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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만들 때 그리고 작품을 설명할 때가 가장 즐겁다는 서양화가 양은진씨
작품을 만들 때 그리고 작품을 설명할 때가 가장 즐겁다는 서양화가 양은진씨 ⓒ 서정일
한여름이라 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더위, 높다란 창문은 한길바닥과 맞닿아 있고 달그락거리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는 힘겨워 보인다. 손때 묻은 그녀의 작품들은 더위에 축 처져 벽에 기대선 채 희미한 조명 아래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양은진(27), 서양화를 전공한 젊고 유망한 여류화가. 대학을 졸업하고 순천 땅에 내려와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들며 작품 활동에 몰두하다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순천청년작가회에 몸을 담는다. 그리고 2년, '예술은 배고픔이다'라는 말을 곱씹어 보면 그녀가 보낸 순천에서의 2년은 지루하리만큼 긴 시간들이었다.

청년작가회에서 재무역을 맡고 있는 양은진씨, 회장 장안순씨와 이번 전시회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청년작가회에서 재무역을 맡고 있는 양은진씨, 회장 장안순씨와 이번 전시회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 서정일
"전업 작가란 단어는 힘겨운 고통을 수반하죠."

예술, 즉 창작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것이 생활고와 겹치기라도 하면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양은진. 그녀 또한 그토록 갈망하던 전업 작가라는 단어는 포기한 지 오래다. 그래서 그녀는 화가라기보단 가끔 미술선생으로 불리곤 한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 이십대 후반. 하지만 젊은 예술적 패기를 찾아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무엇이 이토록 파릇한 새싹의 잎을 노랗게 물들이고 말았을까? 안타까움에 바늘을 돌려 시간을 되돌려 주고 싶다. 그러나 자신은 남들에 비해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 그나마 창작활동에 몰두할 수 있는 작업장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전시회가 다가오면서 더욱 바빠진 양은진씨, 이곳 저곳에 전화를 걸어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전시회가 다가오면서 더욱 바빠진 양은진씨, 이곳 저곳에 전화를 걸어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 서정일
"현실입니다."

순천청년작가회 소속 회원들 40여명이 대부분 이런 실정이라며 한숨을 쉬는 회장 장안순. 때문에 올해가 5회째인 청년작가 전시회를 어떻게 치러야 하나를 두고 재무 역을 맡고 있는 양은진씨와 협의를 하고 있다. 그동안 후원을 받아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도 해 보고 회원들 간에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보았지만 어려운 경제 사정 탓인지 모두들 힘없는 목소리다.

걱정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더구나 엎어지면 코 닿을 듯 내일모레면 전시회이기에 서둘러 전화기를 잡고 여기저기 버튼을 눌러 애교도 떨어보고 사정도 해 가면서 성공적인 전시회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자고 말을 하지만 장부에 나타난 숫자를 보면 여전히 두렵기만 하다는 양은진씨.

회계장부는 늘 그녀를 괴롭힌다.  젊은 예술인들의 현주소를 보는 듯해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한다.
회계장부는 늘 그녀를 괴롭힌다. 젊은 예술인들의 현주소를 보는 듯해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한다. ⓒ 서정일
"내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 표현방법은……."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간다. 역시 작가는 작품으로 얘기하고 작품을 설명할 때가 가장 활기차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나 보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꿔 볼 요량으로 넌지시 그녀의 작품을 가리키니 한 옥타브 높은 음정으로 거침없이 설명해 나간다. 한참을 듣고 또 들었다.

"이번 전시회에 꼭 오셔야 합니다."

'예향순천'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순천의 청년작가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전시회를 개최하려 하니 꼭 와 달라 재차 당부한다. 그리고 어색한 침묵이다. 입에 발린 소리로 가겠다고 말하기엔 그녀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꼭 가겠습니다"라고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했지만 야속하게도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 순천청년작가회 제 5회 작품 전시회:
7월 8일 - 7월 14일 / 순천문화예술회관(061-749-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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