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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풍경을 그려보려 했지만 실력이 달려 썰렁한 사진들만 나왔다. 그래서 주최 측이 제공한 자료를 스캔해 삽입해봤다(사진제공: 김영섭 사진화랑).
전시회 풍경을 그려보려 했지만 실력이 달려 썰렁한 사진들만 나왔다. 그래서 주최 측이 제공한 자료를 스캔해 삽입해봤다(사진제공: 김영섭 사진화랑).
살가도 전시회는 2005년 7월8일~9월3일까지, 장소는 프레스 센터 1층에 있는 서울갤러리(사진제공: 김영섭 사진화랑).
살가도 전시회는 2005년 7월8일~9월3일까지, 장소는 프레스 센터 1층에 있는 서울갤러리(사진제공: 김영섭 사진화랑).
잉걸아빠는 사진에 대해 문외한이다. 모르는 게 어디 그뿐일까. 어쨌거나 자주 들러보는 블로그, <나는 아마추어다>에서 사진에 대해 해박한 조경국 기자 덕분에 눈곱만큼 딱지를 뗐고 살가도를 알게 되었다.

인터넷을 뒤져 살가도에 관해 알아갈수록 점점 경외감이 밀려왔다. 인간을 소재 삼아 다양한 삶을 주제로 포착한 사진작가는 부지기수다. 처음에는 살가도 역시 그런 작가려니 했다. 언론에서 너무 떠드는 것이겠거니.

문외한이 달리 문외한이 아니다. 모르면 혀라도 놀리지 말아야 하는데 중뿔나게 아는 척하니 문외한이다. 살가도를 어느 정도 알아 가면서 잉걸아빠가 딱 그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전에 직접 가서 보는 살가도의 작품은 화면을 통해 보는 것과는 그 느낌이 천양지차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딱 맞다.

온통 흑백 사진들 속에서 인물들의 눈빛과 표정에 배어 있는 치열한 삶의 궤적에 잉걸 아빠는 몸서리쳤다. 또한, '고흐'의 그림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절망과 열정, 그리고 우울한 희망의 색조를 보았다면 문외한이기에 잘못 짚은 환상일까? 학생들에게 던질 질문지를 작성하면서 나는 희열까지 느꼈다. 어떤 대답들이 나올지, 과연 내가 원하는 답변을 하는 학생이 있을지 자못 궁금했다.

수업은 예상 대로 열기가 넘쳐났다. 학생들도 나름 대로 준비를 철저히 해왔고 반 정도는 직접 전시회에 다녀온 친구들이었다. 내가 원하는 답변을 사진에 대한 감상으로 내놓는 친구가 있을 경우 문화상품권을 시상하겠다고 하자 학생들 눈빛이 갑자기 밝아졌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자기 느낌을 얘기하는 녀석부터 인터넷에서 베낀 내용을 읊는 녀석까지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잉걸아빠가 원했던, 또는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답을 내놓는 친구가 없었다.

살가도가 1985년에 찍은 이 사진을 확대 프린트해서 보여주자 여학생들은 울컥하며 화장실로 뛰쳐나가기도 했다(사진제공: 김영섭 사진화랑).
살가도가 1985년에 찍은 이 사진을 확대 프린트해서 보여주자 여학생들은 울컥하며 화장실로 뛰쳐나가기도 했다(사진제공: 김영섭 사진화랑).
"문화상품권 시상 방법을 바꾸겠다. 지금부터 공책에다가 광고 문안을 작성해봐라."
"무슨 광고 문안요?"

"지금부터 자신을 살가도 사진전시회의 광고를 의뢰 받은 광고문안가(copywriter)라고 생각해라. 신문 1면 하단에 나올 광고로 어떤 문구를 써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고민해봐."
"관심만 끌면 되는 거죠?"

"아니! 관심끌기와 함께 살가도라는 인물에 대하여 그 내면까지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안이라야 한다. 단 한 문장으로."


오랜 시간 끙끙대다 문안이랍시고 내놓은 작품(?)들을 살피던 나는 결국 한 학생의 손을 들어줬다. 녀석은 의기양양, 문화상품권을 친구들에게 흔들어 보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녀석의 작품을 곱씹던 나는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짜리 작품치고는 그런 대로 맥을 짚어낸 솜씨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 기사의 표제이기도 하다.

연민에 찬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겸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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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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