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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불량주부일기> 강희우 작가
만화 <불량주부일기> 강희우 작가 ⓒ 홍지연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죠. 지난 1년간 나쁜 일이 있었을까요? 그랬다고 해도 다 잊어버릴 만큼 즐거운 시간들인 걸요."

1년 전, '강나루'가 속시원히 사표를 내던지며 세상에 말을 걸어왔고, 사람들은 그 말에 귀기울였다. 따뜻하고 소심하고 수다스럽고 때론 방정맞은 캐릭터의 힘에 촌철살인의 날개를 달아 '데일리줌'의 간판만화로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도 인기를 얻었는데 얼마전 성공리에 방영을 마친 SBS의 <불량주부>는 대만진출을 시작으로 해외에까지 세를 확장해갈 조짐이다. 보는 이를 포복절도하게 하는 그만의 언어유희는 이미 놀라운 수준이고 반짝이는 위트는 그의 작품의 중요한 미덕이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가 '허름한 허세'의 '오리알유희'로 바뀌고, 여러 상품명과 광고 문구, 유행어 등을 재치있게 패러디한 걸작들이 작품 안에서 매일 쏟아져 나온다. 라면하면 '겁나면', 음료 '비싸1000', 의류 '지웠다노'… 한 번은 모 아파트 브랜드를 별 의도없이 '구리지요'로 바꿨다가 해당 업체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듣고 사과문을 싣는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생명은 다른 무엇도 아닌 캐릭터의 힘. 강 작가는 강나루와 마눌님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마눌님은 냉랭하면서도 무관심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배려하고 나루를 은근하게 사랑하는 모습이 꼭 대한민국 남편들의 모습을 닮았죠. 나루는 기존의 '간 큰 남자'와 비슷하다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렇게 어둡거나 마이너적이지 않아요. 밝고 가볍죠. 10년 전에 나왔다면 전혀 인기가 없었을 거예요."

강나루처럼 독신남인 강희우 작가 또한 살림을 제법 한다. 살림 잘하고 수다스럽고 때론 방정맞은 강나루는 사실 강희우의 분신이라고 할 만하다.

"먹는 것, 요리하는 것 다 좋아해서 어떤 음식을 먹게 되면, 이게 뭐가 들어갔구나, 덜 들어갔구나 이런 분석을 꼭 해요. 먹을 때 좀 시끄러운 편이죠.(웃음)"

오로지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

ⓒ 강희우
<불량주부일기>는 그의 데뷔작이다. 1년 전, '데일리줌'에서 신인 작가를 찾고 있을 때 강희우는 만화가협회의 추천을 받아 본격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어릴 때부터 그의 유일한 꿈은 만화가였다고 한다. 당시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코스였다.

그는 이두호 작가의 작품에 심취했었고, 그의 문하생이 되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퇴짜를 맞았지만 재도전 끝에 그의 문하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의 나이 열아홉 때 얘기다.

"처음에 이현세 선생님 만화와 제가 그린 만화들을 섞어서 가져갔었거든요. (이두호)선생님께서 '난, 이런 그림 안 그린다' 하시더라고요. 쇼크를 받고는 <주간 만화>에 연재되고 있던 선생님의 작품 <덩더꿍>의 한 회를 다 베껴서 가져갔죠. 표지와 크기까지 똑같이 해서 가져갔어요. 그걸 보시곤 선생님께서 내일부터 나오라고 하시더군요."

아마도 그의 성실함과 근성이 테스트의 관건이었던 모양이다. 그 때가 1988년. 그후 강희우는 무려 10년간 이두호 문하에 있었다. 자신의 만화적 수양이 덜 됐다는 생각에 오랜 세월 스승 곁을 감히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가 어느 틈엔가 찾아든 권태기를 이길 수 없어 일본으로 가버린 것은 그즈음이었다. 10년간 만나왔던 만화에 대한 의심,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게 만화였나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한 10년쯤 하다 보니 만화에 대한 열정이 많이 식었던 때였어요. 만화가 하기 싫었던 때였죠. 한 6개월 정도만 실컷 놀자 생각하고 일본에 갔고 그곳 디자인 학교에 편입했죠."

그곳에서 지내면서 그는 점점 예전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자신은 만화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꼈다. 일본에 있는 동안 학교를 졸업하고 꽤 탄탄한 직장도 구했지만 그의 마음은 어딘지 허전했다.

"행복하기 위해 그립니다"

ⓒ 강희우
"일본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니까 친구들이 많이들 말리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어요. '내가 만화를 그리고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

행복하기 위해 만화를 그리듯이 강 작가가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것도 '행복'이라는 메시지다. 실수연발, 티격태격, 좀 모자르긴 해도 알콩달콩한 삶을 꾸려가는 강나루와 마눌님처럼 "그래도 우리가 함께 살아서 행복하구나"라는 식의 발견과 같은 행복.

"<불량주부일기>가 조금은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고, 그게 저한테는 행복이에요. 제가 의도했던 의미가 독자들에게 읽혀지는 것 같아 즐겁고 큰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는 만화와 함께 어느새 2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우연인가' 싶을 때도 많았듯이 만화만을 고집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운 적도 없다. 먼훗날 만화가가 아닌 다른 '강희우'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만화와 만화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강나루와 보낸 지난 1년의 시간은 그 생각을 더욱 분명하게 한다.

"앞으로의 계획이요? 당분간은 다른 일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루에게 빠져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오면 코믹한 사극을 하게 될 것 같아요. 그저 만화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해요. 투철한 소명의식이 없어서일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만약 다른 일을 해도 만화를 했던 때를 언제까지나 추억하면서 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콘텐츠진흥원의 CTNews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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