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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도 그러하듯이 저에게도 '아버지'란 분이 계십니다. 저희 집안에 있어서 아버지의 존재는 사실 '있으나마나 한 아버지, 가정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시는 무능력자 아버지'이셨습니다.

물론 공개적인 글에서 제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안 좋게 한다는 것에 대해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욕할 분도 계시겠지만 아무튼 제가 경험한 제 아버지에 대한 철없을 때의 느낌이었습니다.

형님들이나 제가 학교를 다닐 때 용돈이 필요해도 용돈 한번 주신 적이 없으셨으며, 오히려 투전판에 가셔서 얼마 있지도 않은 땅을 잡히셔서 어머니께서 수습하느라고 정말로 고생도 많이 하셨습니다.

또한 오히려 술을 드시고 오셔서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일하고 오신 어머니를 괴롭히시거나 형님들과 저를 무릎 꿇어 앉히고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잔소리를 늘어놓기 일쑤셨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 큰소리로 제지하시다 보면 부부싸움으로 변질되고 집 밖으로 큰소리가 나가게 되는 창피스러운 일이, 1주일이면 한 3일은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가정 생계를 어머니께서 꾸려나가셨고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항상 남에게 손을 벌리러 다니는 것이 어머니의 저녁 일과였습니다. 가끔은 빚 독촉을 하러 오는 사람이 저희 집으로 왔었는데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가 방에 계시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머니 집에 안 계시는데요!"라고 거짓말을 하던 제 어릴 때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그렇게 세월이 흘러 저희 4형제가 장성하였습니다. 물론 가장 공부를 잘하셨던 큰 형님께선 가정형편상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돈을 벌러 가셨으며, 이때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신 것으로 알았지만 나중에서야 정식으로 학력이 인정되지 않은 야간고등학교라는 걸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죠.

그러나 지금도 형님은 대학 나온 저보다 훨씬 더 모든 면에서 이해도나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나십니다. 그리고 큰조카와 둘째조카 모두 서산시에서 선발하는 영재교육반에서 특별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머니께서는 못 가르친 큰형님만 생각하시면 항상 맺힌 한으로 가슴 아파하십니다.

그 이후 큰형님과 둘째형의 희생으로 셋째형과 저는 분에 겨운 대학까지 나왔고 어느덧 결혼도 하였고 나름대로 가정을 꾸리게 되었으며, 이렇게 장성하기까지 아버지 역할을 꼽으라면 거의 없다는 생각을 은연중하면서 아버지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세월이 흘러 어느덧 작년에 아버지께서 팔순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자식과 손자들을 위하여 팔순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건강하셔서 바닷가에 고둥이며 바지락이며, 낙지 등도 잡아 오셨습니다.

그런데 올해 약 두 달 전부터 아버지께서 몸이 좀 이상하다는 말씀을 어머니께서 가끔 하셨습니다. 시골의 작은 병원에 다니시면서 약을 드셨는데 별 차도가 없어 큰 병원으로 모셔서 진단을 받았더니 글쎄 '전립선암'이며, 이미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이 퍼져 있다는 진단을 받고 정밀진단을 추가로 받고 있습니다.

진단이 나오기 전 병원으로 모시고 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에이구 저 냥반이 나보다 먼저 죽어야 할 텐데… 그래야 내가 눈을 편안히 감을 수 있지 지발 좀 그래야 할텐데…"라고 여느 때처럼 말씀을 하십니다.

즉, 어머니 당신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먼저 죽으면 며느리들이 잘 챙겨주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내가 옆에서 구박을 해도 챙겨 주는 게 낫지 않겠나!' 뭐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지난 설 명절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건강보다도 어머니의 건강이 더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건강은 크게 생각지 않았는데 한마디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살다 보니 이제야 진짜로 철이 드나 봅니다. 이제서야 아버지 당신의 그 모습… 온전히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버지! 이제서야 이 못난 자식이 철이 들었는데 너무 늦었나요?'

덧붙이는 글 | 다음 주에 정확한 진단이 나올 듯 합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정말로 캄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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