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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김동원

처음 우리가 서로를 만났을 때, 그때가 기억나시는 지요. 당신은 그저 빗방울에 담긴 내 마음에 당신의 마음을 빼앗겼죠. 오직 그것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었어요.

ⓒ 김동원

우리는 함께 살기로 했어요. 그때의 그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의 뜻이 마음먹은 대로 된 것은 아니었어요.

ⓒ 김동원

우리 사이에 생활이 들어차고 그러면서 사랑의 흔적은 점점 메말라갔죠.

ⓒ 김동원

나중엔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어요. 이젠 그 흔적의 자리만 남아있을 뿐이에요. 우리는 한동안 그 흔적의 터만 붙들고 살았어요. 사랑이 사라진 텅 빈 자리는 그냥 안내문만 서 있는 텅 빈 유적지처럼 쓸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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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흔적의 자리라도 잡아두려고 안간힘이었죠. 몸을 말아 그 자리만이라도 지키려 했어요.

ⓒ 김동원

그러나 그 안간힘도 소용이 없었죠. 결국 우리들에게 남는 것은, 사랑도 사라지고, 그 흔적도 사라지고, 그 흔적의 자리도 사라지고, 사랑의 모든 것이 사라진 텅 빈 느낌뿐이에요.

ⓒ 김동원

사랑하는 당신,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느낌에 집착하지 말아요. 그 느낌은 그냥 보내버려요.
나는 요즘 시집을 한 권 읽고 있어요. 이영주의 <108번째 사내>예요. 시인이 그러더군요. 거미의 집은 무덤이라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에요. 그건 날벌레들이 갇히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무덤이에요. 사랑을 지키려는 우리의 발버둥이 혹시 사랑의 무덤을 파는 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우리 그 무덤을 거두기로 해요. 생각해보니 사랑이 사라진 빈자리는 오히려 기뻐해야할 일인 것 같아요. 이제 그 자리에 또 사랑을 채울 수 있을 테니까요. 가득 찬 사랑은 오히려 경계해야할 일이예요. 자꾸 그것을 지키려 만들 것이 뻔하니까요. 지키는 사랑은 힘들 것 같고, 빈자리를 채워가는 사랑이 더 기쁘고 신날 것 같아요.

ⓒ 김동원

이제부터는 그 빈자리에 채워질 다른 모습의 사랑을 생각하기로 해요. 이번의 우리들 사랑은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오는 완전 멀티 복합 8채널 사랑이 될지도 몰라요.

ⓒ 김동원

또 우리의 사랑이 당신의 목젖을 간질이는 풋내음을 풍길지도 모를 일이구요. 나이 들어 이게 웬 주책이야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사랑은 나이를 잊게 만드는 거니까요.

ⓒ 김동원

그래도 역시 사랑이라고 하면 뜨거움이 최고죠. 하지만 이제는 뜨거움 속에 빗방울의 영롱함을 살릴 수 있을지 몰라요. 타오르는 빗방울의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랑은 그런 건가봐요. 첫 느낌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자리를 비우고, 또 채우고, 그리고 비우고를 반복하는 것인가봐요.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습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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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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