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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전라남도 보성 출신 M선배와 드라이브를 하다 우리 부부의 지역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선배에게 '충청도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란 제목으로 메일을 보냈다. 아래는 보성에서 15년, 서울에서 30년을 넘게 산 전라도 출신 선배의 답장이다.
"잘 읽었네. 내 고향이 전라남도 보성이라는 걸 자네는 물론 알고 있지? 지금은 다원(차밭)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내 유년 시절은 그야말로 '시골' 그 자체였다네.
미술시간에 야외에서 그림 그리다가 지나가는 기차에 손 흔들었다고 선생님에게 혼나고, 여름방학 숙제 중 하나는 언제나 식물채집이 있었고, 농번기 때는 가끔 낫 들고 등교해 학교에서 꽤 떨어진 곳으로 걸어 '보리베기'(집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도 하고, 보리나 벼 이삭 주워 학교에 가져가는 숙제도 하고….
이렇게 거기서 중학교(보성여중)까지 보내고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네.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느꼈던 그 경이로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네. 후로 몇 군데 외국에도 다녔지만 그 시절 중학교를 막 졸업한 소녀의 뇌리에 각인된 것보다 나를 감동시키고 놀라게 했던 것은 없었네.
뭐라 할까? 문화충격(이 말은 어른이 된 다음에 알게 되었네만)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지. 아무튼 우리 신랑이 지금도 보성에 어쩌다 가게 되면 늘 "니네 형제들 굉장히 출세했다"고 번번이 놀린다네.
자라면서는 소위 말하는 '전라도 치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다가 대학 들어와 친구들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간간이 '전라도 편견'에 대한 말들을 들었네. 그 때는 그게 전혀 내게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는데.
대학 2학년 때 만난 너무도 사랑한 남자에게서 내 고향이 전라도기 때문에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할 거라는 날벼락을 맞은 뒤부터 내 의식도 깨이기 시작했지.
그리고 곧 '광주민주화 항쟁'이 있었고, 얘기하자면 너무 길고 약 오르고 기분 나쁘고 가슴 아프고 그렇네.
하여간 자네 글 읽고 두서없이 적어 보았네. 자네 신랑에게 'M선배가 전라도 출신이다'고 확실히 얘기하게나. 어제 지나쳤던 수많은 들판들이 각각의 빛으로 꿈자리를 아름답게 수놓아주었다네. '고맙다'는 말로 인사 대신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