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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의선 기차 안에서
ⓒ 심경일
기자는 지난 일요일(10일) 저녁.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에 있는 '아시아의 친구들'이라는 국제비정부 기구를 함께 방문하고 서울로 돌아가던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를, 달리는 경의선 기차 안에서 인터뷰하였다. 기차가 서울에 도착한 후 채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신촌기차역 근처 찻집에서 나눌 수 있었고 인터뷰 자리에는 '아시아의 친구들'에 동행했던 일행이 한 분 더 있었다.

서울대 입시안을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제3의 눈으로 예리하게 짚기로 이름난 박 교수를 통해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교육의 문제'들에 대해 되짚고, 뒤집어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특정대학 3부 요직 독점, 보기 드문 사례"

- 이번 '서울대 입시안 논란'을 통해 서울대 학벌, 파벌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특정대학 학벌이 입법, 사법, 행정부의 요직을 상당수 독점하고 있는 것은 보기 드문 사례이며 이번 '서울대 입시안' 논란과 같이 대학 총장과 교수들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공무원인 국립대 교수로서 항명과 같습니다. 또한 국민이 주인이라는 근본적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학벌이민(나치 시대에 독일을 떠나는 유태인처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학벌의 문제는 심각해요. 인재육성이 가장 큰 원동력인 한국사회를 억누르고 있는 학벌문제를 직시하여 학벌패거리 구조를 부수어야 합니다.

지금 서울대에 가는 학생들은 사교육을 흠뻑 받고 강남에 살면서(그들만의 리그) 서울대 학벌을 통해 성장할 학생들이 많습니다. 학벌을 대물림하려 하려는 것 아닌가요? 신분사회처럼…. 독점의 욕망을 서울대를 통해 충족하려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 신촌의 한 찻집에서
ⓒ 심경일
- 역사학자로서, 서울대와 정부에 뭐라고 충고를 해주신다면?
"조선의 역사를 보더라도 귀족 학맥인 노론이 조선정계의 요직을 독차자지하며 교조화되어 기타 파벌을 '왕따'시켰습니다. 귀족 학맥이 지나치게 설치면서 망국으로 연결되는데 지금의 서울대를 보면 노론보다 더 동종교배(순혈주의)가 심합니다. 동종교배는 학문의 질을 떨어뜨리는데, 아직도 (서울대) 상당수 학과에 타 대학 출신 교수가 없습니다.

다른 학파와 교류하며 서로 도전하고, 제자도 스승에게 도전할 수 있는 학문적 분위기가 중요한데, 현재 서울대는 너무 닫혀 있습니다. 정부는 합리적 제도들을 제대로 마련해서 학벌 패거리가 난무하는 사회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입시지옥, 학벌사회, 대학서열화, 주입식 교육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데, 그 고리를 어떻게 끊어내야 할지 정부가 앞장서 고민해야 합니다."

"충분한 공교육 지원, 꿈같은 이야기인가요?"

- 공교육 시스템에 대해 한마디 해주신다면.
"교육이 뭔가요? 지식과 함께 남과 협력하며 더불어 사는 지혜를 키워나는 것 아닐까요. 그 과정에 평등과 인권의식, 학생들의 조화로운 심신발달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체벌, 두발과 같은 일제 때나 박정희식 파시즘 아래에서 자행된 부분들이 모습만 바꿔 그대로 학교 현장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는 아이들의 인격존엄성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자기존엄성을 알도록 가정, 학교, 사회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공교육 실태에서 교사 1인당 학생비율, 교실환경 등을 생각할 때 가슴이 답답합니다. 아직도 더운 날에 에어컨도 없는 교실에서 수업하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이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국가가 공교육에 제대로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이 주체로서 평등하게 나설 수 있는 수업이 되어야 하고, 학교문화도 평등해져야 합니다. 노르웨이의 경우 중학교 때부터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이 주체로서 당당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학생 의견을 자꾸 물어봐주고, 자기주장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요. 우리는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로봇을 만드는 교육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시민 양성, 평등한 사회의 토대를 마련하는 교육을 위해선 공교육답게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꿈같은 이야기인가요?"

▲ 신촌 기차역에 도착
ⓒ 심경일
- 네 살 난 교수님의 아들이 어떻게 자랐으면 좋을지 바람을 말씀해 주세요.
"고등학교 졸업하면 네가 원하면 집 나가도 좋다! 진로에 대해 간섭하지 않을 겁니다. 최소한 남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용접공을 하든, 배관공을 하든 뭘 하든지간에 본인이 굶지 않고 행복하다고 느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에게 아이의 미래에 대해 그렇게 간섭할 권리가 있는 걸까요? 꼭, 대학을 나와야 사람이 되는 걸까요? 본인이 하고 싶은 방향으로 행복한 쪽으로, 그렇게 가도록 놓아두고 바라볼 생각입니다."

그때 옆자리에 있던 일행의 말. "교수님. 아들은 노르웨이에서 키우세요. 한국에 와서 크면 불행해질 확률이 높아요."

그 말을 들으며, 기자는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데,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감사의 인사를 끝으로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임진각행 경의선을 타고 바라본 하늘은 잔뜩 흐려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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