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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과 함께 하우스 주변의 풀을 베어냈습니다. 벌초 이외에는 낫질을 해본 적이 거의 없어 어설프기만 합니다. 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사고도 많은 법이라며 조심하라고 아내가 잔소리입니다.
“감자 캐고 마늘 캔 경험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호기 있게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진짜 겁나는 건 땡삐나 뱀입니다. 벌초하다 땡삐 집 건드려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도록 쏘인 경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농촌에 살아 뱀을 본 적도 많지만 아직도 뱀을 떠올리면 징그럽다는 느낌과 함께 겁부터 납니다.
그래도 아내나 장모님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낫 쥔 손에 힘을 주어 사정없이 휘둘렀습니다. 그 서슬에 놀란 풀들이 차례로 바닥에 누웠습니다. 키 큰 녀석들은 먼저 쓰러졌습니다. 휘두르는 낫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난 키 작은 녀석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습니다.
하우스 골조 주변의 풀들을 대충 베어내고 하우스 바닥에 깔린 장판이며 널빤지를 걷어냈습니다. 지난해 깔았던 것인데 비에 젖고 곰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햇볕에 잘 말려두었다가 하우스 완성된 후 다시 깔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기 머금은 널빤지 무게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힘겹게 널빤지 들어내면 바닥에는 통통하게 살이 찐 지렁이가 꿈틀대기 일쑤였습니다. 널빤지 들어내던 아내는 지렁이가 왜 이리 많은 거냐며 투덜댔습니다.
아내가 투덜댄다고 지렁이가 몸을 숨길 리 없습니다. 널빤지와 장판을 들어내는 아내의 행동이 굼떠지기 시작했습니다. 징그러운 지렁이가 자꾸 나오니 의욕이 꺾인 탓입니다. 고추밭에 약을 다 친 처남이 하우스 작업을 도왔습니다. 일의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무심코 내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었습니다. 꿈틀대는 모습은 지렁이와 다를 게 없는데 지렁이처럼 붉은 색이 아니라 갈색에 가까웠습니다. 크기도 지렁이보다 훨씬 컸습니다. 뱀이었습니다.
“어, 저거 뱀 아냐?”
“어디?”
“저기요.”
“독새여, 아니여?”
“독사는 아닌 거 같은데…….”
난데없는 뱀의 출현에 놀라 부산을 떠는 사이 뱀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아직 걷어내지 않은 널빤지 아래로 숨어들어간 게 틀림없습니다. 아내는 뱀 소리가 들리자마자 멀찌감치 달아났습니다. 처남도 하던 일 멈추고 고추밭에 약 더 쳐야겠다며 슬며시 자리를 떴습니다.
장모님 혼자 두고 갈 수 없어 긴 각목 들고 널빤지를 조심조심 들추어보며 일을 했습니다. 널빤지 다 들어낼 때까지 뱀은 두 번이나 더 나왔습니다. 장모님이 보시고는 구렁이라고 했습니다. 각목을 이용해서 쫓아버리고 일을 했습니다.
“뱀 없어?”
하우스 바닥 정리가 다 되고 비닐 묻을 구덩이를 파낸 뒤 처남이 다가오며 한 말입니다. 시커먼 먹구렁이가 수도 없이 많았는데 다 쫓아버렸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비닐을 씌우고 고랑으로 내려온 비닐을 땅에 묻었습니다. 어설프게 묻으면 비닐이 날아간다고 나무 말뚝 구해다가 가장자리에 묻고 노끈으로 비닐하우스를 돌아가며 묶어주었습니다. 이 일은 처남이 한몫 했습니다. 일을 많이 해본 솜씨여서 아주 능숙했습니다.
비닐하우스가 완성되니 장모님이 고생했다며 나무 그늘에 식사 준비를 하셨습니다. 우리 엄마 숙원 사업 하나 해냈다며 처남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냈습니다. 빨리 와서 밥 먹으라며 아내는 내 팔을 잡아당겼습니다.
덧붙이는 글 | 땡삐는 땅벌입니다. 다른 벌과는 달리 한번 달라붙으면 죽을때까지 떨어지지 않는 무서운 녀석들입니다.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에도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