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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잃은 고라니들의 '엄마'가 된 윤승양씨가 고라니들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다. 처음에는 잘 먹지 않았지만 요즘은 '밥때'를 알아서 먼저 기다린다고.
어미 잃은 고라니들의 '엄마'가 된 윤승양씨가 고라니들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다. 처음에는 잘 먹지 않았지만 요즘은 '밥때'를 알아서 먼저 기다린다고. ⓒ 김정숙
울산 북구 화봉동에 사는 윤승양(50)씨는 요즘 '고라니 엄마'가 다 됐다. 울산 북구청으로부터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만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르고 있는 어미 잃은 세 마리 아기 고라니들 때문이다.

윤씨는 아침 7시부터 시작해 하루 네 번 때 맞춰 고라니 새끼들에게 우유를 먹여야 하고, 틈틈이 같이 놀아도 줘야 한다. 고라니들은 다른 사람이 오면 경계를 해 숨어버리기 일쑤지만 윤씨만은 엄마처럼 생각해 졸졸 따라다니며 재롱도 떤다.

"저녁에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기도 좋아하고 주민자치센터에서 풍물도 배우고 하는데 요즘 이 녀석들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오질 못해요. 저녁 6시쯤에 우유를 먹이고 또 밤 11시쯤 돼서 자기 전에도 먹여야 하거든요. 제때 먹이지 않으면 얘들이 배고파서 어떡하나 하는 맘에 밖에 있어도 안절부절못한답니다. 그러니 내가 비록 남자지만 고라니들에겐 엄마나 마찬가지죠."

처음에는 고라니들이 우유를 먹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요즘은 서로 먹으려고 난리다. 이 우유를 먹고 하루가 다르게 고라니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처음에는 고라니들이 우유를 먹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요즘은 서로 먹으려고 난리다. 이 우유를 먹고 하루가 다르게 고라니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 김정숙
윤씨와 이들 고라니들이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7일. 북구청은 이들 고라니들을 주민의 제보로 천곡동 모 과수원에서 발견했다. 태어난 지 1주일 가량 된 듯한 이들 고라니들은 몸도 가누지 못한 채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당시 어떤 사연인지 모르지만 어미가 거두지 못한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북구청은 그런 고라니 새끼들을 데리고 왔지만 맡길 데가 없어 '자칫 죽이면 어떡하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다 북구청 직원과 친구라는 윤 씨를 찾아냈다.

다 죽어가는 고라니 새끼들을 윤씨는 선뜻 받아 들였다. 한 번도 고라니를 길러본 적은 없지만 그만큼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서 시간이 자유로운 데다 집 마당이 넓은 것도 고라니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됐다.

"내가 요즘 요 녀석들 우유 먹이느라고 저녁에 술 한잔도 제대로 못한다니까요." 그래도 윤씨는 고라니들이 어린 자식들마냥 사랑스럽기만 하다.
"내가 요즘 요 녀석들 우유 먹이느라고 저녁에 술 한잔도 제대로 못한다니까요." 그래도 윤씨는 고라니들이 어린 자식들마냥 사랑스럽기만 하다. ⓒ 김정숙
지금의 북구 화봉동 일대인 옛 사청마을이 고향인 윤씨는 어릴 때 어미 잃은 청설모 새끼와 물까마귀 등을 키워본 적이 있을 만큼 오갈 데 없는 동물들에 애정이 많았었다.

그런 윤씨에게도 여리디 여린 고라니 새끼들이 처음부터 수월했던 것은 아니었다. 북구청으로부터 고라니를 넘겨 받은 첫날, 어찌할 줄 몰라 일단 우유병을 물려보려 했지만 먹지 않더라고 한다. 야생이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놔뒀더니 숨소리가 점점 약해지는 것이 당장 죽는 게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고 한다.

겁도 났지만 얕은 숨만 겨우 붙어 있는 고라니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이번엔 목을 치켜세우고 억지로 입을 벌려 우유를 먹였다. 그러고 난 뒤 잠시 어디 볼 일을 보고 돌아오니 꼬물꼬물 힘을 내서 움직이고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그 뒤부터 며칠 동안은 고라니들이 우유병을 마다해도 계속 억지로 먹였다고 한다.

새끼 고라니들은 사흘쯤 지나니 경계심을 풀고 윤씨가 주는 우유병을 서로 차지하려 들었다. 이제 가장 건강한 놈은 윤씨의 잔디 마당을 껑충껑충 뛰면서 제 세상인 양 논다. 윤씨 외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고라니들이 나무 밑으로 숨어 버려 나오지 않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고라니들을 노란 상자에 넣어 두고 취재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머지 두 마리도 조금만 더 크면 상자 밖으로 훌쩍 뛰어나와 놀 기세다.

윤씨를 엄마로 생각하는 새끼 고라니는 윤씨가 다정하게 쓰다듬으면 더없이 편안해 한다.
윤씨를 엄마로 생각하는 새끼 고라니는 윤씨가 다정하게 쓰다듬으면 더없이 편안해 한다. ⓒ 김정숙
가끔 동네 꼬마들이 "아기 사슴 키운다"는 소문을 듣고 보러오기도 한단다. 그러면 윤씨는 고라니들이 사람들 때문에 놀랄까 상자에 담아 살짝 보여 주긴 하지만 "아기 고라니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건강하게 클 수가 없으니 이해하고 이젠 보러 오면 안된다"고 타일러 보낸다고 한다.

죽을지도 모르던 새끼 고라니들이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어 다행이지만 아픔이 없진 않았다. 원래 데려온 고라니는 4마리였는데 그 중에 가장 약해 보이던 1마리가 결국 며칠만에 죽고 말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몸도 못 가누고 약한 놈이어서 오래 못가겠구나, 생각은 했지만 윤씨는 그저 자신이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 그리 됐다는 생각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맘이 아팠다.

이들 고라니들은 앞으로 한 달 반쯤 후면 스스로 살아갈 힘이 생길 것 같다고 한다. 윤씨는 "고라니들이 충분히 자라 스스로 야생의 삶을 버텨갈 수 있다면 기꺼이 자연으로 돌려 보내야죠"라면서도 정이 듬뿍 든 고라니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그래도 어떡하나요? 지금까지는 내가 엄마였고 그만큼 애틋한 정이 쌓였지만 그 놈들 원래 엄마는 자연 아니겠습니까. 건강하게 돌아간다면 그거야말로 보람이고 또 내가 바라는 거지요."

"고라니들이 건강하게 자라 숲으로 돌아가는게 내 바람"이라며 담담하게 말하지만 윤씨는 고라니들을 떠나보낼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짠해진다.
"고라니들이 건강하게 자라 숲으로 돌아가는게 내 바람"이라며 담담하게 말하지만 윤씨는 고라니들을 떠나보낼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짠해진다. ⓒ 김정숙
고라니를 키운 건 이번이 처음인데 어떤 비법이라도 터득했냐는 질문에 윤씨는 "무슨 특별한 게 있겠어요?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기 사랑하는 건 알아서 정성을 들여 마음으로 보살피면 그게 곧 비법인 게죠. 어쨌든 앞으로 고라니 키우는 건 자신 있습니라"라며 웃는다. 그 마음을 다 안다는 듯 고라니들은 인터뷰 중에도 윤씨의 옷을 물고 빨며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는 아기들처럼 말이다.

윤씨의 집에 온 지 한 달 가까이 돼가는 고라니들은 처음 올 때 숨만 붙어 있던 상태와 달리 껑충껑충 잔디밭을 뛰어다니게 됐다. 고라니들이 야생의 삶으로 돌아갈 날도 멀지 않았다.
윤씨의 집에 온 지 한 달 가까이 돼가는 고라니들은 처음 올 때 숨만 붙어 있던 상태와 달리 껑충껑충 잔디밭을 뛰어다니게 됐다. 고라니들이 야생의 삶으로 돌아갈 날도 멀지 않았다. ⓒ 김정숙
윤씨는 "북구에는 고라니들도 많고 다른 야생 동물들도 많은데 이들이 다치거나 어미를 잃으면 보호해줄 센터가 울산에 하나도 없는 것이 안타깝다"며 "앞으로 야생동물에 대한 연구도 더 하고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서 집 마당에 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막사를 짓고 싶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상처 입은 야생동물들의 '엄마'가 돼 보겠다는 거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드나들기를 원해서 애초에 대문도 없이 지은 윤씨의 집이 앞으로는 고난에 처한 야생동물들의 안식처로 활짝 개방될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울산 북구 웹진 <희망북구>(www.hopebukgu.ulsan.kr)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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