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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김포공항 아시아나항공 탑승수속 창구에 직원들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현수막을 붙이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김포공항 아시아나항공 탑승수속 창구에 직원들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현수막을 붙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소득 수준과 파업권은 별개의 문제

먼저 조종사들의 임금이 매우 높고 그것이 그들이 파업하면 안 되는 중요한 이유로서 타당성이 있는지 한번 보자. 문제는 간단하다. 고소득 직종 종사자는 파업권이 제약받아야 된다는 것은 노동법 어디에도 없다. 사실 소득 수준과 노동법에 따른 파업권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이번 파업은 단체협약과 관련한 것으로 직접 임금 인상을 내걸지도 않았지만 설사 그렇다치더라도 그것은 국민의 세금으로부터 나가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사업 이윤을 내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으로 충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양 당사자간의 이해가 대립되는 부분일 뿐이다.

조종사들이 고소득을 받는다는 것이 공공적 해를 끼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또한 그 이유 때문에 공공적 책임을 져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 오히려 이번 파업에서는 노조가 안전운행이라는 공익적 요구를 핵심적인 요구조건으로 내건 데 비해 항공사측은 이에 따른 기업 이윤의 축소나 조종사들에 대한 통제력 약화를 마치 공공적 이익을 해치는 것으로 호도한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 이번 파업은 단체협약 체결과 관련한 것이지 임금인상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공사측과 보수언론들이 조종사 노조원들의 고액연봉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쟁점을 다른 곳으로 몰고 가 노조의 파업 정당성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파업이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 입힌다는 것은 억지

그리고 항공사 소속의 다른 직원들이나 다른 직종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조건과 비교하여 조종사 노조 파업의 부당성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속임수다. 애써 조종사들이 하는 일이 고숙련을 요구하는 전문 직종이라는 말을 갖다 붙일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조종사의 임금이 다른 직종 노동자들이나 다른 직원들의 임금을 빼앗아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로조건 문제도 그들과 회사와의 관계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노동자들 역시 정당한 임금인상이나 처우 개선을 내걸고 회사와 대립할 수 있다. 조종사들에게 고임금을 주어야 하므로 다른 노동자들에 대해 임금 인상을 해 줄 수 없다고 한다면 마찬가지 이유로 비난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조종사 노조의 파업으로 항공사 소속의 다른 직원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는 논리 역시 억지다. 물론 이번 파업과 관련하여 객관적으로 다른 직원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항공사측이 바로 조종사 노조파업을 빌미로 다른 직원들에게 그것에 따른 일들을 떠넘김으로써 발생된 일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옛날 권위주의 정권 시절 어떤 사람이 반정부적인 활동을 하면 그 주위에 많은 사람까지 피해를 입혀서 그 피해의 원인이 독재 정권이 아니라 마치 반정부적 인사 때문인 것처럼 책임소재를 호도하는 것과 똑같다. 사실 이런 문제는 그들 역시 자기들의 정당한 권리를 내걸고 자기의 업무 외에 부당하게 일시키는 것을 거부할 때 그 본질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번에도 보수 언론들은 인터넷이나 개별적 취재를 통해 항공사 다른 직원들의 파업에 대한 불평불만 사항들을 대대적으로 부각시켰다. 물론 승무원, 정비, 일반직종들을 모두 포함하는 아시아나항공노조의 공식적인 파업지지 선언에 대해서는 애써 눈감으면서 말이다.

안전 운항을 위한 요구가 핵심

요구 조건과 관련하여 보자. 핵심적인 요구사항은 안전 운행을 위한 비행시간 축소와 휴식시간 연장 등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노조원들의 실리적인 이해와 관련된 요구조건들이 많이 있었으나 일반 국민들의 오해 등으로 여론이 좋지 않아 많은 부분 철회했었다. 그렇지만 항공사측과 보수 언론들은 아직도 이 부분을 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사실 노조가 자기들의 실리적 이익을 요구조건에 내거는 것은 노조 본연의 임무 중 하나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입히지 않는다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요구조건 중에 골프채 구비 요구도 실제로는 이미 회사에서도 인정하고 시행하고 있던 것을 공식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골프가 고비용 스포츠인 점을 이용하여 항공사측이 노조의 이 요구를 특별히 부각시킨 것이다.

또한 더 많은 항공권 제공 요구도 그렇게 무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열차 기관사와 그 가족이 열차 승차와 관련한 혜택을 받는 것이나 교사들의 자녀들이 학비에 대한 부분적 면제 혜택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쨌든 이 요구를 비롯한 많은 실리적 이해가 걸린 상당부분을 결국 노조 측에서 철회했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노조가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영어토익시험의 경우 이미 2008년부터 ICAO영어 테스트를 도입하기로 합의했고, 약물검사의 경우 협상 과정에서 말했다면 충분히 수용할 수도 있었는데 항공사측은 노조가 처음에 요구한 내용을 뒤늦게 갑자기 언론에 터뜨려서 노조를 비난하는데 이용했다는 것이다.

특별히 안전 운행과 관련된 부분은 조종사 노조원들의 이익이 걸려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익적인 것으로 노조 측으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안이다. 어떤 이는 항공기가 다른 운송 수단에 비해서 안전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다른 사고와 달리 항공사고는 탑승객 전원의 사망을 가져오는 대형사고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단순 비교는 곤란하다.

노조에서는 안전 운행을 위해 비행시간을 국제적 규정에 맞추어 줄 것을 요청했고 이것은 전혀 무리가 가는 요구가 아니다. 또한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측이 요구한 편승시간(돌아오는 길에 승객자리에 앉아 교대 근무하는 시간)을 비행시간에 포함해 줄 것과 연간 휴무일 120시간 요구는 대한항공에서 이미 200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정년 문제의 경우 노조측이 58세를 요구하고 있는데 그것은 항공법에 60세까지 규정 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대부분 조종사들이 50대 중반에 퇴직해서 60세까지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무리는 아니다. 자격심의위원회와 인사위원회에 노조측에서 1/3을 위원으로 참여시켜 달라는 것도 지금의 노사관계에 대한 사회적 추이로 봤을 때 아직 회사의 결정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결코 과한 요구는 아니다.

사실 항공사측으로는 당장에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어떻게든 이 비용도 덜 부담하려 할지 모르지만 국민이나 제3자의 입장에서는 설사 항공사측에 부담이 가더라도 공익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실제로 근로조건의 개선이 항공사고 위험을 줄인다는 것은 대한항공의 경우 조종사 노조가 출범하고 근로시간을 줄인 2001년 이후로 항공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를 위한 비용 부담 증가는 사고 위험성을 줄여 장기적 차원에서 항공사측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다.

지난 13일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나 항공 조종사 노조 김영근 위원장(왼쪽)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신만수 위원장. 양대 조종사 노조는 "균형잡힌 언론보도를 기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 13일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나 항공 조종사 노조 김영근 위원장(왼쪽)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신만수 위원장. 양대 조종사 노조는 "균형잡힌 언론보도를 기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언론의 편파 보도가 문제

노조가 자기네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공공에 대한 피해를 입힌다는 것 즉 업무나 여행을 위한 승객들을 못 움직이게 한 것과 수출물량의 이송을 막음으로써 국가적 손해를 입혔다는 점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이미 언론들은 파업 전부터 노조쪽의 요구 내용보다는 '항공대란'을 이야기하는 등 그에 따른 피해 부분만을 부각시키며 파업 반대 분위기를 조성해 왔고, 또한 파업이 일어나자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화물기 운항 중지로 말미암아 주 160억원, 월 700억원의 매출 손실이 예측된다는 보도들을 쏟아내며 이런 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이번 파업에 따른 물류 이송 지연과 관련하여 삼성전자는 파업이 종결되어도 아시아나항공과 물류이송에 관한 계약은 해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사실 파업에 따라 일정하게 발생할 수 있는 공공적 피해는 사회적 비용으로 생각하고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도 공공적인 필요에 따라 많은 부분에 대해서 노동권에 제약을 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공공성이 큰 업종일수록 해당 당사자들은 원만한 이해 조정을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이유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막기 시작하면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리고 때로 시민 또는 국민의 이익이라는 것을 내세워 그 가장 중요한 구성원 중의 하나인 노동자들을 그것에서 배제시키는 잘못된 사고방식도 문제다. 그것은 결국 국민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사용자측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 파업의 경우도 원만한 해결을 위한 아무 노력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이미 작년 9월에 단체협약안을 내놓고 4개월 뒤인 1월에 단체 교섭에 들어가 30여 차례의 협상을 벌이고 경고 파업까지 한 차례 벌인 뒤 이루어졌다.

이번 파업 사태에 대한 언론의 편향은 매우 심각했다. 그리고 그런 여론 몰이가 일반 국민들의 파업에 대한 부정적 판단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정치인이나 삼성 같은 대기업, 그리고 항공사측에 보다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는 꼴이 됐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노조원들의 실리적 이해에 대해서는 상당히 철회하거나 후퇴했다.

그러나 안전운행을 위한 비행시간, 휴식시간 등과 관련한 문제는 파업의 정당성과 관련한 문제로 노조로서도 후퇴하기가 매우 힘든 게 틀림없다. 언론도 진실로 공공적 이해의 입장에 선다면 이제 태도 변화가 있어야 된다.

안전운행 쪽에 무게를 둔 노조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준다면 그것이 항공사측에게도 부담으로 다가와 타결국면으로 전환하는 데 용이한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비행기의 안전 운행에도 커다란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안헌수 기자는 이전에 노동운동을 했던 평범한 시민으로 조종사 노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나, 파업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바로잡는 한편 파업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 이 글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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