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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송이에 묻은 손자국이 선명하다.
포도송이에 묻은 손자국이 선명하다. ⓒ 윤형권
진보랏빛 잘 익은 포도 한 알을 입에 넣고 살짝 터트리면 새콤하고 달콤한 맛으로 입안이 가득 차는 그 느낌. 생각만 해도 상쾌합니다.

포도는 벼가 익어갈 무렵인 가을이라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요? 물론 한여름인 8월경에 나오는 청포도가 있지만요. 그런데 요즘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인간의 힘이 어찌나 센지 오월 단오에도 포도를 먹을 수 있답니다. 한마디로 철없는 포도지요.

삼국통일의 시발지인 황산벌을 지나 계룡산 신원사 쪽으로 가다보면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 도로변에 '협동포도원'이 있습니다. 이곳 주인장은 조철현(67세)씨는 18년 전부터 포도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조씨네 포도농장은 시설재배포도밭과 노지포도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두 곳 모두 거봉을 재배하는데, 지난 5월 31일부터 시설재배포도밭에서 포도를 따내기 시작했습니다.

포도 형제
포도 형제 ⓒ 윤형권
시설재배포도밭이란 포도밭을 비닐하우스 시설로 덮고 온풍기로 온도를 조절해서 노지포도보다 2~3개월 수확을 빨리 하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즈음 조씨네 시설재배포도밭에서 따내는 포도는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온도를 섭씨 10~15℃로 유지하다가 올 2월에 꽃이 피면서 섭씨 20℃ 이상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야 포도가 잘 익는다고 합니다.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온풍기에 들어간 경유만 해도 130드럼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씨네 부부는 탐스런 포도를 수확하면서도 앞으로 포도농사를 그만 둬야겠다고 하네요. 그리고 포도농사를 안 하면 무엇을 해야 하나 걱정도 된다고 합니다. 왜냐고요? 국산포도 값의 1/4밖에 안되는 값싼 칠레산 포도가 수입되면서, 포도농사를 포기하는 폐업농가에게 정부의 지원이 있는데, 조씨도 폐업농가 신청을 했기 때문에 2008년부터는 포도나무를 캐내야 한다고 합니다.

조씨는 지난 18년 동안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포도밭에서 포도나무들과 지냈다고 합니다. "아들 4형제를 포도나무가 키워 준거나 마찬 가진데 3년 후 생으로 캐려고 하니까 마음이 아픕니다"라며 아쉬워합니다.

시설재배포도밭
시설재배포도밭 ⓒ 윤형권
철없는 포도는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탐스럽게 잘 익었습니다. 정말 철없는 포도지요?

첫 번째 사진을 자세히 보세요. 포도송이에 손자국이 왜 생긴 줄 아세요?

포도 한 송이를 따려면, 꽃피었을 때 수정시켜야 하고, 예쁜 모양이 되도록 꽃 순을 다듬어 줘야하며 적절한 크기로 자라도록 포도알을 속아줘야 합니다. 또 포도나무 가지를 묶어줘야 한답니다. 포도 한 송이에 수십 번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지요.

노지에서 재배하는 포도. 9월이나 돼야 수확한다.
노지에서 재배하는 포도. 9월이나 돼야 수확한다. ⓒ 윤형권
여러분! 이 기사를 보신 후부터는 포도송이에 묻은 손자국을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포도 한 송이가 나오기까지 농민들의 정성과 희망, 고된 노동의 수고와 자식과도 같은 포도나무를 캐내야만 하는 아픔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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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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