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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프란체스카>
<안녕, 프란체스카> ⓒ iMBC
<안녕, 프란체스카>가 이번 주 막을 내렸지만 아쉬움은 없다. 조금 기다리면 '시즌3'이 나오니까. 시즌3이 계획돼 있는 걸 보면 <안녕, 프란체스카>가 인기를 끌긴 끈 모양이다. 조기종영을 하거나 용두사미식으로, 시작 전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시청자의 외면을 받게 되면 언제 끝나는지도 모르게 끝나는 프로도 부지기수인데 시리즈로 자리 잡는다는 건 확실히 재미가 있었다는 것이고, 시청자의 반응이 있었다는 것이다.

<안녕, 프란체스카> 방송 전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뱀파이어라는, 호러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황당한 소재로 시트콤을 만든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었다. 드라마에서 경험했지만 지나치게 실험적인 것들은 도전정신은 높이 사겠는데 별로 보고 싶지는 않다는, 냉담한 평가를 받았었다. 돈 내고 가는 영화관에서는 공룡도 볼 수 있고, 우주전쟁도 볼 수 있지만 안방극장에서만큼은 리얼리티가 확보된 평범한 것들을 보고 싶다는 요구가 시청률을 통해서 드러났었다.

일상적인 내용에 대한 선호도가 시트콤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가난한 아가씨가 알고 보니 부자 아빠의 외동딸이든지, 가난하지만 착한 처녀가 왕자님을 만난다거나 하는 드라마식 허구도 사양한다. 환상이라고는 없는 완전한 일상 속으로의 진입을 원한다. 그렇게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니까 여자만 보면 작업 걸고 싶어 하는 헬스 강사('세친구'의 윤다훈)가 있고, 처가에 얹혀사는 백수('순풍산부인과'의 박영규)가 있고, 무료한 일상을 고스톱 치고 노래교실 쫓아다니며 견디는 가정주부('순풍'의 박미선과 선우용녀)가 있다.

이런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이고, 또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그런데 폼 나는 모습이 아니라 어쩌면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모습들이다. 소심함이나 뻔뻔스러움, 권태, 바람기 이런 걸 유머라는 포장을 씌워 우리 앞에 내놓는 게 시트콤의 기본 전략이라고 본다. <개그 콘서트>와 같은 코미디프로가 과장된 모션이나 허풍스런 캐릭터로 웃음을 이끌어낸다면 시트콤은 우리 속에 내재한 소심함, 두려움 이런 걸 소재로 찾아내면서 재미가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흡혈귀는 소시민도, 평범하지도 않고, 어느 것 하나 우리와 공통분모가 없는 마당에 확실히 모험으로 비쳐졌다. 시트콤의 기본 전략인 일상성에서 비켜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우였다. 결론부터 얘기해서 <안녕, 프란체스카>는 일상성을 벗어난 적이 없다.

'두일'이라는 나이 40이나 먹었지만 돈이라고는 없고 오히려 카드 막기에 급급하고 옥탑방서 살고 있는 좀 한심한 남자가 프란체스카 일가와 투톱을 이루면서 극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두일은 우리 주변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이고, 두일을 통해 평범함을 밑바탕에 깔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흡혈귀가 앞에서 황당한 소재라고 불편해 했었는데, 프란체스카는 이를 장점으로 만들었다.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주인공을 통해 우리 사회, 우리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효과를 낸 것이다.

흡혈귀의 세계로 우리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흡혈귀의 눈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므로 우리 모습을 새롭게 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프란체스카의 성공은 예견됐다고도 볼 수 있다. 완벽한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우리나라 시트콤의 진일보를 의미하고, 아마도 앞으로 이 방법이 시트콤에서 꽤 써먹힐 것 같다.

항상 마주치는 일상이기에 무심하게 고스톱을 쳤었는데 그걸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바라봤을 때 화투장은 '르네상스풍도 아닌 것이 바로크풍도 아닌 것이'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예술로도 보일 수 있다는 것에서 무한한 웃음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초짜의 눈을 통해 우리 사회를 풍자할 수 있다.

<안녕, 프란체스카>는 흡혈귀를 통한 '새롭게 보기'라는 완벽한 장치를 마련하고는, 고스톱문화와 명절, 반상회 등 다양한 우리 삶의 모습들을 다뤘다. 풍자가 없는 단순한 유머는 쉽게 질리게 돼 있는데 프란체스카는 정말 객관적인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줬다. 또한 우리의 가족에 대해 웃음이라는 포장을 씌웠지만 꽤 신랄하게 비판했다.

테마 '피의 아들이여!'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쇼핑하면서 비싼 목걸이나 사는 가족을 보며 두일이 마침내 한마디했다. "나만 왜 뼈 빠지게 일하느냐"고. 이 말 속에는 우리나라 가장들이 지고 있는 무게가 녹아 있다.

그리고 '그곳에 네가 찾는 행복이 있을 거야'에서는 주부에 대해서 다뤘다. 소중하게 가꿀 꿈도 없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존재도 아니고, 이미 아이들은 다 커서 친구를 엄마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이런 처지에 놓인 주부들의 공허한 의식을 다루고 있었다. 프란체스카의 무표정과 고스톱에 대한 집요한 집착은 주부들의 한 특성을 보여줬다고 본다.

오는 9월 시즌3이 방송을 타게 된다. 마니아층을 기반으로 인기를 얻었던 프란체스카가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마니아를 발판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이런 종류의 유머를 바라는 사람이 꽤 많아졌다는 것이다.

흡혈귀를 통해 우리 삶을 바라본다는 것은 신선했고, 무심하게 지나치던 일상의 곳곳에 풍자거리가 있었다. 한국형 블랙코미디라는 찬사까지 들으며 평범한 우리의 삶을 풍자한 프란체스카는 확실히 수준 있는 시트콤이었다. 이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길 바란다. 하향평준화는 결코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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