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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공격을 가해왔던 몽고군은 다음날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 동안에 조선군은 진지를 정비하고 기병의 돌격을 저지할 목책과 구덩이를 팔 수 있는 여유를 얻었으나 술렁이는 분위기만큼은 가라앉지 않았다.

"화약이 없으니 궁수라도 많아야 할 텐데 그렇지도 못하니 참 난감하이."

차충량과 장판수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은 목책을 첫 방어선으로 한 뒤 등패와 칼을 든 병사들을 앞에 세워 혹시 있을지 모르는 몽고 보병의 진격을 막고 적의 기병은 등패수 뒤에 선 장창수로 막아 싸우는 한편 칼을 든 병사들이 그 틈새를 메우며 적과 싸우는 진형을 갖춘다는 것이었다.

"이 경우 적이 돌아들어 후미를 친다면 어렵겠지만 지형으로 인해 이는 어렵고 마주보는 형국이라 어느 정도 버틸 수가 있네."

문제는 차충량의 생각대로 병사들이 움직여 주냐는 것이었다. 훈련 없이 급조된 진형은 한쪽만 무너져도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었고 병사들의 훈련은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논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억지로라도 성안으로 들어가고 볼 일이라는 말이 최호일과 몇몇 군관들에게서 나오기 시작했다. 차충량은 여전히 이 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랬다가 수많은 병력이 성안으로 들어가는 틈을 타 몽고놈들이 뒤를 덮치면 어찌되겠소?"
"그러니 야밤을 이용해 몰래 들어서면 될 일 아니오?"

차충량과 최효일이 옥신각신 논쟁을 벌이고 다른 이들도 언성을 높이자 답답해진 장판수는 장막 밖으로 나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장초관님!"

멀리서 서흔남이 바삐 달려왔다.

"아니 벌써 성안에 다녀왔단 말이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좋은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성에서 돌아온 서흔남이 전한 말은 장막안의 논쟁을 한 번에 가라 앉혀 놓았다.

"그러니까, 수어사께서 몰래 성 안에 있으면서 오랑캐들을 무찌를 비책을 강구하고 있었다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다만 조정의 명을 어기는 격이기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전해왔습니다. 일전의 일도 수어사 나으리께서 일부러 군관에게 그리 응대하라 한 일입니다. 게다가 지금 밖에 진을 치고 있는 오랑캐들을 물리칠 방도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서흔남이 잠시 더 이상이 말이 없자, 장막은 잠시 동안 고요해졌고 몸이 단 최효일이 성급히 캐물었다.

"그 방도가 무엇인가? 어서 얘기해보게."
"그 방도가 너무 오묘하고 기밀을 요하는 지라 진중에서 대장을 하나 성안으로 보내어 지시를 내리겠다고 하여 급히 달려온 것입니다."

장판수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가지. 내래 수어사 나으리 밑에 오래 있어 말이 잘 통할 것인 즉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가겠네?"

서흔남의 입가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가볍게 실룩였다.

"하지만 장초관이 가면 진의 정비는 어찌 하란 말이오?"

차충량의 말에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 최효일이 크게 소리쳤다.

"아, 이 진중에 그리 사람이 없는 줄 아시오! 장초관은 아무 걱정 말고 냉큼 성안에 갔다 오시오. 그 사이에 오랑캐들이 몰려오면 내가 앞장서서 박살을 내 놓으리다!"

최효일의 뒤에 서 있던 차예랑은 미덥지 않은 표정을 자신의 형에게 지어보였지만 정말 수어사 이시백이 남한산성 안에서 좋은 계책을 가지고 있다면 모든 상황이 열악한 성밖의 병력들이 따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까짓 거 제가 앞장서면 금방 갔다옵니다! 게다가 장초관께서도 암문을 통해 성 밖을 몇 번이고 오고가지 않았습니까?"
"망설일 거 있나! 빨리 갔다 올 테니 걱정 놓으시라우!"

장판수와 서흔남은 나는 듯이 진중을 빠져나와 남한산성의 한 귀퉁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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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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