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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오늘은 뭘 하고 노나!"
"이젠 노는 것도 걱정이네!"

몽고병들은 보초조차 제대로 세워두지 않은 채 삼삼오오 모여 씨름판을 벌이거나 마유주를 마시며 노닥거렸다. 아예 밤을 새워 술판을 벌이는 경우도 허다했는데 그들의 군기를 바로 잡아야 할 장수들까지 같이 어울리다보니 규율은 흩어질 대로 흩어진 상태였다. 이런 몽고병들 사이를 낯선 이들이 횃불을 들고 지나가고 있었으나 그들의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웠으므로 구태여 이를 경계하는 이는 없었다.

"어이! 거기 마유주나 같이 하지!"

몽고병들의 부름에도 낯선 사내들은 아무 말 없이 지나칠 따름이었다. 마침 주위를 돌아보고 있던 토올이 사내들의 거동이 수상쩍음을 눈치 채고선 큰 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이봐! 자네들은 어디에서 오는 길인가?"

사내들이 대답이 없자 토올은 그들이 몽고말을 못 알아듣는 건 아닌가 하여 만주어로 다시 그들을 불러 세웠다. 그러나 대답대신 날아든 것은 불을 붙인 대나무 통이었다.

"아뿔싸!"

토올의 비명과 함께 사내들이 던진 대나무 통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죽통은 주로 몽고병들의 파오를 겨냥하여 던져졌고 삽시간에 수 십 개의 파오가 화염에 휩싸여 무너져 내렸다.

"당황하지 말라! 저 놈들을 잡아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몽고병들은 우왕좌왕거릴 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사내들이 던진 것은 지화통이라고 불리는 던지는 화약무기였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몽고병들은 사내들이 요망한 술법을 부린 것이라 여겨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놈들을 잡아라!"
"아니다! 어서 불부터 꺼라!"

혼란의 와중에서 수많은 몽고병이 다쳤고 진지는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설상가상으로 고삐 풀린 말들이 불길에 놀라 병사들을 짓밟는 바람에 죽는 이까지 생겼다. 잠에 빠져 있다가 뒤늦게 이 광경을 본 보얀은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아직도 조선군이 항복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래도 이게 무슨 꼴이냐!"

한바탕 소란이 휩쓸고 지나간 후 보얀의 앞에 사내들이 던져두고 간 격문이 부관을 통해 내보여졌다.

'네놈들의 극악무도한 횡포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분노하고 있다. 조선의 병사들이 남한산성아래 모여 너희들과 자웅을 가릴 것인 즉, 이틀 후에 결전을 치르자. 너희들이 오지 않겠다면 스스로 목을 잘라 우리에게 바쳐라. 그 목을 창대에 꽂아 천하에 돌려 보이며 자자손손 겁쟁이라고 마음껏 비웃어 주마.'

"그깟 한줌도 안 되는 조선군 따위를 두려워할 소냐! 우리에겐 2만의 정병이 있다!"

보얀은 조선에 온 이후로 싸움다운 싸움을 한 적이 없어 몸이 근질거리던 차에 잘 되었다며 큰 소리를 쳤다. 부장 토올은 격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합니다. 조선군은 기병의 수가 적거나 없기 때문에 함부로 야전에서 싸우려 하지 않는데 어찌 이렇게 경망스러운 글을 던져놓고 갔는지…."

"조정이 항복했으니 그 놈들도 분이 쌓여 그런 게 아니겠느냐! 병사들을 모아라! 날이 밝는 대로 남한산성으로 진군한다!"

본래 싸움이라면 피하지 않는 몽고병들인지라 순식간에 군기는 바로잡혀 곳곳에 흩어진 몽고 병사들에게는 급히 전령이 달려가 신속히 본진으로 집결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서 흩어진 몽고병들이 기습을 당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몽고병들은 복수를 하자는 결의로 뭉쳐졌다. 황제 홍타이지를 위시한 만주병들이 물러간 후 조선 땅은 자기 손아귀에 들어와 있다고 여기고 있었던 보얀과 몽고병들은 이러한 치욕을 한 번에 씻어야겠다는 의지로 다져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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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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