작품을 볼 때면 자책이 들만큼 저는 제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해요. 가끔은 마음이 아프죠. 과잉칭찬과 과소평가에 시달렸나 봐요. 그래도 하루하루 늘고 있다는 생각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도깨비 신부>가 어떠어떠한 작품이다, 하는 식의 규정은 너무 어려운 일. 폭발적 반응만큼이나 쏟아져 들어오는 갖가지 평가들에 '귀 얇은' 말리는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꼭 한국문학이다, 하고 작심하고 그린 것도 아닌데, 모두들 그 부분에만 집중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면 좀 안타깝기까지 했어요" 그렇게 외부의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쓰던 것을 버리자고 마음먹은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사실 칭찬 받고 싶어 안달인 적도 있었어요. 3권을 다 그리고 날 때쯤에야 차츰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도깨비 신부>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리자면… 이건 그냥 성장만환데…." 그녀가 말끝을 흐린다. 신선비라는 소녀가 아픔을 겪고, 두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그러다 덧붙인다. "차라리 제 인생의 주제를 물어주세요"

말리는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저 그즈음 우연히도 도깨비에 관한 어떤 책을 읽었던 것에서 온 행운일까. '도깨비'가 참 맛난 캐릭터라는 생각에 단박에 끌리고 말았다. 우리의 도깨비와 일본의 오니가 서로 다른 점도 참 인상적이었지.

하지만 조금 더 찾아보니 한국, 중국, 일본의 3국 도깨비들이 공통의 특징을 갖는 점에 즐거움을 느꼈다. 재미가 있었다. 이것저것 관련 도서들을 닥치는 대로 제 것으로 만들었다. 도깨비 모습에 대한 부분은 <한국 탈 전집>이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점집에도 두루 돌아다녔다. 몇몇 유명한 무당집들은 잊을 수가 없다. 대문에 발을 들이기까지 많이 떨기도 하고, 얼토당토 않는 질문에 면박을 받기도 했다. 실감나는, 혹은 리얼리티를 위해 무당들의 눈에는 진짜 귀신이 어떻게 보일지, 어떤 소리로 들릴지, 어떤 존재감이 있는지 참 많이도 캐묻고 돌아다녔다. 그렇지만 스스로 다른 작가들에 비해 유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만화가' 아닌 길은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

ⓒ 홍지연
그녀는 늦깎이다. 여유로운 성격 때문인지 혹은 욕심이 많아서인지 그토록 바라던 만화가는 서른이 넘어 됐다. 대여섯 살 되던 해부터 언니들 따라 만화책 보던(그녀는 딸부자집 막내딸이다) 어린아이가 진짜 만화가가 되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그래도 "만화가 아니면 되고 싶은 게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만화를 떠나지 않았다. 만화 관련 통신동호회를 기웃거리고, 서점에 가면 무조건 만화책을 펴들었으며, 선배 만화가들의 각종 강연을 들었다. 20대 말에는 몇 번인가 공모전에도 응모했지만 그때마다 미역국을 먹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시간들이다. 자료를 모으고, 데뷔 경로를 알아보는 동안 지금의 '말리'가 만들어졌으니까.

"개인적으로 늦게 (만화가가) 되어 다행이에요. 그땐(20대) 유치한 생각만 하곤 했어요.(웃음) 그래도 '난, 언젠가 만화가가 되고 말 거야'라는 생각만은 변치 않았죠."

잡지시장이 한창 휘청이기 시작할 때 그녀는 연재가 아닌 단행본 작업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밥 말리를 끔찍이도 좋아하는 탓에 그녀의 필명이 '말리'로 정해진 것도 이때다.

만화가로 살면서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행복해졌다. 수입은 일천하지만 비로소 삶을 사는 듯하다. 1권 전체 분량의 원고를 안고 무작정 세주문화사를 찾아갔을 때의 설렘을 그녀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2권이 나온 직후 세주가 문을 닫게 돼 작업이 중단됐을 때에도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끝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덕인지 다시 ‘허브’를 통해 연재를 시작할 수 있지 않았나. 다른 신인작가들에 비하면 얼마나 운이 좋았던가. 그녀의 말을 빌자면 "인연이 좋았다".

기왕 늦은 걸음, 찬찬히 오래 내딛고파

<도깨비 신부>는 지난해 한국만화가협회에서 주는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받았다. 또, 지난달에는 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 선정하는 이달의 만화로 선정됐다.

정말 감사하지만 그러나, 말리에게 상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다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일이 즐거울 뿐. 1권의 슬픔과 2권의 공포, 3권의 재미…, 자신의 얘기에 사람들이 기특하게도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을 때 그녀는 희열감마저 느꼈다.

지금 그녀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은 안타깝게도 '만화가'가 아니라 '병원 야간당직 약사'라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자리다. 만화가로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대학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 홍지연
"사실 의지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만화가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너무 커요. 전 스스로 독립에 대한 열망이 많은 편인데, 그 덕에 약사가 됐죠."

문득 기막힌 일이 하나 생각난다. 자신이 약사자격증 시험을 보는 일에 대해 만화문화센터 강사였던 한 선생님이 "너는 약사 시험 보려고?"라는 말로 모질게도 가슴을 후볐던 기억.

"내 대답은 듣지도 않으시더군요.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그런 건데,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인데…, 라고 얼마나 말하고 싶었는지 몰라요."

'하고 싶은 일'-만화그리는 일은 그녀에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허브를 통해 연재를 시작한 지 딱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가운데 최근, 그녀는 ‘도깨비 신부’를 비정기 연재로 돌렸다. 하나를 그려도 지독히 공을 들이기 때문일까. 왜 한 달 내내 쉬는 때가 한 번도 없는 걸까. 아르바이트다, 만화다 해서 그동안 참 많이 지쳤던 모양이다. 열정만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현실에는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 나 광수 털 그리는 거 너무 피곤해요.(웃음) 세상에 연재를 즐기는 만화가는 아마 없을 거예요. 다들 피고름을 짜내는 고통 속에 그려내고 있다구요. 다만, 연재로 작가의 생명력이 유지되는 것이겠죠. 그림그리기를 벅차하는 만화가라…참 우습죠? 그런데 더 오래 그리고 싶어서, 더 오래 사랑하고 싶어서 그래요."

'그릴 때'만큼은 언제나 외롭다. 적적한 책상을 두고 그녀는 이따금 누구를 향하는지 알 수 없게 "느그는 복 받은 줄 알아, 내가 얼마나 외로운데"라며 귀여운 부산 사투리로 푸념을 늘어놓는다.

어림잡아 10권쯤 가면 이야기가 얼추 갈무리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다음은 뭐가 될까. 특유의 화사한 그림체가 있는 일러스트집이 될지도. 어쩌면 여행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되는 것이었던가. 그녀는 스스로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다잡는다. 이왕에 늦은 출발이라면 천천히, 조금씩 즐기면서 걸어가보자. 여유롭게 완성될 테다. 완벽해질 테다. 그리고 더 오래 사랑받을 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News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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