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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 이기원
흙에 묻힌 채로 세상을 향해 처음 얼굴을 내미는 감자를 손으로 주워 내는 기분도 참 좋습니다. 같은 밭일을 해도 김을 매는 일보다는 감자 캐는 일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알 굵은 감자를 집어내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야, 자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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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감자 캐는 일에 몰입해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질겁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지렁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비온 뒤라 그런지 밭에 유난히 지렁이가 많습니다. 실처럼 가는 새끼 지렁이도 있지만 때로는 굵직한 놈도 있습니다. 실지렁이 보면 무덤덤하게 그냥 캐지만 굵은 지렁이 보면 호들갑입니다.

“감자 캐는 아줌마가 지렁이를 무서워하면 돼?”

아내는 조심스럽게 지렁이를 호미로 밀어내고 다시 감자를 캡니다. 어찌 보면 지렁이가 더 놀랄 일이지요. 잘못 휘두르는 호미에 찍혀버리면 두 동강이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렁이를 만나면 감자 골라낸 뒤에 흙으로 잘 묻어줍니다.

감자 캐다 개미집을 파헤치기도 했습니다. 개미가 새카맣게 흩어져 우왕좌왕합니다. 일부 개미는 발등 위로 기어오르기도 합니다. 부서진 개미집 사이에서 감자를 주워낸 후 호미로 개미집을 흙으로 덮어줍니다.

지렁이나 개미 말고도 감자밭에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습니다. 감자 덩굴 사이에 숨어 있던 귀뚜라미도 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발에 힘은 제법 붙어 있어서 폴짝폴짝 잘도 뛰어 달아납니다. 흙더미 사이를 기어 다니는 거미도 있습니다. 흙 속에 숨어 있던 굼벵이도 있습니다.

ⓒ 이기원
이름을 알 수 없는 곤충도 있습니다. 막 호미질을 하려는데 짝짓기 하는 곤충을 발견했습니다. 한 번의 호미질로 생명마저 사라질 뻔했던 위기의 순간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들은 꽁무니를 붙이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녀석들이 있는 흙을 호미로 떠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고 감자를 캤습니다.

ⓒ 이기원
저녁 무렵 처남이 와서 도와주니 훨씬 일이 빨라졌습니다. 비도 내리지 않아 감자를 다 캤습니다. 곳간에 감자가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감자를 나르며 아내와 장모님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엄마, 오늘은 편안하게 자겠네.”
“그래, 감자 다 캐서 맘이 편하다.”
“엄마, 집에 소금 좀 있어?”
“뭐할라고?”
“배추 뽑아다가 김치 담그려고 하는데 소금이 모자랄 거 같아.”
“항아리에 소금 많아. 갈 때 봉지에 담아 줄께.”

어둠이 내리는 하늘 저편으로 검고 묵직한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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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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