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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삿기들아! 장판수가 여기 있다!"

크게 놀란 사람들 사이에서 장판수가 먼저 노린 이들은 횃불을 든 두 명이었다. 장판수가 휘두르는 매서운 칼바람과 함께 횃불은 나란히 바닥에 떨어졌다. 어둠 속에서 당황한 사람들을 헤치고 장판수는 눈여겨 보아두었던 우두머리의 뒤로 돌아들어가 팔을 꺾어 잡고서는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모두 가만 있으라우! 아니면 이놈의 목숨은 없어!"

장판수의 빠른 몸짓에 사람들은 잠시 얼이 빠졌지만 곧 각자 무기를 손에 들고 소리쳤다.

"어리석은 짓 하지 마라! 그 분을 놓아 주어라!"

장판수는 마치 주위에 매복한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대뜸 소리를 내질렀다.

"누구든지 달려드는 놈은 한 살에 목을 뚫어 버리라우!"

시루떡의 손에는 활은커녕 화살촉마저 없었지만 장판수의 의중을 금방 알아챈 그였기에 대답은 지체 없이 나왔다.

"알갔습네다!"

하지만 사내들 또한 결코 만만한 자들이 아니기에 장판수의 허세에 쉽게 속지 않았다.

"네 놈이 활을 쏘겠다면 진작 쏘았겠지 어찌 미리 뛰어나와 설레발을 쳤겠느냐? 네가 그 분을 베면 저기 숨어서 헛소리를 한 놈과 함께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라."

숨어있던 시루떡은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장판수는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네놈들은 어차피 날 죽이려고 한 거지 않나? 그러니 심심치 않게 몇 놈쯤 저승에 같이 데려가야갔어! 어디 한번 제대로 덤벼 보라우!"

장판수는 사로잡은 자를 사내들 앞으로 힘껏 떠다밀고 뒤로 물러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시루떡 녀석이 어떻게든 도망칠 틈은 벌어 줘야지 안 갔어?'

그러나 장판수의 속마음과는 달리 시루떡은 칼을 잡은 채 옆에서 슬며시 나와 장판수의 옆에 우뚝 서서 사내들을 노려보았다.

"이런 멍청한 놈… 니래 뭣하러 기어 나왔어? 날 못 믿겠다는 거네?"

시루떡은 뭘 그리 난리냐며 능청스럽게 읊조렸다.

"보소 보소 내가 그리 의리 없이 도망치면 장초관은 맘이 좋겠소?"
"에끼 이 사람아…."

그 사이 장판수와 시루떡을 포위한 사내들도 자기들끼리 무엇인가를 의논하더니 한 사람이 슬며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참동안 사내들과 장판수는 대치한 채 움직이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시루떡이 속삭였다.

"저 놈들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외다."

그 말에 장판수도 뒤늦게 눈치를 채고 소리쳤다.

"큰소리치더니 덤비지 않겠다는 거네? 그럼 내가 들어갈까?"

그러나 이때쯤 슬며시 사라졌던 사내가 포수 셋을 대동하고 어둠 속에서 장판수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조용히 말했다.

"저 곳을 겨냥해서 쏴라."

그때 쯤 장판수는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칼을 쳐들어 주위를 견제하고 있었다.

-탕!

총소리와 함께 장판수의 뒤에서 누군가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루떡이 배에 총탄을 맞은 것이었다.

"이 삿기들이래 비겁하게 정녕 이러기냐!"

눈이 뒤집힌 장판수는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며 사내들에게 달려들었다. 당황한 사내들은 순간적으로 대적할 생각도 못한 채 이리저리 몸을 피하기에 바빴다.

"저기다! 저기에 있다!"

멀리서 또 한 무리의 사내들이 창칼을 달빛에 번뜩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장판수가 칼을 잘 쓴다한 들 많은 이를 상대로 당해낼 재간은 없었지만 오히려 악에 받친 마음가짐은 더욱 독해져 결국 몸을 피하며 도망 다니던 사내 하나를 잡아 베어 넘기고서는 야차와도 같은 표정을 하고 소리쳤다.

"기래 얼마든지 오라우! 모조리 죽여버리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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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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