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은 영월을 중심으로 서쪽에서 흐른다. 동강에 결코 뒤지지 않는 절경이다. 서울이 아니면 어디든 좋다는 생각에 무작정 길을 나섰다. 계획에 없는 충동여행 탓이었을까? 영월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넘었다.
하룻밤 몸을 맡길 곳이 없다는 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이미 주변의 모든 숙소가 예약이 끝난 상태. 곳곳마다 왁자지껄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우리 일행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주인장이, 인자하신 할머님이 계신 마당 깊은 시골집을 소개시켜주었다. 대신 우리는 밤새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야 했다.
우리는 일찍 출발할 요량으로 평소보다 잠을 줄였다. 부지런도 하시지, 언제 일어나셨는지 텃밭에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계신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청령포로 길을 잡았다.
단종의 아픔·슬픔을 모두 보고 들은 소나무
청령포는 단종이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 땅에 유배되었던 곳으로, 동서남북 사방이 깊은 물로 막혀있어 단종이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표현한 바 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 사이로 단종의 어소가 보인다.
이곳에서 단종은 외로운 유배생활을 하였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세조는 사자를 통해 사약을 보낸다. 하지만 사자는 어린 단종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독약 그릇을 강물에 버리고 자신은 강물에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이러기를 계속하는 동안 단종은 자신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죽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개를 구해오게 했다.
"감기가 심하여 개를 삶아 먹어야겠다. 그런데 내 손으로 개를 잡을 수가 없구나. 내가 방에 들어가 개 목을 옭아 놓을 테니 네가 밖에서 명주줄을 당기거라"라고 명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은 곳은 관풍헌이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걸터앉아 한양에 두고 온 정순왕후 송씨를 생각했던 상징적인 관음송이 있다. 이 소나무가 관음송이라고 불려오고 있는 것은 1457년 단종이 유배를 온 뒤 생활하는 모든 것을 보고 들었다고 해, 볼 관(觀), 들을 음(音)에 소나무 송(松)자를 붙인 것이다.
이 관음송 외에도 금표비가 서 있는데, 이 비석은 일반 백성들의 출입과 행동을 제한하기 위해 영조 2년에 세운 것으로 "동서 삼백척 남북사백구십척"이라 새겨져 있다. 당시 단종에게도 이러한 제약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이 비석으로 단종은 백성들과 단절된 채 외롭고 서글픈 유배생활을 했으리라.
가슴 아픈 단종의 전설이 흐르는 청령포를 뒤로 하고 서둘러 서강이 합쳐지는 주천강으로 향했다. 주천강에는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 많은데. 그 중 염둔천 계곡과 요선암이 좋다. 염둔천 계곡은 주천면 주천리 일대의 약 7km 구간으로, 깨끗한 물과 바위, 울창한 숲이 조화를 이뤄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주천강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옛날 주천면 지역에 술이 솟는 바위샘이 있었는데, 양반이 잔을 들이대면 청주(淸酒)가, 평민이 잔을 들이대면 탁주(濁酒)가 솟았다. 어느 날 한 천민이 양반 복장을 하고 잔을 들이대며 청주를 기대했지만, 바위샘이 이를 알아채고 탁주를 쏟아 냈다. 천민이 화가 나서 샘을 부숴 버리자 이후부터는 술 대신 맑은 물만 흘러나와 강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그 바위샘은 관리가 되지 않아서인지. 바위에 붉은 글씨로 '주천'이란 글자만 새겨져 있다.
저녁 무렵 강바람을 맞으며 바위에 앉아 주천강 수면 위로 흐르는 산 그림자들을 보고 있으면 고단했던 하루가 말끔히 씻기는 듯하다. 올 여름휴가는 레프팅, 트래킹, 산행을 즐길 수 있는 동강과, 단종의 애절한 역사가 흐르는 서강이 있는 영월, 정선으로 계획하는 것도 좋겠다.
또한 영월에는 예쁜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 들을 볼 수 있는 별마로 천문대가 있다. 시간이 허락지 않아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으나 무더운 여름밤 아이들과 함께 별 볼일 있는 여름밤을 보내면 좋을 듯싶다.
[가는 길]
경부,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신갈. 호법 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만종분기점까지 달린다. 제천 IC에서 빠져나와 38번 국도를 달리면 영월까지 3시간 남짓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