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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지하철 1호선> ⓒ 극단 학전
지난 19일 오후 7시 30분, 극단 학전의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2700회 공연을 기념해 청각 장애인 100명을 초청했다. 극단 학전이 장애인문화누림 컨소시엄과 함께 마련한 이번 공연에서는 수화 통역, 한글 자막을 제공해 청각장애인들의 이해를 도왔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리허설에는 이번 공연의 수화 통역사인 고경희, 김정순씨도 참여했다. 무대 한 쪽에는 조명과 마이크가 설치된 수화통역사들의 자리가 마련됐다. 무대 조명 유무에 관계 없이 청각장애인들에게 수화 통역을 항상 보여주기 위해서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연극전문통역사 고경희, 김정순씨를 만났다. 고씨는 "대본을 미리 받고 배우들의 특성에 맞는 역할을 소화해내야 한다"며 수화로 '아프다'는 표현을 실제 노인처럼 손을 떠는 시늉과 함께 "노인의 대화를 수화로 옮긴다고 할 때 손을 조금 떨며 표현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지하철 1호선> 수화 통역 중인 고경희씨
<지하철 1호선> 수화 통역 중인 고경희씨 ⓒ 김경태
고씨는 또한 음악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트럼펫, 피아노 등과 같은 악기를 손으로 연주하는 연기를 하며 음의 높낮이 정도만 표현한다"며 "청각장애인들도 '쿵쾅'거리는 느낌은 알기 때문에 수화를 보면 그 느낌을 더 정확하게 전달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옆에서 인터뷰를 지켜보고만 있던 김씨는 "처음에는 청각장애인들이 이런 공연에 대해 굉장히 지루해 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고 그만큼 연구도 많이 했다"며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청각장애인들도 좋아하게 됐다"고 고씨를 거들었다.

7시 50분이 다 되어서야 공연은 시작됐다. 대다수 청각장애인들이 뮤지컬 공연을 처음 접해 보는 터라 공연 내내 시종일관 무대를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잘 듣지 못하기 때문에 한글 자막과 수화 통역을 모두 보지 않으면 뮤지컬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무문이었다. 그만큼 뮤지컬을 이해한다는 것은 청각장애인들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공연 내내 장애를 가진 청각장애인들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는 '특별한'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배우들의 동작이 아닌 수화 통역과 한글 자막에 초점을 맞추는 점만 다를 뿐,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배우들의 호응 요구에도 적절히 반응했다.

2급 청각장애를 가진 고진영(25)씨는 수화를 통해 "재미있지만 수화 통역과 한글 자막, 배우들의 움직임을 모두 한꺼번에 보는 것이 힘들다"며 뮤지컬을 관람하는 게 쉽지 않았음을 밝혔다. 3급 청각장애를 가진 김태원(28)씨 또한 "세 가지를 한꺼번에 보는 것이 어렵다"고 고씨와 같은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김씨는 "배우들의 얼굴 표정을 수화나 한글 자막과 동시에 볼 수 있으면 더 좋을 듯하다"며 희망사항을 얘기했다.

10가 넘어서야 끝을 맺은 공연은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막을 내렸다. 공연장을 빠져나오며 관객들은 <지하철 1호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고맙습니다'는 수화와 함께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연장 밖으로 빠져 나오던 김태원씨는 "앞으로 이런 공연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꼭 한 번 다시 오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수화통역, 한글자막 서비스는 처음 시도"
[인터뷰] 장애인문화누림컨소시엄 책임팀장 박진제씨

▲ 장애인문화누림컨소시엄 책임팀장 박진제씨
리허설에 들어가기 10분 전 이번 공연의 책임팀장인 박진제씨를 만나 보았다.

- 이번 공연을 기획한 계기가 있습니까?
"장애인문화누림컨소시엄에서 문화관광부가 지원하는 문화바우처 시범 사업의 하나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는 무료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한하여 장애인들에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한다면 문화바우처 사업은 문화관광부의 1억이라는 예산 지원으로 장애인 스스로가 원하는 시간대에 직접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볼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발전된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 오늘 공연에는 청각장애인들만 오는 것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예, 청각장애인 100분과 함께 기타 장애인도 30분 초청을 했습니다. 물론 그 외의 좌석은 일반인들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 <지하철 1호선>을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학전은 예전부터 문화나눔활동을 하던 극단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은평재활원에서도 이곳 학전의 공연을 보기 위해 다녀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학전 <지하철 1호선>은 해외 공연을 통해 외국인들을 위한 자막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 청각장애인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앞서 말한 것처럼 수화 통역과 한글 자막을 시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이 얼마나 이해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00%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앞으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이런 공연이 또 계획되어 있습니까?
"현재 장애인들에게 CGV 영화, 서울연극협회의 20여개 극단, 학전의 <지하철 1호선>, 국립극장의 <돈키호테> 등이 제공되고 있는데 수화 통역과 한글 자막이 제공되는 공연은 <지하철 1호선>이 최초입니다. 그러나 문화바우처 사업은 장애인 1인당 3만원으로 지원 비용을 한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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