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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카이 다케시, <니체의 눈으로 다 빈치를 읽다> 표지
ⓒ 개마고원
철학자들, "예술은 나의 문제"라고 말하기 시작하다

니체에게 있어 '르네상스'는 단지 과거의 예술 운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니체는 "그것이 나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도적 세계에 대한 준열한 공격'으로 르네상스를 정의했다. 니체는 근대 철학의 가치를 전복하는 자신의 작업과 르네상스를 동일시한 것이다. 니체로부터 예술은 사유의 문제가 됐다.

철학은 더 이상 관념의 세계에 안주하지 않는다. 데카르트부터 헤겔에 이르는 근대의 철학은 확고한 이성으로 불변의 진리를 완성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 사유에 이르면 철학은 관념의 절대성에 만족하는 대신 끊임없이 그를 상대화하고 감각의 세계로 비약해간다. 더 이상 '예술'이라는 감각 세계의 문제와 철학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생의 모순적인 상황에 직접 대면한 화가들과 철학자들

시대를 넘어서 생의 '극한'과 대결하는 예술가들은 많은 현대의 사상가들에게 발상의 출발점으로 기능했다. 철학자들과 시대를 넘어서 욕망했던 화가들의 '마주침'. 사카이 다케시의 <니체의 눈으로 다 빈치를 읽다>는 예술과 철학의 접점에 대한 책이다. 생의 극한적인 자기모순에 대면해 자신의 틀을 파괴하면서까지 '다른 것'이 되고자 했던 화가와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그려보려 했던 것이다.

천사에게 발기한 남성의 성기를 그려 넣는다거나, 그리스도교의 성자인 세례자 요한을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의 이미지로 그린다거나 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들은 파격적이다. 다 빈치는 니체에게 '선과 악을 포괄하는 지평'으로 다가왔다.

신에 의지해 삶을 '정체'시키는 것은 니체에게는 '데카당스(퇴폐주의)'나 다름없었다. '선악의 피안'을 주창했던 니체는 선도 악도 아닌 '흐름'의 삶을 추구했으며 그렇게 유희하는 삶을 통해 근대의 여명기를 표류했던 다 빈치의 핵심에 근접했다.

그러나 저자는 니체처럼 감각과 관념의 위계를 단순히 전복하는 것은 또 다른 일신교주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듯 하다. 사카이 다케시는 니체뿐만 아니라 아르토의 고흐론에 대해서도 극단적으로 고흐의 광기를 찬양하고 근대 사회와 정신 병리학을 최저의 가치로 폄하하는 것에 대해 '단순하고 일방적인 가치관의 전환'이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고흐의 그림은 서구의 자기 비판과 해체라는 모티프도 중요하지만 사랑에 의한 평온한 결합을 추구했던 의지도 중요하다고 말한다(고흐의 생애가 자살로 마감함으로써 그 의지는 끝내 비통하게 좌절했지만). 저자는 선악의 가치 구도를 단순히 뒤집는 것을 넘어 상이한 욕망들과 상이한 영역들이 대결하는 생의 '모순'적인 상황에 직접 대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이성'의 전제정에 대항하면서 또 다른 것의 전제정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한다.

바타이유의 '다르게 되는 것' : 현대의 '존재론'

'삶의 모순'이라는 바탕에서 '한계를 향한 욕구'야 말로 이 책의 전반을 추동하는 모티프다. 홀바인과 프로이트, 고야와 바타유, 고흐와 푸코, 칸딘스키와 코제브, 톰블리와 바르트. 이 책이 다루는 화가와 철학자들은 미술사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양식의 변천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형식에 대한 집착도, 꼭 다루어야 하는 내용에 대한 집착도 없다. '한계'와 '모순'에 부딪쳐 시대를 넘어 욕망하는 삶을 실천한 화가와 철학자들만이 오로지 저자에게는 중요하다.

홀바인은 3차원을 2차원에 옮기는 회화의 폭력을 감지하고, 공간에 가해진 살해행위를 묘사하기 위해 <대사들>에다 일그러진 해골상을 그려 넣었다. 고야는 에스파냐 민중이 처한 모순적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 데서 평가 받는다.

중심의 상실 위에서 주변의 긴박하고 투명한 유희를 묘사했던 칸딘스키. '가벼움'을 통해서 지적인 선도형 예술을 비판하고 생명의 가벼움과 풍요를 드러낸 톰블리. 모두 누가 더 중요하다고 할 것 없이 현대 사유의 어떤 주요한 '계기'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단순히 그림과 현대 철학에 대한 교양서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이 책은 흔히 비슷한 종류의 책이 그렇듯이 미술사나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한 요약 정리로 끝맺지 않는다.

책은 이제까지 해온 이야기를 요약하는 대신에 바타유의 '타자'에 대한 욕구, "다르게 되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으로 끝을 맺는다. 교양서로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과 근대 사회의 물화된 타성을 비판하는 현대의 '존재론'으로 읽혀질 것을 독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니체의 눈으로 다 빈치를 읽다 - 그림 속 철학 이야기

사카이 다케시 지음, 남도현 옮김, 개마고원(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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