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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쟁이' 세찬이와 산하
'똥쟁이' 세찬이와 산하 ⓒ 이양훈
그런데 이번에 새로 장착한 네비게이션을 너무 믿었던 탓에 애초부터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인제에서 곧바로 현리로 넘어가면 될 것을 다시 홍천으로 와서 방태산으로 길을 잡은 것이지요. 시간과 거리가 두 배는 더 소요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네비게이션이 목적지인 방태산 휴양림이라고 알려준 곳은 휴양림의 반대편이었던 것입니다. 서울 북한산을 예로 들어 말하자면, 우이동을 알려 주어야 할 것을 구파발로 안내한 격이었지요.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기는 했지만 현지 사람들 얘기로는 제 차로는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지도와 네비게이션을 종합해 거리를 환산해 보니 산을 돌아 목적지로 가려면 85km를 더 가야 했습니다. 같이 간 OBC님 가족들은 새벽에 나오느라 아침도 못 먹고 집을 떠나왔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겠습니까? 일순 저에게 쏠리는 원망의 눈빛, 눈빛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다음날 곰배령으로 가려면 그쪽으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방태산보다 조금 더 가까운 미천골 자연휴양림(약 37Km)으로 목적지를 변경해 그쪽으로 달렸습니다. 어서 빨리 자리를 잡고 밥을 먹어야 했기에 속도 위반을 밥 먹듯이 해 가며 그야말로 '돌진'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늦게 되면 그나마 야영장의 자리도 못 잡을 것 같은 조바심에 이것 저것 가릴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혼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착한 미천골에서는 안내인으로부터 "오늘 적정 인원이 다 차서 입장할 수 없다!"는 차가운 대답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방태산으로 전화를 해 보니 그곳도 이미 만원이라고 합니다.

하릴없이 발길을 돌려 근처 사설 야영장으로 가는 중에 계곡을 끼고 있는 꽤 괜찮은 야영장을 발견하고 그리로 갔습니다. 하루 야영하는 데 텐트 한 동당 1만5000원. 그래서 합이 3만원이었습니다. 서둘러 텐트를 설치하고 밥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소주도 한잔! 새로 개장한 곳이라 시설이 깨끗하고 사람도 붐비지 않아 맘에 들었습니다. 이쪽으로 가시는 분이 계시면 권하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사장님의 얼굴에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써 있는 것 같더군요. 저는 술도 한잔 했겠다, 자리도 잡았겠다 텐트 속에 들어가 늘어지게 한숨 잤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계곡에서 놀았다고 하더군요. 이곳은 일명 '얼음골'이라고 한답니다.

저녁 밥 때에 다시 눈을 떠 밥을 먹고 또 소주 한잔. 이번에는 맥주도 몇 병 더 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자는데 새벽이 되자 한기가 몰려 오더군요. 그러나 우리가 준비한 것은 오직 아이들이 덮고 잘 이불 같은 수건 한 개와 쿨맥스 옷가지뿐!(이거 얼마나 바람이 잘 통하는지 아시죠? 한기를 막는데 이것보다 더 악조건인 옷은 아마 없을 겁니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추워서 혼났습니다. OBC님 가족은 잠바까지 준비해 온 눈치였습니다. 흑흑~~.

하여간 다음날 아침, 전날 저녁에 다 정리를 해 놓은 상황이라 물만 끓여서 보온병에 채운 다음 텐트를 철거하고 서둘러 다시 곰배령으로 향했습니다.

한 번 더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으니 이놈이 어떤 지방국도를 넘으라고 가르쳐 주는데 가서 보니 웬 걸! 공사 중인 곳으로 바로 '조침령'을 넘어가는 도로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을 넘지 않으면 양양으로 해서 약 80km를 돌아가야 하는 상황! 도로 옆 가게에 물어 보니 넘어갈 수는 있을 거라 합니다. 그 말을 믿고 바로 조침령 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기름까지 바닥을 드러내고

어렵게 어렵게 한숨을 몰아 쉬어가며 공사 중인 곳을 통과해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럴 수가, 기름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맨 아래 눈금에서 아예 더 밑으로 한참을 곤부박질쳐 있는 기름 탱크. 올라올 때는 분명히 한 눈금이 남았던 터라 거뜬히 넘어갈 줄 알았는데 아마도 최저단으로 고개를 올라오다 보니 기름을 많이 먹었던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언제 최저단으로 이렇게 오래 달려본 적이 있어야 기름을 많이 먹는지 적게 먹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을 잠깐씩 해 본 경험으로는 알 턱이 없지요.

가슴은 조마조마하고 땀을 삐질삐질나고 미치겠더군요. 한 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기름이 바닥이 나서 보험회사나 뭐 그런 곳으로 전화를 하면(사실 핸드폰도 터지는 곳이 아니었을 겁니다) "거기가 어디냐?"고 물을 것이고 "여기는 조침령이다" 그러면 "거기는 도로가 아직 개통도 안된 곳인데 거길 왜 갔냐? 우리는 거기까지는 서비스를 못한다" 뭐 이런 대화도 가능하고 그래서 119에 조난 신고를 한다든가 하면 아마도 헬리콥터로 기름을 싣고 와서 연료를 보충해 주는 희대의 웃음거리도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냐 이 말입니다.

그것도 모든 문제가 잘 풀렸을 때의 얘기이지 만일 한 가지라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거기서 걸어 내려와 기름 사 갖고 다시 올라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에 앞이 캄캄하더군요. 그러면서도 독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조침령 정상에서 사진 찍는 것은 결코 빼먹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기름이 떨어졌다는 소리에 그것을 소재로 밤에 늑대가 나타나니 어쩌니 하면서 좋아라 웃고 떠들고 난리가 났습니다.

다행이 큰 사고 없이 조침령을 넘어 왔습니다. 그리고 곰배령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입구에서 차를 세우며 '출입금지'라고 합니다. 출입 허가를 받은 사람만 들어 갈 수 있다나 뭐라나. 조용히 '명예 산림감시원증'을 내밀고 사정을 했더니 큰 인심이라도 쓰는 듯이 들여보내주더군요. 그러나 그 이의 얘기와는 반대로 안쪽에 있는 펜션으로 가는 차량은 줄을 이어 들어오고 있었고 곰배령 입구에서는 대형 천막까지 쳐놓고 술판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욕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여간 억지로 억지로 차를 주차 시키고 곰배령으로 출발하려는 순간! 제 등산화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집사람 것과 제 것 두 뭉치의 봉투를 챙겨왔는데 말입니다. 물어 보니 집사람 것하고 아이들 것이었다고 합니다. 꼼짝 없이 '쓰레빠'를 신고 산행을 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길이 좋아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조금의 부상쯤은 각오해야 했을 것 같습니다. 길이 좋다는 제 얘기만 믿고 OBC 가족분들도 모두 '쓰레빠'만 준비해 왔다는 사실도 제게는 조금의 위안이 되었습니다. 흐흐흐...

약 두 시간의 산행 후 맞이하는 천상의 화원 곰배령! 정상 부근에 이르러서는 이미 그 야생화 꽃향기가 진동을 하더군요. OBC님 가족들도 모두 입을 헤벌리며 좋아했습니다. 사진도 열심히 찍었지요. 저는 배가 고파 "얼른 밥 먹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OBC님은 이 기분을 만끽하자며 정상의 꽃밭에서 밥을 먹자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미쳤냐? 이 땡볕에서 뭔 밥이냐! 아래쪽 그늘로 가자!"고 해서 결국 조금 아래로 내려와 간밤에 멧돼지가 먹을 것을 찾느라 밤새 갈아 엎어 놓은 것이 분명한 숲속에서 컵라면으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그땐 안 아팠어요!"

그리고 산을 내려오는데 5분이나 지났을까요? 결국 둘째 아이인 세찬이가 '얘기'를 하고 맙니다. 이런 경우 세찬이의 '얘기'는 그 내용이 '뻔'합니다.

"엄마! 똥 마려워!"

세찬이는 사람들이 다 지나가는 길 옆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똥을 눴습니다. 이미 빤스에 똥이 다량 묻어 있었기 때문에 빤스는 다시 입을 수가 없어 '노빤스'로 산을 내려와야 했습니다. 계곡이 깊어 냄새가 분산되지 않고 모여 있는 관계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코를 막고 지나가더군요. 산하 엄마는 막대기로 그 똥을 낙엽으로 다 덮었습니다. 그리고 똥 묻은 빤스는 새 것이라며 비닐봉투에 담아 가방에 넣었습니다.

'똥'과 관련된 일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산을 내려 왔더니 산하와 준식이(OBC님 큰 아들)가 동시에 똥 마렵다고 얘기합니다. 준식이는 근처 숲속에서 똥을 눴고 산하는 아래에 있는 화장실로 가겠다면서 막 뛰어 갔습니다. 그러나 녀석은 잠시 후 숲속에서 '므흣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나더군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아침에도 컵라면을 먹고 점심에도 컵라면을 먹었던 것이 탈이 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 볼 뿐입니다. 물도 계곡물을 그냥 마셨지요.

산을 다 내려왔으나 여흥을 즐길 겨를도 없이 공포의 6번국도 '양평 구간'을 통과해야 했기에 서둘러 서울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양평 구간'이 문제였습니다. 용담대교에서 꽉 막혀 있는데 준식이가 다시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OBC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이놈아! 배가 아프면 아까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갔다 오지 그땐 왜 가만 있다가 지금 여기서 이러냐?"고 난리를 칩니다. 그러나 우리의 준식이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꿋꿋하게 얘기합니다.

"그땐 안 아팠어요!"

결국 양수리 쪽으로 길을 잡아 주유소에 들러 배 아픈 것을 해결하고 OBC님의 도움으로 막히지 않는 길을 찾아 서울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중간에 불암산 쪽에 있는 갈비집에서 저녁과 함께 소주도 한잔 했습니다. 운전은 집사람이 했지요. 참으로 즐겁고 추억이 어린 여행이었습니다.

이상 여름 여행기를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네비게이션 과신 말고 지도 보고 길을 찾고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 보며 여행을 다녀야겠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께서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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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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