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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마당
우리 집 마당 ⓒ 조명자
그러나 우리는 그럴 처지가 못 된다. 우선 서울의 집값이 너무 비싸 세를 얻을 엄두조차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세를 얻더라도 최소한 방 3개짜리는 얻어야 하기 때문에 전셋돈만 하더라도 어림잡아 1억 이상은 있어야 한다. 그 많은 돈의 이자를 감당하려면 식구들이 모여 살면서 얻는 행복의 두 배 정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판이니 어떻게 합칠 생각을 하겠는가.

주말에 꼭 가야 할 약속만 없으면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시골집으로 뛰어내려오는 남편이다. 집에 와서 몽이와 뒷산도 올라가고, 동네 어른들 찾아다니며 인사도 하고. 무엇보다 마누라가 차려주는 밥상을 대할 수 있다는 것도 보통 행복이 아닌가 보다.

백일홍 꽃밭 앞에 남편이 쌓은 탑
백일홍 꽃밭 앞에 남편이 쌓은 탑 ⓒ 조명자
남편이 좋아하는 생선조림에 나물반찬. 이것저것 늘어놓은 밥상을 내어 놓으면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먹는 모습만 보아도 내 배가 절로 부른 느낌이다. 남의 돈 먹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쉽겠는가? 힘들고 지친 직장생활에서 돌아 갈 집이 있다는 것, 내 남편에게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나는 잘 안다.

다른 친구들 마누라처럼 능력이 있어 맞벌이를 하나, 아니면 몸이라도 건강해 약값 걱정을 안 시키나. 도무지 나 같은 마누라는 남편에겐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다. 그래도 부실한 마누라에게 싫은 내색 않고 묵묵히 가장의 책임을 다 하는 남편. 내가 그런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남편이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내 집을 지켜주는 일, 그것 아닐까.

원추리 옆에 늦은 자두
원추리 옆에 늦은 자두 ⓒ 조명자
허름한 시골집 사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예쁘게 가꿔놓았다. 뭐든지 정갈한 것을 좋아하는 남편이기에 집안 살림도 정신없이 늘어놓지 않는다. 꼭 필요한 살림을 최소한으로. 그릇이든 가구든 있는 것 이외에 더 이상 늘리지 않는다는 주의다.

돈을 안 들이고 예쁜 집 만드는 법.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꽃밭 가꾸는 것이 최고다. 봄, 여름, 가을…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로 내 집 마당은 화려하다. 부지런히 풀매고 거름 주고. 나팔꽃, 수세미 같은 꽃들에겐 넝쿨 감고 갈 비닐 끈도 매어주고. 잔가지 정신없는 나무들 찾아 가위질도 해주다 보면 하루 해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판이다.

깨박사 나리와 졸고 있는 분꽃
깨박사 나리와 졸고 있는 분꽃 ⓒ 조명자
아침에 나가 장맛비에 고꾸라진 접시꽃 대궁을 깨끗이 잘라버리고 풀까지 매어 놓으니 주변이 시원하다. 한여름 남편에게 즐거움을 몽땅 안겨준 접시꽃과 이별하니 그 옆에 '아기 범부채'가 접시꽃 대신 빨간 웃음을 함뿍 선사한다.

연보라 비비추 꽃, 노란 원추리 꽃, 봉숭아, 백일홍, 도라지 꽃…. 깨박사 나리꽃과 연분홍 글라디올라스까지 합쳐놓으니 우리 집 꽃밭이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어느 고대광실이 부러울까? 부부이별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세게 남아 남편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베이스 캠프'를 지키고 있는 나!

남편에게 나는 행복을 배달해 드리는 '행복 전령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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