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5년만의 재연이다. 학생 두발 규제를 반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에서 서명운동이 일어나고 학생들이 서울 광화문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양상은 달랐지만, 5년 전에도 우리 사회에서 학생 두발 단속은 '문제'였다.

그때 교육부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5년이 흐른 2005년 5월, 다시 그 문제가 불거졌다. 여전히 일부 교사들은 직접 이발사가 되기도 한다. 학생 두발 규제, 자유를 체험하지 못한 이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내재된 현상 같다. 언제쯤 학생들의 머리카락에 자유를 허할 수 있을까!

"지난주 토요일 저희 학교에서는 학생부 조회가 있었습니다. 다들 두려워하죠. 저와 같은 신입생들은 더더욱 긴장합니다. 여기서 잠시 저희 학교 두발 제한을 말씀드리자면, 앞머리 길이는 코밑(3학년은 턱). 항상 핀 꼽고 다녀야함. 층진 머리 안 되고요. 항상 귀밑으로 머리를 단정히 묶어야 함(검은색 머리끈). 옆머리 삐져나오면 안 됨. 그야말로 올·빽·머·리라고 할 수 있죠. (중략) 일단 걸린 사람들 더 샅샅이 검사합니다. 지나가면서 머리끈 탁! 풀고 자연층 난 거까지 샅샅이 검사합니다. 저희가 무슨 죄수들입니까? 다음날 언니들 보니까 일자로 머리 자르고 왔더군요. 얼마나 추하던지…. (중략) 진짜 감옥 같아요. 어른들 눈에는 저희가 깔끔해 보입니까? 부모님한테 뭐라고 말해 봐도 그냥 다니라그러고. 제가, 저희가 원하던 중학교생활은 이딴 게 아니었다고요. 2005. 5. 23."

"교사가 강제이발을 한다"

지난 3월 10일부터 두발 제한 폐지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는 청소년 커뮤니티 포털사이트 게시판(http://www.idoo.net)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이밖에 이 사이트에는 체육시간에 두발단속에 걸리면 3점이 깎인다든가, 두발검사에서 걸리면 각종 시상대상에서 제외되고 니코틴 검사를 우선적으로 받는다는 등의 두발 단속 관련 에피소드들이 올라와 있다. 이 에피소드는 대부분 하소연이지만 거기에는 '고발성'도 있다.

2005년 3월 전국 중·고등학교가 신학기를 맞아 두발 단속을 강화하면서 이에 대한 학생들의 문제제기도 잇따르고 있다. 특히 단속과정에서 교사가 직접 학생들의 머리를 보기 흉하게 자르는 등의 도를 넘는 행위에 학생들은 스스로 인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 잘려진 머리카락
ⓒ 아이두넷
2005년 3월 국가인권위에 접수된 학생 두발 관련 진정 내용도 그런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서울의 A공업고등학교와 B고등학교의 경우 "두발 단속 시 규정을 어긴 학생에 대하여 교사가 강제이발을 한다"는 내용이 접수됐다. 지방 소재 남녀공학인 C중학교 역시 "여학생에 대하여 머리를 묶지 못하게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불편하니 이를 시정해 달라"는 진정이 접수됐다. 국가인권위가 실제 이 사건을 조사한 결과 진정 내용이 사실로 확인됐다.

현재 중·고등학교의 두발 제한은 각 학교 내에서 학교생활규정이나 자율적인 방침 등을 통하여 이뤄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머리 길이와 모양을 모두 규제하고 있다. 교육부가 국가인권위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2005년 5월 11일 현재 2761개 중학교와 1924개 고등학교에서 두발 제한을 하고 있는데 이는 각 학교의 92.6%와 91.1%에 해당하는 수치다. 또한 학교마다 그 제한기준이 일정하지 않다. 이를 테면 '앞머리-눈썹 위 1cm 이내, 옆머리-귀 위 3cm 이상 위로 밀 것, 뒷머리-아래쪽으로 약간 둥글게 양 옆머리 선을 연결, 윗머리-정수리 부분 3cm 이내, 기타 부분은 균형 유지' 등으로 제한하는데, 부위별 길이는 학교마다 차이가 있다.

중·고등학생의 두발 규제 논란은 지난 2000년에도 불거졌다. 당시에도 중·고등학생들은 두발 제한을 폐지하거나 자율화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교육부는 2000년 10월에 민주적 합의절차를 통해 두발 제한을 자율적으로 제한하라는 지침을 각급 학교에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인권단체와 국회의원들의 조사 결과를 보면 별다른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2001년 10월 인권운동사랑방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교칙에 용의복장 규정을 담고 있는 209개 중·고등학교 가운데 두발 모양과 길이를 제한한 학교는 181개였으며 특정 사항만을 예외로 지정해 금지한 학교는 15개였다.

2004년 10월 구논회 의원이 155개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교생활규정에서 두발을 규제한 학교는 132개였고, 머리 모양을 규제하는 학교는 10개였다. 또한 올 5월 이주호 의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학교는 2951개 학교 중 2761개 학교가, 고등학교는 2068개 학교 중 1924개 학교가 두발을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주호 의원의 조사에서는 32개 중학교와 44개 고등학교가 올해 3개월간 이발기계를 이용해 두발 단속을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발 자유는 기본권에 해당

현재 국가인권위는 중·고등학생의 두발 제한과 관련된 쟁점을 검토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에 진정이 접수된 사례도 있거니와 사회적으로 두발 제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3일에는 '학생 두발 제한의 인권적 쟁점과 대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국가인권위가 검토하고 있는 쟁점은 ▲학생의 두발 자유가 기본권인지 여부 ▲학생 두발 제한의 합리적 한계와 요건 ▲학생 두발 관련 제도 개선 방안 등 세 가지다. 이 쟁점들에 대한 검토 기준은 헌법과 교육기본법, 그리고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다.

학생의 두발 자유가 기본권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관련 법조계에서는 두발 자유가 자기결정권에 해당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인간이 두발을 어떤 상태로 유지할지는 개성을 자유롭게 발현하는 권리이므로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하는 자기결정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헌법학회 김상겸 교수(동국대 법대)는 "특히 자기결정권은 타인에게 위해를 미치지 않는 한 일정한 사적 사안에 관하여 공권력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서 본질적인 자유권"이라고 국가인권위 자문에 답변했다.

이 밖에도 국가인권위 자문에 답한 법조계 전문가들은 두발 자유는 헌법 제10조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등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즉 학생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간이 가져야 할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 등 기본권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오동석 교수(아주대 법대)는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자유에는 개인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유로이 사생활을 누릴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된다"며 "모든 개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머리 모양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런 점에서 학생의 두발 또한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학생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두발제한 규정을 근거로 학생의 두발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헌법 및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강제적으로 학생의 머리를 자르는 것은 인격권 등에 대한 침해에 해당한다.

▲ 머리카락이 잘려나간 청소년의 머리
ⓒ 아이두넷

강제 이발은 인격권 침해

이처럼 두발 자유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 권리인 만큼 만일 두발을 제한한다면, 헌법 제37조 제2항에 규정된 국민의 기본권 제한의 한계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 본질적 내용 또한 침해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규제한다면, 그 목적은 통제의 편의성이 아니라 인권의 주체인 청소년의 보호와 인격 형성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그 수단 역시 강제이발과 같은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나 교육청에서 제시하는 두발 제한의 이유는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거나 두발 제한의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두발 제한의 이유가 학생 생활 통제나 학습 집중이라고 하지만, 실증적인 상관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필요성에 의하여 자율적 통제 아래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학생의 두발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적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더욱이 학교와 교사마다 그 제한기준도 각각이어서 법적 안정성을 해하게 되며, 두발 규제가 검사와 강제단속으로 이어져 학생의 프라이버시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이와 함께 검토되는 사항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두발 제한을 명시한 규범이 학교생활규정이라는 점이다. 통상 학칙은 지도·감독기관의 인가를 받도록 되어 있지만 학교생활규정은 인가사항이 아니다. 따라서 학생의 두발 제한 등 학생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교생활규정 내용에 대하여 교육인적자원부와 교육청의 지도·감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두발 제한과 관련된 학교생활규정을 제·개정할 때는 지도·감독기관에 보고하도록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의 관련 규정을 개정함으로써 그 내용에 대한 인권적 관리와 감독을 강화할 필요도 제기되고 있다.

두발 규제시, 학생 포함된 민주적 협의 절차 필요

그렇다면 이와 같은 학생 두발 규제와 관련한 제도개선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대한교육법학회 회장 허종렬 교수(서울대 교대)는 두발 제한이 위헌이 되지 않기 위해 충족해야 할 요건을 몇 가지 들었다. 먼저 "두발의 제한 여부 및 정도에 관해서 학생에게 일차적인 결정권을 부여하여 일차적으로 자발적 규제가 되도록 하고, 교원은 이를 보충적으로 동의하고 지도하는 선으로 물러나"야 하고, "구체적인 방법은 학교생활규정을 만드는 과정에 학생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도록 그 문제를 일단 학생회의 자치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 머리카락을 잘리는 청소년들
ⓒ 아이두넷

실제 이와 유사한 사례는 대구광역시 교육청의 지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지침에 의하면 교직원회와 학생 대의원회를 통해 선출된 대표 각 11인 동수로 학교생활규정위원회를 구성한다. 이 위원회에서는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학교생활규정 개정 절차 진행 등을 다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회안을 마련하는 절차를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

먼저 학급회의를 통해 각 학급의견을 수렴한 후, 대의원회 토론 및 기본안을 작성한다. 대의원회 쟁점 사항에 대해서는 2차 학급회의를 개최하여 대의원회에서 수정하고 최종안은 3차 학급회의를 통해 인준한다. 여기에 교사회 안과 학부모 의견조사를 보태 학교생활규정위원회를 열게 된다. 이 같은 방식은 교사와 학부모 대표가 참여하는 현행 학교운영위원회 제도로서는 두발 제한 규정 등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 과정에 학생이 결정자로 참여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해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에서도 학교생활규정의 제·개정시 교사, 학생, 학부모의 민주적 협의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그러나 각급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도나 지침에도 불구하고 일선학교에서는 이러한 지도내용이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학교생활규정 제·개정에 대한 의견수렴이나 협의절차가 요식화, 형식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좀더 근본적인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가인권위는 이와 같은 학생 두발 제한과 관련한 쟁점을 검토하고, 빠르면 6월 말경에 학생 두발 제한과 관련한 의견을 낼 계획이다. 5년 만에 다시 불거진 학생 두발 규제. 적어도 이 부분에서의 인권 체득만큼은 학생들이 청어람하고 있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 7월호에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