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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걸이가 커가도록 아내 고생 시키는 잉걸아빠는 주리 틀기에 오금이 바서져도 싸다(05/02/27 문경새재 왕건촬영장에서 학생들과)
잉걸이가 커가도록 아내 고생 시키는 잉걸아빠는 주리 틀기에 오금이 바서져도 싸다(05/02/27 문경새재 왕건촬영장에서 학생들과) ⓒ 이동환

사실 아내는 남들만큼 음식을 한다. 꽤 여러 가지는 잉걸아빠 혓바닥을 꼼짝 마라, 할 정도로 잘 한다. 온갖 잡채 종류, 제육볶음을 비롯한 각종 볶음 종류, 김치찌개는 기본이고 각종 찌개류, 각종 샐러드, 생선 졸임, 비빔국수, 그러고 보니 세는 일이 오히려 민망하다. 특히 콩나물비빔국수는 정말 일품이다. 문제는 음식 만들 시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이집 저집 다녀야 하는 영어 선생이다 보니 집에서 편하게 땟거리 걱정할 짬이 없다.

모든 게 다 잉걸아빠 때문이다. 그런데도 죄 없이 고생만 하는 아내에게 괜한 짜증을 부려 눈물 뿌리게 만든 잉걸아빠는 주리를 틀어도 단단히 틀어야 한다. 아무튼, 작은 소란이 일었던 밤이 가고 아침이 되었다. 일부러 밤새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나는 해가 솟는 걸 보고서야 자리에 누웠다. 덕분에 학생들 나눠줄 이런저런 자료는 담뿍 만들었지만 나도 사람인데 속이 편할 리 없다.

점심 무렵 눈을 떠보니 주방에서 아내가 분주하다. 참기름 냄새가 솔솔 나고 구수한 콩나물국 냄새가 진동하는 걸 봐서 분명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콩나물비빔국수다. 원래 잉걸아빠는 밥 내놓고 먹을 정도로 국수를 좋아한다. 특히 고추장 양념에 비빈 국수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한술 더 떠 콩나물비빔국수라니 춤을 춰도 모자랄 판이다. 콩나물비빔국수는 그냥 비빔국수보다 시간과 정성이 더 들어가는 음식이다.

날도 더운데 콩나물 삶아 국물 따로 건더기 따로 냉장고에 넣어 차게 만들어야지, 이것저것 고명거리 미리 준비해둬야지, 가스레인지 앞에서 땀 뻘뻘 흘리며 넘치지 않게 조시 맞춰 국수 삶아야지, 한 여름 불볕더위에 콩나물비빔국수 만들어 먹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쭈뼛쭈뼛 아내 뒤로 다가가자 돌아보지도 않고 한 마디 한다.

"내 속 긁어놓고 코만 잘 곱디다. 어서 빨리 씻어요. 거의 다 됐으니까."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괜히 아내 엉덩이를 툭 치고 도망간다. 씻는 둥 마는 둥 한 자리 차지하자 소담스럽게 담긴 국수가 앞에 놓인다. 한 젓가락 얼음에 휘저어 볼이 미어져라 입에 넣자 매콤한 고추장 양념과 구수한 콩나물 냄새가 참기름과 깨소금에 버무려지면서 눈물이 쏙 빠질 지경이다. 사각사각하는 콩나물과 아삭아삭 씹히는 오이 궁합은 또 어떻고? 얼얼한 혓바닥 달래주는 콩나물 냉국을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나는 너무 행복하다.

아내 사랑이 옹글게 담긴 콩나물비빔국수. 콩나물냉국까지 곁들이면 오, 예!
아내 사랑이 옹글게 담긴 콩나물비빔국수. 콩나물냉국까지 곁들이면 오, 예! ⓒ 이동환

잃었던 입맛이 한꺼번에 확 돌아오는 느낌이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아내가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고 입을 연다.

"천천히 들어요, 체할라. 에그, 우리 남편 먹는 모습 보면 언제 한 번 잘 살 텐데. 당신 기억해요? 당신이 워낙 탐스럽게 먹는 바람에 우리 아버지가 반해서 결혼 허락하셨던 거."

나는 응응, 하며 연신 젓가락질이다.

"우리 남편, 이제 철 좀 드시려나?"
"무슨 소리! 남자는 철들면 죽는대. 당신, 철난 남편 젯밥 차리는 게 좋아, 아니면 철 안 난 남편 그냥저냥 데리고 사는 게 좋아?"
"어이구, 말이나 못하면…. 그냥 드시기나 하셔!"


내 그릇이 거의 비어가자 아내는 자기 그릇에서 내 그릇으로 국수를 옮겨 담는다.

"뭐야?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는 거야?"

그리고 어머니 들으실까봐,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입 모양으로만 미안해! 하고 외친다. 빙긋 웃는 아내 귀밑에 새치 몇 가닥이 보인다. 처음 본다. 나는 국수를 넘기다말고 아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이제 저이도 나이 앞에 별 수 없다. 신나게 먹을 때까지는 몰랐는데 다 먹고 나니 오늘따라 고추장 양념이 너무 매웠나보다. 콩나물 냉국 한 그릇을 더 부탁하고 아내가 뒤돌아 일어선 사이 얼른, 눈물인지 땀인지 훔쳐낸다.

덧붙이는 글 | '우리집 일품요리'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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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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