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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은 30대시군요.”

봉황산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갈 때 '사계절'이 뒤돌아보며 내게 한말입니다. 금년에 제 나이가 55세이고 현재 이혼남입니다. 55세 결코 적지 않습니다.

오늘(6월12일) 여수 항일암에 산행 온 우리 ‘미소산악회(30대 이상 부산경남 독신자산악회)’ 80명 회원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습니다. 그런 내가 사실은 봉황산 올라올 때 '사계절'의 배낭을 대신매고 봉황산을 올랐습니다.

죽포리 천년 묵은 느티나무에서 봉황산까지의 농노길 을 따라 올 때부터 시멘트 길의 지열로 회원들이 지치기 시작하더니 봉황산 중턱에서부터 일치감치 남자3명 여성1명이 산행을 포기하고 다시 마을로 내려갔으며 그나마 올라가는 회원들도 처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망세’가 힘들어하니 '돼지'가 망세 배낭을 받아 다른 남성회원에게 줬고, ‘덩그러니’의 배낭은 내가 받아서 ‘고죽’한테 줬습니다.

▲ 왼쪽이 필자, 오른쪽이 사계절
그리고 '사계절'도 이내 환자가 되어 이대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내가 배낭을 받아 멨습니다. 오늘 산행거리만도 장장 6시간코스입니다. 사실 제가 젊은 시절 군대에서도 남의배낭은 메어 본적이 없습니다. 그때 20대 초반 시절의 한창 팔팔할 때도 남의 배낭을 못 매 본 것은 보통 행군거리가 20킬로미터가 넘을 때이니, 누구나 다 쓰러질 것 때에 남의 배낭이 아니라 내배낭도 던져버리고 가고 싶을 때 입니다.

▲ 봉황산올라갈때만해도 다죽어가든사람이 점심을 먹고나서는 생생하다
ⓒ 방성열
그렇지만 지금은 이제 산행시작시간이고 작년부터 꾸준히 등산을 해왔고 금년 들어서는 하루 2~3시간을 매일 산행을 하다 보니 제 실력이 놀랄 만치 좋아졌습니다. 또 '사계절'은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지만 항상 마산 톨게이트에서 같이 버스를 타다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습니다.


지금 47세의 '사계절'은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운 ‘사별녀’입니다. 우리 둘은 전혀 어울릴 거 같지 않지만 단지 ‘독신자산악회’라는 모임을 통해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는 거죠.

▲ 금오산에서 내려다본 마을
ⓒ 방성열
'사계절'도 지난달에 처음으로 이모임에 나올 때 까지만 해도 무척 힘든 결정을 했습니다. 남편이 죽고 난 뒤에도 무려 3년이라는 세월을 집안에서만 보내야했습니다. 그나마 워낙 산을 좋아하다보니 나올 수 있지 않았나싶군요.

그만큼 사별한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재혼이란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작년에 이 카페에 가입할 때 만해도 참 많은 커플이 나오겠다했는데. 일 년이 지나도록 한사람도 커플이 나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30대 이상의 독신자이지만 ‘커플’들이 마니 나오지 않는 이유를 이제야 알은 것 입니다.

▲ 항일암의 바위돌이 거북등모양 신기하다.
ⓒ 방성열
오늘 기온이 금년 들어 최고를 기록했다는 것이 거짓이 아닐 정도로 날은 덮고 땀은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나도 지금껏 산행하면서 오늘 최고로 땀을 흘렸습니다. 아침에만도 일기예보를 들으니 구름이 낀다하여 물만 2병 준비하려다가 혹시나 하여 보온병에 ‘포도쥬스’를 두 캔 넣었더니 이것이 '사계절'과' 망세'한테 비아그라가 되었습니다.


평상시에 가계에서 항상 사 먹는 거지만 점심을 먹고 체력을 회복한 '사계절'이 ‘아까마신 것이 무어냐고’ 할 정도로 더운 날에 땀을 많이 흘린 다음에는 시원한 음료가 갈증을 해소시키는 데는 으뜸입니다. 그러니 무더운 여름날 산행 시에는 꼭 보온병에 냉수나 청량음료를 넣어가는 것이 필수입니다.

▲ 후미에 쳐진 회원들만 한 컷. 맨앞이 필자입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나 소풍가는 꼬맹이들의 필수품이 음식이듯이 아침밥도 든든하게 먹고 도시락도 더욱더 풍성하게 챙겨야합니다. 더군다나 오늘은 '망세'하고 '돼지'가 커다란 양푼에다 열무김치를 비벼서 나눠먹었는데, 난 내밟은 한 숟가락도 먹지 못하고 비빔밥으로 해결했습니다.

봉황산에서부터 금오산까지는 평탄했습니다. 나무가 우겨져 그늘을 지어줬고 안개가 끼어 멀리는 보이지 않았지만 발밑에 보이는 여수의 청청바다가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일행은 무리하지 않고 쉬어가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 항일암의 앞 인 임포마을. 꼭 거북이의 머리같다.
ⓒ 방성열

산행 중간지점인 울림치 주차장에 갔을 때는 주차장매점의 생수가 동이날정도로 전부가 생수를 보충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금오산으로 우리회원들은 천천히 나아갔습니다. 여기서도 또 두 사람이 뒤로 낙오하였습니다.

금오산을 지나서는 250봉 거북바위를 거쳐 드디어 항일암에 도착했습니다.
지방문화재 제 40호(1975. 2. 5 지정)인 향일암은 낙산홍연암, 남해 금산 보리암, 강화도 보문암과 함께 한국의4대 관음기도처 중의 하나입니다.

▲ 일개분대가 먹을 비빔밥을 망세와 돼지가 비비고 있다.
ⓒ 방성열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의 이 향일암은 여수시 돌산읍에 644년 (백제 의자왕 4년) 신라의 원효대사가 원통암으로 창건하였습니다. 기암절벽위에 동백나무와 아열대 식물의 숲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해 수평선의 일출 광경이 특히 장관을 이루어 숙종 41년 (1715년) 인묵대사가 향일암이라 명명하였습니다.

또한 주위의 바위들이 거북등처럼 되어있어 영구암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평일도 물론이지만 특히 매년 12월31일~1월1일에는 향일암 일출제가 열려 관광객들이 전국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곳 '해맞이 명소'에 몰려듭니다.

특히 관음기도도량의 경치가 너무 좋았습니다. 나는 '사계절'뿐만 아니라 많은 회원들의 사진을 찍어줬습니다. 그러고보니 기암괴석과 좋은 풍경사진을 못 찍어 아쉬웠습니다.

▲ 천년묵은 느티나무.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 방성열
항일암 구경을 마친 우리는 임포마을로 내려와 맛있는 돌산 갓김치 맛도 보고 일부회원도 사기도 했습니다. 마을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주차장까지 와서 우리는 다시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부산으로 향하였습니다.

내년 정초에는 일출을 보려 여기 여수 항일암에 다시 와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미소산악회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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