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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무 0의 세계> 책표지
<존재하는 무 0의 세계> 책표지 ⓒ 이끌리오
오늘날 우리는 숫자를 빼놓고는 어떤 삶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숫자만큼 개인을 규정하고, 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존재가 또 있는가. 만약 당신이 은행에 가서 돈을 찾는다고 가정하자. 이름과 도장 혹은 서명 이외에 당신은 통장계좌번호, 비밀번호, 찾는 금액, 날짜를 기록해야 한다. 계좌이체를 한다면 당신은 상대방 계좌번호를 덧붙여 써넣어야 한다.

그런데 당신은 어떤 교통편으로 은행에 당도했는가. 버스라면 몇 번 버스인가. 지하철이라면 몇 호선인가. 도중에 휴대전화로 통화하지 않았는가.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고 당신은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당신이 통화한 시간총량이 화면에서 웃고 있다. 승용차를 이용했다면 당신은 차량번호와 속도계기판, 주행거리표시기에 적혀 있는 숫자들과 만났을 것이다.

이런 본보기를 들자면 끝이 없다. 그런데 만일 숫자 0이 세상에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지 생각해 보셨는가. <존재하는 무 0의 세계> 저자 카플란은 이렇게 말한다.

"0과 1을 짝지으면 정수들 세계전부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계산기와 컴퓨터, 전화기, 텔레비전 등 모든 가전제품은 0과 1이라는 이진코드의 수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0과 1은 각각 꺼짐과 켜짐에 대응하는 수다." (274쪽)

1616년 나피어가 처음 생각해낸 0과 1의 이진법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러니까 무(無)를 의미하는 0과 최초의 자연수 1의 조합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무수한 숫자들이 창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융숭하게 대접받는 0도 그 시작은 미미하였다고 한다.

1616년, 나피어 0과1의 이진법을 만들다

<존재하는 무 0의 세계>에는 0장이 있다. 다른 서적들의 머리말이나 제1장에 해당할 내용을 감각적으로 0장에 위치시킨 것이다. 저자는 0장에서 자신의 기획전체를 간결하게 설명한다. 0장의 제목은 이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0이라는 렌즈를 통해 본 세상' 카플란은 수학의 개념만으로 0에 다가서지 않는다. 거기에는 철학과 역사와 문화가 공존한다.

그는 0의 등장을 기원전 2,500년 무렵에 멸망한 수메르에서 보고 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사라져버린 0의 존재를 동서양문명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밝혀내고자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카플란은 수학자로서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저자의 이런 입장은 한편으로는 '박물학자' 카플란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자' 카플란으로 드러난다.

박물학자의 시선은 고전 그리스 시대와 이집트, 알렉산더 시대와 아랍과 인도를 거쳐 마야문명을 지나 중세유럽을 경과하면서 셰익스피어와 만난다. 자연과학자의 눈길로 르네상스를 살핀 그는 수학사에서 불멸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라이프니츠와 뉴턴에 머물다가 20세기에 등장한 오스본 레이놀즈의 <우주의 구조에 대한 인식의 획기적 반전>에까지 이른다.

"별들로 가득한 광대한 우주를 향해 항해하는 현대의 우주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예전에 완전히 비어있는 공간으로만 알았던 곳을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수많은 소립자들로 채우고 있다. 수십억 개의 별들이 발하는 빛과 빅뱅이 남겨놓은 배경음과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희미한 울림들이 고요한 밤하늘을 온통 어지럽히고 있다." (235쪽)

결국 0의 수학적 개념에서 출발하여 우주공간과 시간에까지 시유를 확장하는 카플란의 인식과 사유는 매우 폭넓고 깊이 있어 보인다. 반면에 수학과 철학, 문학과 문화 그리고 물리학까지 섭렵하는 저자의 박람강기를 따라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노릇이다. 더욱이 변증법적인 서술양식에 입각한 사유와 글쓰기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요구할 지경이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필요한 저자의 '박람강기'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대하고 있는 0의 개념에 대하여 카플란은 수학의 본질적 요소라고 여겨지는 '반복적 추상화'(recursive abstracting)에 의지하여 사유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인도의 수학자 바스카라의 저작 <비자가니타 Vija-Ganita> 서론을 인용하면서 0의 개념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고자 노력한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근원적 실체를 숭배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의 유일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드러난 양을 다루는 산술은 드러나지 않은 양을 다루는 산술에 기초해있다. 그리고 해결해야 할 의문들은 드러나지 않은 양을 적용하지 않은 상태의 허술한 이해력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087쪽)

실제로 0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공허와 무로 다가온다. 그러나 0을 제외하면 기초적인 산술뿐 아니라, 고등한 수학적인 개념이나 공리도 성립할 수 없다. 전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매순간 접하는 수많은 0의 존재와 활용을 생각하면 된다. 후자의 경우에 대해서 우리는 '로피탈의 법칙'이나 미적분학을 연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수학자 카플란이 도달하고 있는 풍요로운 문화와 교양에 젖어들 수 있었다. 수학자이자 자연과학자 본연의 입장과 자세를 시종일관 유지하면서도 문학과 예술 일반에서 적절한 예증과 본보기를 가져오는 탁월한 인문학자의 모습을 본 것이다. 추정과 학문을 대비하면서 수학에 요구되는 직관과 증명을 설명하는 저자의 탁견을 보자.

"직관과 증명은 수학적 사고의 양축을 이룬다. 직관은 자유로운 상상력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여러 현상들을 음미하고 그것으로부터 아름다운 사물들을 구성하며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도록 해준다. 증명은 직관적 사고에 합리성을 부여하는 일에 집중하며, 몇몇 연역적 규칙을 이용하여 공리에서 직관적 주장을 연역해내기도 한다.” (215쪽)

이와 같은 직관과 증명의 도움을 받아서 희미하게 보이는 대상의 오류와 모호함으로부터 벗어나 수학은 이해 가능한 것으로 다가온다고 카플란은 말한다. "수학은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그것을 추구하는 자에게만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저자는 지나친 추상화의 난해함으로부터 훌쩍 벗어나 있다. 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

한 가지만 사족으로 덧붙이자. 혹시 당신은 '피보나치 (Fibonacci) 수열'에 대하여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1, 1, 2, 3, 5, 8, 13, 21, 34, 55... 등으로 이어지는 수열이다. 앵무조개 무늬에서 해바라기 씨에 이르기까지 자연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피보나치 수열의 성립방법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존재하는 무 0의 세계>, 로버트 카플란 지음, 심재관 옮김, 이끌리오, 2003.


존재하는 무, 0의 세계

로버트 카플란 지음, 심재관 옮김, 이끌리오(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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