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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월경산에서
비오는 날 월경산에서 ⓒ 정성필
월경산 급경사의 길을 오를 때 숨이 턱에 차고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경험을 할 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숨이 턱에 차고 하늘이 노랗게 변해가는 그 불안한 상태에서도 몸은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만 내 정신력이 이러다 죽을 것이니 그만 쉬고 포기하자고 아우성을 치는 것 뿐이다. 사탕 하나를 먹었을 뿐인데, 몸에선 사탕 하나의 칼로리를 다 흡수했는지 사탕을 먹기 전과 먹고 난 후의 반응이 달랐다. 나는 벌써 걸을 준비가 되었다라고 몸이 속삭이는 듯했다. 놀랍다.

한때 나는 내가 혹시 건강염려증 환자가 아닌가 의심을 할 정도로 나는 내 몸의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었다. 내 몸에는 몇 가지 병이 따라 다녔다. 우선 나의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지 않는다. 불규칙하게 뛰는 이른바 부정맥이다. 조용히 내 맥을 짚으면 고르게 맥이 뛰는 게 아니라 몇 번에 한 번은 맥박이 뛰지 않는다. 그래서 매년 병원에서 심장 관련 질병을 검진 받았다.

두 번째 내가 가지고 있는 병은 담석증이었다. 담석통 때문에 응급실에 몇 번 실려 가다 2년 전에 수술을 통해 아예 쓸개를 잘라 버렸다. 그래서 내 몸엔 쓸개가 없다. 폐에 작은 구멍이 있는 사실은 작년에 확인했다. 호주로 가기 전 건강 검진을 받는데 엑스레이 사진에 작은 구멍이 폐에 난 것을 소견서 작성하는 의사가 알려 주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포함해 외가 쪽으로 절반 이상이 간경화나 간암 등으로 젊은 나이에 작고하신 분이 많다. 외가의 유전을 받아서인지 나는 늘 피곤했고, 온몸이 붓는 일이 수시로 있었으며 급성 간염 등으로 입원 치료 받은 사실까지 있었다. 어깨는 늘 아팠고 척추를 중심으로 등이 심하게 아픈 이른바 반(半) 건강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몸에 대한 유별난 보호를 하고 있었다. 조금만 힘들면 잠자는 일을 선택했다. 자고, 쉬고, 잘 먹고, 그게 내 몸에 대한 각별한 보호 조치였다. 그러나 백두대간에서는 내 몸 보살피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매일 걸어야 했다. 걷기 위해 내 몸을 너무 혹사 시키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 내 사고 방식은 바뀌어가고 있었다. 몸이 혹사 당하고 있던 게 아니라 나약한 정신이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 몸은 변하고 있었다. 호흡이 고르게 뛰고 있었고, 소화도 잘되었으며, 잠도 많이 줄었다. 무엇보다도 산 아래서는 거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을 매일 걷고 있었다. 그것도 편편하게 잘 닦인 길이 아니라 험한 산길을 걷고 있었다. 걸음은 몸을 먼저 변화시켰다. 산길을 걷고 있는 것은 내 몸이었지 아직도 산 아래 두고 온 내 정신은 아니었다.

월경산 능선을 걷고 있는 중 해질 시간이 아닌데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너무 이른 시간 어두워지는 것 같아 하늘을 올려 본다. 서쪽에서 시커먼 구름이 몰려온다. 구름의 움직임이 빠르다. 아마도 한 시간 이내에 비가 쏟아질 듯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급히 텐트를 친다. 아직 한 시간 정도는 더 걸을 수 있는 시각이지만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산에서 비 맞으며 걷는 일은 위험하다.

텐트 칠 자리를 찾을 겨를도 없이 텐트를 길 옆 나무 사이에 친다. 좌측으론 급경사로 떨어지는 계곡이다. 그렇다고 길에다 칠 수는 없는 일이어서 텐트를 나무와 나무 사이에 급하게 세웠다. 텐트를 친 지 얼마 안 되어 비가 쏟아진다. 곳곳에서 엄청난 소리와 함께 번개가 번쩍인다. 텐트 안에서 촛불을 켜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잘한 일이라고. 비는 밤새 내린다. 물이 없어 텐트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씻기도 하고 밥도 한다.

밥을 먹고 딱히 할 일이 없다. 빗소리가 요란하게 텐트를 때린다. 다행이랄까? 바람에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무섭게 들리는데 텐트는 고요하다. 조용히 텐트 안에서 빗소리 바람소리 벼락치는 소리를 듣는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촛불의 심지를 본다. 일지를 써야하는데 펜이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한기가 느껴진다. 침낭을 꺼내 속으로 들어간다. 몇 시인지 시계도 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깨어보니 새벽 세 시쯤 되었다. 아직도 빗소리가 들린다. 밤새 내릴 듯하다. 아침엔 비가 그쳤으면 하는데, 도로 잠이 든다. 다시 깨어나 보니 6시였다. 아직도 비는 계속 내린다. 종일 올 듯하다. 7시까지 기다려 보다 비가 그치지 않으면 그대로 텐트 걷고 이동하기로 한다.

7시가 되어도 비가 그치질 않는다. 아침은 저녁에 먹다 남은 밥 대충 먹고 물이 있는 중치까지 가기로 한다. 텐트를 걷어 배낭을 꾸려, 매어 보니 무게가 두 배도 더 된다. 비에 무게가 더 가중되었다. 빗물은 길을 스키장으로 만들었다. 월경산에서 중치 가는 길은 내내 흙길이어서 죽죽 미끄러진다. 가는 길에 험하게 패인 산이 마치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길 곳곳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빗물이 흙탕물을 이루며 산의 패인 곳을 휘몰아 돌아간다.

무덤 옆 그루터기가 있어 잠시 앉아 쉰다. 빗줄기가 점차 약해진다. 중치에 도착했을 때 비가 완전히 그친다. 구름이 하얗게 산을 휘감아 돌아 하늘로 빠르게 상승한다. 중치 이정표에 배낭을 내려놓고 물이 있다고 표시 된 왼쪽으로 내려간다. 물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다시 올라가 오른쪽으로 가보니 밭이 보인다.

직감적으로 밭이 있으면 물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배낭 매고 내려간다. 약 사 백 미터를 내려가니 밭이 또 하나 있고 그 밭 뒤쪽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물소리를 따라 가니 경운기 다닌 흔적이 있고 밤새 내린 비로 물이 불어 실개천처럼 흐르는 물이 있었다. 시간은 열시가 조금 안되었다. 햇빛이 짱짱하다.

우선 입고 있던 판초우의를 벗어 넓게 편 다음 그 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짐을 꺼낸다. 젖은 옷이며 침낭이며 다 꺼내 말린다. 텐트는 활짝 펴 나뭇가지에 걸어 말린다. 나는 어제부터 제대로 씻지 못한 내 몸을 호강 시킨다. 코펠을 바가지 삼아 몸에 좍좍 붓는다. 차갑다. 온 몸이 떨린다. 하지만 좋다. 떨리지만 적당히 뜨거운 햇빛이 몸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게 좋다. 씻고, 말리고, 여유를 부린다. 얼마만인가 싶다. 깨끗한 일류 호텔이 부럽지 않다.

밤새 비 내리는 가운데서 눅눅했던 몸과 냉기에 덜덜 떨었던 몸을 산에서 흐르는 물로 닦아내고 햇빛에 말려주고 하니 몸도 싱싱하게 살아나는 꽃처럼 환해진다. 날아갈 듯하다. 물이 있는 곳에서 아예 점심까지 해 먹으며 젖은 물건들이 다 마를 때 까지 쉬기로 한다.

매트리스를 펴놓고 한숨 잔다. 밤새 잤는데, 또 잠이 온다. 눅눅한 잠이 아니라 햇빛에 바짝 마른 잠이라 잠깐을 자도 좋다. 잠자고 쉬고 밥해 먹고 온통 이곳이 다 내 것인 양 편하다. 비가 멈춘 산허리에 햇빛이 내리자 김처럼 수증기가 오른다. 초록빛이 더욱 짙게 보인다. 출발이다. 오늘은 물이 있는 곳 무령치까지 가야 한다. 지도를 보니 백운산은 내내 오르막이다. 걱정이 앞선다. 중산리에서의 악몽이 떠오른다. 하지만 내 몸은 변하고 있다. 아직 더 많이 변해야 하지만 이미 내 몸은 백두대간 전의 나약한 반 건강인의 몸이 아니었다. 중치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백운산을 향해 걷는다. 중재를 지나 백운산 오르막을 걷기 시작한다.

백두대간 시작할 때 나는 별 준비 없이 시작했다. 준비 없이 백두대간 시작한 게 큰 자랑은 아니다. 하지만 시작했다는 것에 의미 부여를 한다.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 등등의 문제가 크긴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대간 길을 어떻게 찾아 갈 것인가?"의 문제였다. 궁하면 통한다.

대간 길은 이미 대형버스를 대절해 구간 종주하시는 분들에 의해 고속도로처럼 길이 분명했다. 게다가 대간 길에는 지나갔던 사람들 숫자만큼 각종 쓰레기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세 가지 기준으로 길을 찾았다. 첫 번째 길 찾는 방법은 표시기(리본을 나뭇가지 등에 걸어 놓은 것)를 보고 찾아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두 번째는 쓰레기를 찾으면 되었다. 길에는 사탕 껍질, 과일 껍질, 빵 봉지, 심지어는 먹다 남은 음식부터 휴지등을 찾으면 된다. 그래서 대간 길엔 파리가 무척 많았다. 심지어는 벌보다도 더 큰 거대한 파리(?)까지도 붕붕거리며 사람을 괴롭혔다. 앉아 밥이라도 먹으면 음식 냄새 ,땀 냄새를 따라 어디선가 수십 마리의 파리들이 새까맣게 모여들어 붕붕거리며 비행기 소리를 내며 덤벼든다.

마지막으로 길 찾는 방법은 스틱 자국을 따라가면 된다. 대개 대간은 구간종주라도 장거리 산행이기 때문에 금속성 스틱을 사용한다. 스틱 자국이 난 길은 뾰죽한 꼬챙이에 찔린 것처럼 길에 구멍이 나있다. 구멍에 신음하는 것처럼 보이는 길을 따라 가면 거긴 대간길이다. 나는 어차피 스틱도 준비 안했거니와 스틱이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나무 지팡이였으니 대간 길을 뾰족한 스틱으로 콱콱 찍어대는 일을 하지 않아 일종의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길에 미안함이 덜했다. 스틱자국 난 길을 따라 갈 때 마음이 편했다.

백운산은 계속 오르는 오르막이다. 지도상으로는 두 시간 반으로 되어 있었다. 한 시간쯤 오르는데 너무 힘들어 손에 쥔 나무지팡이를 짧게도 쥐었다가 길게도 쥐어 보고 혹은 걸음과 지팡이의 박자도 오른발 나갈 때 지팡이도 오른쪽 지팡이가 나가고 왼발 나갈 때 왼쪽 지팡이를 짚기도 하면서 걷는다.

그것도 힘들면 지팡이 하나를 버리고 나머지 하나로 지게 작대기처럼 엇비스듬하게 체중을 싫어 지팡이에 의지해 걷기도 한다. 그것도 힘들면 지팡이를 도로 주워 두개를 가지고 삼 사보 앞에 엎어지듯 먼저 찍어 놓고 그 지팡이에 온 몸을 의지해 지팡이가 나간 거리만큼 기어가듯 지팡이에 의지해 걷기도 한다. 그래도 힘들다. 하는 방법이 없다. 그냥 참고 걷는 수밖에 없다. 힘든 것을 잊기 위해 노래를 흥얼거린다. 흥얼거리는 일조차 힘들어지면 그냥 걷는다.

그러다 너무 힘들면 걸음을 세면서 걷는다. 한 삼 사백 걸음쯤 세다보면 신기하게 힘들다는 생각을 잊어 버린다. 백운산 중턱까지 흥얼거리기도 하고 걸음도 세어 보기도 하고 지팡이 잡는 방법을 바꾸어 보기도 하면서 오른다. 하지만 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도 힘이 든다. 너무 힘들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스스로 후회가 된다. 차라리 시작하지나 말 것을 ...... 후회한다. 더 이상 가지 말고 여기다 텐트치고 오늘 하루 푹 쉬어 버리기나 할 거나 별별 생각을 다 하지만 몸은 생각과 상관없이 걷고 있다.

중치에서
중치에서 ⓒ 정성필
고개 들어 능선을 보면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능선이 보인다. 보면 조금만 가면 될 듯한데 가보면 또 다른 능선이 파란 하늘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마치 신기루처럼 오르고 또 올라도 능선은 같은 극끼리 밀어내는 것처럼 내가 가는 만큼 멀어지는듯하다. 하지만 이만큼 걸었으면 가야 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산 없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는다. 걷다 보면 정상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내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저 산을 올라가는 게 중요하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았다. 지금은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저기 정상까지 오르는 일이 중요하다. 생각을 비웠다. 아니 생각을 비운 게 아니다. 백운산을 오르는 동안 몸이 너무 힘드니까, 배낭이 너무 무거우니까, 생각마저 무게가 있어, 다 비우고 버리고 올라가게 된 것이다.

다 비우고 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배낭을 맸는지 벗었는지, 내가 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 나무 지팡이를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전혀 인식이 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걸음이 편해졌다. 마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면서 가벼이 걷는다. 걸음이 편해지자 이상하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슬픔의 눈물도, 기쁨의 눈물도 아닌 어떤 감정의 결과로 흐르는 눈물이 아니다. 그냥 눈물이 난다. 까닭 없이 눈물이 난다. 걸음마다 발등으로 땀과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뜻도 없는 눈물을 쏟으며 걷는다. 땀과 눈물이 섞여 자꾸 눈으로 들어간다. 정상이 얼마 남았는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는 이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땀과 눈물로 지금 걷는 나를 내가 보고 있다. 나는 도전하는 중이다. 도전하기 때문에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걸음은 도전이다. 도전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버리고 비웠다. 처음엔 배낭을 비우고 다음엔 정신을 비우기 시작하니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를 씻어내는가 보다. 나는 아무런 까닭 없이 울면서 산을 오른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다시피 백운산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덧붙이는 글 | 나이 사십에 도전했던 백두대간 연속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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