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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막혀 있으니 제가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서흔남은 암문 앞에서 입을 모은 뒤 뻐꾸기 울음소리를 내었다. 문이 살그머니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늙은 병사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이거 예전과는 달리 너무 허술하지 않은가.'

암문으로 들어선 장판수는 그 주위에 늙은 병사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서 속으로 크게 놀랐다. 아무리 조정이 항복했다고는 하나 이시백이 이런 허술한 태세를 갖춘 것이 장판수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거 이거 수어사 나으리를 뵈면 한마디 아뢰야겠구먼."

긴장이 풀린 장판수가 어이없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뒤에 있던 서흔남을 돌아보았지만 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심지어는 늙은 병사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아차! 내가 방심했구나!'

장판수가 속으로 외친 순간 발밑의 땅이 거짓말처럼 푹 꺼져 버렸다. 장판수는 그대로 땅 밑으로 떨어졌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에 꽁꽁 묶여 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죽여버리지?"

정신이 어지러운 장판수의 귓가에 위에서 누군가 지껄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님께서 살려 놓으라니 어찌 할 수 있나?"

장판수의 몸에 묶인 줄이 위로 툭 던져 올려졌다. 땅 밑에 숨은 자가 순간적으로 장판수를 묶은 뒤 한 짓이었다. 대롱대롱 허리가 묶여 올라간 장판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 놈들이 어찌 이럴 수 있네! 눈앞에 오랑캐가 있는데!'

장판수는 어떻게든 끌려 올라가지 않으려 몸부림을 쳤으나 땅밖으로 올라간 즉시 몽둥이에 머리를 맞고서는 실신해 버리고 말았다.

"오랑캐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장판수가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차충량은 숨이 턱에까지 차서 뛰어 들어온 전령의 보고를 듣고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걱정 마시오! 내 병사들을 이끌고 단숨에 무찌르고 오겠소!"

차충량이 뭐라고 말하고도 전에 최효일이 벌떡 일어서 뛰어 나가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오랑캐들이 쳐들어 왔으니 각 진의 군관들은 병사들을 정돈해 나오라!"

최효일의 명은 간단했으나 그 명을 하달 받은 군관들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병사들이 아직 창칼의 날도 제대로 갈아놓지 못했습니다. 이대로 나가면 가이삿기 한 마리 못 죽입니다!"
"활줄도 아직 바꿔 놓지 않았다고!"
"화약도 없는데 포수가 나설 필요 있소이까?"

이래저래 어수선한 분위기속에서 그래도 천여 명의 병졸들이 병종도 나뉘지 않은 채 모여들었다. 최효일은 그 중에서 칼과 창을 쓰는 병사들을 가려내느라 때를 늦출 수밖에 없었고, 그 사이에 토올이 이끄는 몽고병의 선발대가 목책 가까이까지 다다랐다.

"조선의 궁수들이 보이지 않으니 보병들은 목책을 치워라."

토올의 명에 따라 수백의 몽고병들이 무인지경에 놓여있던 목책을 치워내기 시작했다. 이를 바라보는 최효일의 울컥하는 마음에 속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목책 뒤에는 궁수나 포수가 있어야 된다고 하지 않았나! 그곳의 군관들은 대체 뭘 했단 말인가!"

최효일은 급히 팔백 명의 창수와 도부수를 이끌고 목책 인근까지 달려가 공격명령을 내렸다. 본진에서 떨어져 무기도 없이 태연히 목책을 치우고 있던 몽고병들은 순식간에 날벼락을 맞았다.

"다 죽여라! 이 땅에서 다시는 오랑캐들이 빌붙지 못 하게 하라!"

몽고병들은 비명을 지르며 조선군의 창칼을 피해 흩어졌고 운이 없는 자들은 서너 명의 조선군에게 둘러싸여 그 자리에서 사지가 찢겨 나가도록 난도질을 당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토올은 천천히 손을 올렸고 대기하고 있던 천여 명의 몽고병들이 일제히 말에 오르기 시작했다.

"공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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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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