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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롤 오츠 에세이집 <작가의 신념> 앞표지
조이스 캐롤 오츠 에세이집 <작가의 신념> 앞표지 ⓒ 북폴리오
‘작가의 신념’에 관하여 생각하고 오랜 습작을 해왔으며 전업작가 생활을 해온 지도 어느덧 15년이 넘었지만, 이 땅에서 ‘작가의 신념’을 되새기는 것만큼 사치스런 일이 어디 있냐며 끝없이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인터넷 서점을 돌며 판매지수를 보면 몇몇 인기작가를 빼놓고는 거의 빈사(瀕死) 상태 아닌가.

한국인이 책 안 읽기로 유명한 것은 한두 해 전 일이 아니지만, BBC 인터넷판 6월 27일자가 ‘미 NOP월드가 조사한 주당 활자매체 독서시간 중 한국이 평균 3.1시간으로 30개국 중 꼴찌로 드러난 것을 알려놓아, 어떤 외국인이 “무식(無識)한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 아닌가?”하고 면박을 주어도 할말이 없게 되어버렸다. ‘현실과 이상’이라 했던가, 양쪽 모두 문학을 통하여 구원받지 못했다며 1997년쯤에 자살한 이 땅의 한 여성작가가 생각난다.

에세이집 <작가의 신념>을 낸 조이스 캐롤 오츠?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미국에서는 꽤 알려진 사람이다. <나와 더불어 그대 뜻대로> <블랙워터> <좀비>가 한국에서 번역돼 나왔는데, 필력에다 작품의 완성도를 두루 갖춘 미국 작가를 들자면 이 작가를 따라 갈 이가 드물다. 단편, 장편, 시, 평론, 에세이 등, 장르도 두루 꿰어 100권 가까이 써냈다. 1938년 뉴욕에서 태어나 시라큐스 대학과 위스콘신 대학에서 공부했고, 2005년 현재 프린스턴 대학 인문학부 석좌교수다.

<작가의 신념>은 그녀가 수십 년에 걸쳐 쓴 에세이를 묶은 것이다. 그렇다고 방대한 분량은 아니고 ‘작가의 신념’에 관련된 핵심적인 에세이가 지루하지 않게 담겨 있다.

그녀의 화제작 <금발(Blonde)>은 마릴린 먼로를 중심인물로 선택하여 쓴 소설이다. 그렇다면 마릴린 먼로를 아는 사람과 인터뷰도 해야 했을 터, 그러나 “당신은 밀러나 먼로를 아는 다른 사람과 만나거나 인터뷰를 했나요?”하는 그렉 존슨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오. 나는 아무하고도 ‘마릴린 먼로’에 대해 인터뷰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쓴 것은 마릴린 먼로가 아니었습니다. 노마 진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신화적인 사람들과 결혼합니다. 그녀의 남편들 중에는 전직 육상선수와 극작가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조 다마지오와 아서 밀러에 대해 쓰고 싶었다면, 이 복잡한 남자들에 대해서는 다른 양식으로 써야 했을 것입니다.” -<작가의 신념> 184쪽

“어떻게 그렇게 많이 씁니까?”하는 질문을 많이 받을 만큼 그녀는 다작이지만, 고쳐 쓰기도 아주 많이 하는 작가다. 부분을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시 써나간다. 그래서 편집자들은 때때로 그녀가 출판하기로 결정했던 부분들을 완전히 다시 쓰는 것에 놀란다고 한다.

이 책에는 그녀가 작가가 되기까지의 성장록도 들어 있으며, 작가 활동을 하면서 얻어낸 예술가로서의 신념의 깊이도 담겨 있다.

우리 도서관에는 책이 선반 한두 개를 채울 정도밖에 없었는데, 그 중에는 웹스터 사전도 있었다. (중략) 내 최초의 독서 경험은 사실 이 사전 덕분이었다. (중략) 이 사전은 소중한 <앨리스>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수십 년 동안 내 보물로 남아 있다. -<작가의 신념> 17~18쪽

책장 위의 언어는 얼음처럼 차가운 매체다. 공연자나 육상 선수들과 달리, 우리는 원하는 만큼 다시 상상하고 교정하고 완전히 퇴고해야 한다. 우리의 작품이 돌에 새겨지는 것처럼 돌이킬 수 없이 인쇄되기 전에는 원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 (중략) 소설이라는 고통의 치유법은 오직 소설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당신의 가슴속에 있는 것을 써라. -<작가의 신념> 40쪽

작가와 시인들은 움직임을 좋아한다. 달리지 않는다면 하이킹을 한다. 하이킹을 하지 않는다면 걷는다. -<작가의 신념> 42쪽


작가와 시인들은 움직임을 좋아한다? 단지 눈에 보이는 움직임만 좋아할까?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므로 ‘정(靜)’을 좋아하는 것 같겠지만, ‘정(靜)’이라고는 하여도 여기에도 끊임없는 움직임이 들어 있을 터, 작가들에게는 단순히 멈추어 있는 ‘정(靜)’이 아니라 사색의 움직임이 담겨 있는 ‘정중동(靜中動)’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교가 두 인간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학적 고찰 중 사례연구 부분>을 쓴 소설가 송경아씨가 번역했다.

덧붙이는 글 | <작가의 신념> 조이스 캐롤 오츠 쓰고 송경아 옮김/2005년 2월 5일 북폴리오 펴냄/207×140mm 하드커버 240쪽/값 9800원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6부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2005년 12월 출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작가의 신념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송경아 옮김, 북폴리오(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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