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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속도위반결혼>
<축!속도위반결혼> ⓒ 길찾기
회사원인 유키는 밴드에서 기타를 치는 라이타와 연인 사이. 어느날 갑자기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유키. 임신 소식을 들은 라이타는 "아이를 낳아 줘, 아니 그 전에 결혼해 주세요"라고 프러포즈를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부모님의 승낙, 상견례, 결혼식 및 피로연 등을 부랴부랴 치러 가며 부부가 되고,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된다.

이 책은 작가의 실제 체험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만화답게 피임법, 부모의 허락을 얻는 법, 신혼집 구하는 법, 결혼식 시기와 방법, 출산 준비 등 실전에 적용할 만한 정보까지 풍부하게 담고 있는 코믹에세이다. 최근의 만혼 추세와 성 담론의 변화로 인해 보수성이 강한 TV 드라마에서도 공공연히 다루어질 정도로, '속도위반 결혼'은 우리 사회에서도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현상. 인생 경험이 적은 철부지 남녀 주인공이 특유의 낙천성으로 온갖 난관을 돌파해 나가면서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 시대의 풍속도를 대리 체험해 볼 수 있다. 실제 속도위반 결혼을 겪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속도위반 결혼이 가지는 의미와 사례도 함께 담아냈다.

우니타 유미, 다카시미즈 미네코(글) / 길찾기 / 9500원

<버츄얼 그림동화>
<버츄얼 그림동화> ⓒ 다크북
잔혹하고 아름다운 환상과 현실의 이중주 <버츄얼 그림동화>

2004년 '독자만화대상'에서 온라인 만화 부문 1위를 차지하며 작가 강경옥의 건재와 인기, 그리고 그 작품의 매력을 새삼스레 확인시켜 준 <버츄얼 그림동화>가 두 권의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연재 방식으로 온라인을 선택하긴 했지만 출판만화의 형식으로 연출된 <버츄얼 그림동화>가 <1001>, <위대한 캣츠비> 등 온라인에서의 형식을 실험하고 고민해 온 작품들을 제치고 온라인 만화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근래의 '온라인 만화 대세론' 위에 작은 의문부호를 떠올리게 만든다.

출판만화 형식으로 연출되었던 만큼, 두 손에 들고 한 장씩 책장을 넘기며 '읽어'가는 <버츄어 그림동화>는 마우스를 스크롤하며 모니터를 통해 '훑어' 볼 때와는 다른 만족감과 자연스러움을 선사한다.

작가는 '동화 속 세계의 가상체험'이라는 기발한 설정과 그 기발함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만드는 섬세한 연출을 통해 독자들에게 친숙했던 동화 속의 공간과 그 이면의 잔혹성을 현실의 문제와 접목시켜 보여준다.

강경옥 / 다크북(컨텐츠와이드) / 각 권 4500원

사랑, 기억… 하십니까? < LOVE HOLE >

< LOVE HOLE >
< LOVE HOLE > ⓒ 뜨인돌
'그 사람의 마음에 구멍을 내고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그렇게 마음 설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혼이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그 사람을 바라보다가 눈빛이 마주쳐 당황했던 기억도. 아 그런데, 내 마음이 이렇게 돌처럼 굳어버린 건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사랑의 시작, 고백, 아픔, 이별, 또 다른 시작… 사랑의 단계를 상징하는 다섯 개의 주제로 구성된 이 책은 구멍(HOLE)을 통해 사랑에 대한 일러스트와 짧은 에스프리를 들여다보는 형식으로 모든 페이지가 독특하고 파격적인 형식의 일러스트집이다. 구멍을 통해 드러난 일러스트의 일부를 보면서 먼저 그림의 내용을 상상해본 후 페이지를 넘겨 전체 일러스트를 볼 수 있게 구성된 이 책의 형식 자체가 상대를 훔쳐보며 상상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비로소 상대의 온전한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사랑의 과정을 상징하고 있다.

작가 남정훈은 '따뜻한 시사만화' <준&쭌>을 부산일보에 연재하고 있는데 이 연재를 통해 다져진 유머와 풍자, 그리고 감동을 끌어내는 연출력은 이 책을 통해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구멍을 통해 그림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그 속에서 문득 딱딱하게 굳어있던 나 자신의 마음속 풍경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남정훈/ 뜨인돌/ 8500원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어느 동네' <그린빌에서 만나요>

<그린빌에서 만나요>
<그린빌에서 만나요> ⓒ 서울문화사
그린빌은 '어느 동네'에 있는 아파트. 이 아파트의 5동 705호에 사는 소년 도윤은 말수가 적고 혼자서도 잘 지내는 고등학생. 하지만 사실은 텅 빈 집안의 공기를 마주하기 싫어 공연히 집 주변을 서성이기도 하고, 재혼한 엄마가 생일을 기억하고 전화해주기를 기다리며 종일 전화기를 쳐다보는 '외로움쟁이' 소년. 자신의 마음과 기분은 무척 소중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배려하는 데에는 아직 서툴다.

605호에 새로 이사 온 쌍둥이 남매 이언과 이비는 특유의 붙임성과 자상함(그리고 요리솜씨!)으로 그런 도윤의 마음을 손쉽게 열고 들어온 '신비한 매력'의 소유자들. 그러나 이들이 때때로 나누는 의미 모를 대화는 '매력'이라는 말보다는 '신비한'이라는 말 위에 방점을 찍게 한다.

<그린빌에서 만나요>는 작가 유시진이 4년 만에 선보인 신작 단행본. 섬세하고 자연스런 독백을 통한 심리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의 마음속에 들어앉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무당에게 신이 내리듯이, 내가 신이 되어 주인공에게 내리는 듯한 이 신비체험은 4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이언의 대사를 살짝 인용해 말하자면… 그녀의 만화를 보는 건 "굉장히 좋거든. 거기 담긴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자기 안에 빨아들이는 것 같은 기분이야."

유시진 / 서울문화사 / 4000원

지식만화·학습만화의 한 정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휴머니스트
2001년 <한겨레>의 만평작가를 그만둔 작가 박시백이 3년 넘게 준비해 꾸준히 선보이던 <만화 조선왕조실록>이 판형과 디자인을 바꾸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제목을 변경해 5권을 내놓았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3개월 간격으로 총 20권의 출간을 계획하고 있는 대하 역사만화. 세계 최대의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을 만화화한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학계의 최근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작가 스스로도 실록의 행간에 숨은 의미를 찾아내 적극적으로 해석에 개입하고자 하는 의지가, 바뀐 제목 속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새로 출간된 5권은 실록 중 단종실록과 세조실록 부분으로, 여러차례 사극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만큼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숙부인 수양(세조)에 의해 유배되었다가 목숨을 잃은 어린 임금 단종의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마음 아파하는 이야기. 작가는 이 가슴 아픈 역사의 이면에서 진행된 권력의 흐름을 들여다 보면서 반역(쿠데타)의 세력이 내세우는 명분 속의 허점과 억지들을 조심스레 꼬집어낸다.

작가가 창조해낸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표정과 행동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지는 역사의 현장은 조선왕조사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재미있게' 제공하겠다는 작가의 목표와 맞물려 '만화'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박시백 / 휴머니스트 / 각 권 9500원

The Last Autumn Story <씨엘>

< CIEL >
< CIEL > ⓒ 대원씨아이
어린 내가 두려움에 울고 있자 엄마가 말했다.

"다섯 살 때 너 혼자 산에서 길을 잃었던 것 기억나니? … 네 일생에 다섯 살의 그날보다 위험한 순간은 다시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아가라 내 딸아."

왕국 변방의 변두리, 보잘 것 없는 마을에서 소작조차 하지 못하는 하찮은 집안의 딸 이비엔 마그놀리아.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는 일 없고 누구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당당한 소녀다. 스스로는 그 당당함의 이유를 '이 근방 최고의 미녀'이기 때문이라고 '명료'하게 말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해주는 어머니의 존재야 말로 '명료'한 이유가 아닐런지.

<씨엘>은 <소녀교육헌장>의 작가 임주연이 '소녀시절, 기숙사, 멋진언니'를 소재로 창조해낸 판타지. 1권에서는 마녀통지서를 받은 이비엔이 고향을 떠나 대도시 뉴턴의 마법학교 '로우드'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화사한 색감과 수시로 독자를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임주연의 개그센스는 여전하지만 그 웃음 뒤에 그려지는 세계는 어쩌면 보다 어둡고 암울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조그맣게 붙어있어 놓지기 쉬운 부제(The Last Autumn Story)와 남자 주인공(으로 보이는) 제뉴어리를 '인간의 마지막 왕'이라 칭하는 이존재(異存在)들의 독백은 혹시 이 이야기가 종말, 혹은 한 세계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하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앞으로 나아가라 내 딸아'라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등 뒤에 두고 하늘까지 치솟은 거대한 용의 실루엣을 향해 걸어가는 주인공 이비엔의 뒷모습이 당당하면서도 위태해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임주연 / 대원씨아이 / 3800원


심장 위에 각인되는 강렬한 이미지 <로또 블루스>

<로또블루스>
<로또블루스> ⓒ 길찾기
<로또 블루스>는 젊은 작가 변기현이 수년 간 작업해 온 성과들을 모아낸 작품집. '로또'를 둘러싼 음모와 추락하는 인간 군상을 그려낸 <로또 블루스>, 엄마를 죽이기로 결심한 딸이 그 살인계획을 기록해나가는 충격적인 이야기 <살인계획>, 모든 시민들이 요쿠르트를 먹는 기묘한 도시에서 시작된 금지된 사랑 이야기 <요쿠르트 도시의 사랑>…

각 작품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인간성의 자각과 탈주라는 모티브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이고 앙상한 언술로 갓 잡아올린 물고기처럼 펄떡거리는 그의 만화가 주는 신선한 전율을 옮기기에는 역부족. 대사나 지문보다 훨씬 앞서 도달하여 각인돼 버리는 강렬한 이미지의 힘. 변기현의 작품들은 영상세대가 만화를 만났을 때 어떤 결과물이 만들어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 문화콘텐츠진흥원 출판지원작이며 올해 상반기 '오늘의 우리만화' 수상 작품이기도 하다.

변기현 / 길찾기 / 9500원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건져낸 반짝이는 순간들 <또디, 행복에 관한 짧은 이야기>

<행복에 관한 짧은 이야기>
<행복에 관한 짧은 이야기> ⓒ 애니북스
우리의 일상은 (대개) 굉장히 단조로운 구조로 반복된다. 생존을 위해서 밥 먹고 잠을 자야 하고, 의식주 해결을 위해 일을 해야(돈을 벌어야) 한다. 장을 보거나 세탁을 하는 일 등도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한다. 이렇게 단순하게 반복되는, 모두가 "지루해~"라고 외치는 일상.(일상이 지루하기는 재벌 2세급 행운아(?)들에게도 마찬가지인 듯, 그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해 말초적 놀이 - 도박, 마약 등등 - 에 탐닉하던 이들이 종종 신문지상을 통해 소식을 전하곤 한다) 하지만 정연식의 <또디>를 보면서 배꼽을 잡고 뒹굴다보면 그 자질구레한 일상 속에 얼마나 많은 웃음과 즐거움, 감동과 행복의 순간들이 숨어있었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또디>의 네 번째 단행본인 <또디, 행복에 관한 짧은 이야기>에서는 사랑스런 딸을 출산한 이팔육과 백숙의 엉뚱한 육아법, 오랜 연애 끝에 결혼에 성공한 진표와 세유의 신혼 생활 등이 소개된다. 무섭기는 커녕 귀엽기만 한 조직 막나가파 대원들의 활약도 여전하다.

정연식 / 애니북스 / 각 권 8500원

인간에 대한 가슴 따뜻한 시선 <한국·일본 이야기>

<한국·일본 이야기>
<한국·일본 이야기> ⓒ 안그라픽스
강제 연행, 차별과 멸시, 민단과 조총련의 갈등, 지문날인 반대운동…. 문학작품이나 뉴스 등을 통해서 형성된 재일교포의 이미지는 늘 우울하고 가슴 아픈 것이었다. 재일교포 2세 소설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 GO >가 그러한 과거의 이미지를 뛰어 넘어 현재의 고민과 생활을 보여주었다면, 재일교포 2.5세인 정구미의 <한국·일본 이야기>는 밝고 긍정적인 전망으로 미래까지를 보듬고 있는 만화이다.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의 체험과 생활을 만화식 유머를 곁들여 진솔하게 그려냄으로써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재일교포들의 삶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강점. 아이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도 늘 차근차근 알기 쉽게 설명해주곤 했다는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는 '젊은이들의 역사인식' 같은 까다로워 보이는 주제도 차분하고 알기 쉽게 이야기해나가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와 정서의 차이에서 오는 작가의 혼란을 웃으면서 읽어나가다 보면, 책을 덮을 때쯤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이해가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정구미 / 안그라픽스 / 9000원

어라? 역사가 재미있네 <십자군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 ⓒ 길찾기
2004년 청소년 추천도서(책따세), 2005년 중고교 사회추천도서(서울시교육청)로 선정되며 나이 어린 학생으로부터 먹물 깨나 들었다는 지식인들까지 수많은 독자들을 열광시켰던 <십자군 이야기>가 드디어, '드디어' 2권을 내놓았다. 책을 펼치면 제일 먼저 놀라게 되는 것은 작가의 박식함이다. 그러나 작가의 박식함이란 독자의 입장에서는 사실 눈꼽만큼도 중요하지 않은 덕목이다.

중요한 것은 그 '박식'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게끔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능력이며, 그런 의미에서 김태권이라는 작가를 가지게 된 이 시대의 독자들은 행복하다. 더구나 김태권 작가는 '쉽게'에서 멈추지 않고 독특한 만화적 구성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만담을 통해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십자군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파고들고 있으며 그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현재를 비춰보는 재미는 상승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탁월하다.

포복절도 하게 만들다가도 느닷없는 썰렁함으로 뒤통수를 치는 김태권 식 만담의 독특한 재미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

김태권 / 길찾기 / 각 권 8800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성인여성을 위한 월간 만화잡지 <허브>에도 실렸습니다.


축! 속도위반결혼

타카시미즈 미네코 지음, 우니타 유미 그림, 이미지프레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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