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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장모님과 함께 하우스 주변의 풀을 베어냈습니다. 벌초 이외에는 낫질을 해본 적이 거의 없어 어설프기만 합니다. 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사고도 많은 법이라며 조심하라고 아내가 잔소리입니다.

“감자 캐고 마늘 캔 경험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호기 있게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진짜 겁나는 건 땡삐나 뱀입니다. 벌초하다 땡삐 집 건드려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도록 쏘인 경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농촌에 살아 뱀을 본 적도 많지만 아직도 뱀을 떠올리면 징그럽다는 느낌과 함께 겁부터 납니다.

그래도 아내나 장모님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낫 쥔 손에 힘을 주어 사정없이 휘둘렀습니다. 그 서슬에 놀란 풀들이 차례로 바닥에 누웠습니다. 키 큰 녀석들은 먼저 쓰러졌습니다. 휘두르는 낫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난 키 작은 녀석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습니다.

하우스 골조 주변의 풀들을 대충 베어내고 하우스 바닥에 깔린 장판이며 널빤지를 걷어냈습니다. 지난해 깔았던 것인데 비에 젖고 곰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햇볕에 잘 말려두었다가 하우스 완성된 후 다시 깔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기 머금은 널빤지 무게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힘겹게 널빤지 들어내면 바닥에는 통통하게 살이 찐 지렁이가 꿈틀대기 일쑤였습니다. 널빤지 들어내던 아내는 지렁이가 왜 이리 많은 거냐며 투덜댔습니다.

아내가 투덜댄다고 지렁이가 몸을 숨길 리 없습니다. 널빤지와 장판을 들어내는 아내의 행동이 굼떠지기 시작했습니다. 징그러운 지렁이가 자꾸 나오니 의욕이 꺾인 탓입니다. 고추밭에 약을 다 친 처남이 하우스 작업을 도왔습니다. 일의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무심코 내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었습니다. 꿈틀대는 모습은 지렁이와 다를 게 없는데 지렁이처럼 붉은 색이 아니라 갈색에 가까웠습니다. 크기도 지렁이보다 훨씬 컸습니다. 뱀이었습니다.

“어, 저거 뱀 아냐?”
“어디?”
“저기요.”
“독새여, 아니여?”
“독사는 아닌 거 같은데…….”

난데없는 뱀의 출현에 놀라 부산을 떠는 사이 뱀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아직 걷어내지 않은 널빤지 아래로 숨어들어간 게 틀림없습니다. 아내는 뱀 소리가 들리자마자 멀찌감치 달아났습니다. 처남도 하던 일 멈추고 고추밭에 약 더 쳐야겠다며 슬며시 자리를 떴습니다.

장모님 혼자 두고 갈 수 없어 긴 각목 들고 널빤지를 조심조심 들추어보며 일을 했습니다. 널빤지 다 들어낼 때까지 뱀은 두 번이나 더 나왔습니다. 장모님이 보시고는 구렁이라고 했습니다. 각목을 이용해서 쫓아버리고 일을 했습니다.

“뱀 없어?”

하우스 바닥 정리가 다 되고 비닐 묻을 구덩이를 파낸 뒤 처남이 다가오며 한 말입니다. 시커먼 먹구렁이가 수도 없이 많았는데 다 쫓아버렸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 이기원

ⓒ 이기원
비닐을 씌우고 고랑으로 내려온 비닐을 땅에 묻었습니다. 어설프게 묻으면 비닐이 날아간다고 나무 말뚝 구해다가 가장자리에 묻고 노끈으로 비닐하우스를 돌아가며 묶어주었습니다. 이 일은 처남이 한몫 했습니다. 일을 많이 해본 솜씨여서 아주 능숙했습니다.

ⓒ 이기원
비닐하우스가 완성되니 장모님이 고생했다며 나무 그늘에 식사 준비를 하셨습니다. 우리 엄마 숙원 사업 하나 해냈다며 처남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냈습니다. 빨리 와서 밥 먹으라며 아내는 내 팔을 잡아당겼습니다.

덧붙이는 글 | 땡삐는 땅벌입니다. 다른 벌과는 달리 한번 달라붙으면 죽을때까지 떨어지지 않는 무서운 녀석들입니다.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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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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