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1일, 경북 경주에 있는 음식점 '도솔마을'이 잔칫집처럼 떠들썩했다. 기와지붕 처마 아래부터 멍석 깔린 마당과 뒤란 쪽마루까지, 한상 받은 손님들이 주거니 받거니 찌짐(전의 경상도 사투리)에 술 한 잔씩 하며 그동안의 안부를 묻거나 밀린 이야기를 한다.
부엌에는 아낙들이 음식 준비에 분주하다. 어찌 보면 혼인 치르는 집 같기도 한 이 풍경은 음력 5월 5일 단오절을 맞아 열리는 도솔단오축제다. 이 축제는 올해로 4번째를 맞았는데 이날 도솔마을을 찾는 손님에겐 모든 음식과 술이 공짜다.
"식당에서 웬 단오 축제?"하겠지만 도솔마을은 생긴 것 자체부터가 여느 식당과는 다르다. 소위 지역의 난다하는 쟁이와 문화인들이 즐겁게 한판 펼치고 때론 고민을 풀어내는 편한 문화공간의 대안으로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도 완전 토종음식들이다.
이날 단오행사의 수익은 지역의 화가들이 그린 단오부채에서 냈다. 이제는 웬만큼 소문이 나서 부채를 사려는 사람들이 1년을 기다려 사간다고 하는데 부채는 전주의 전통부채를 만드는 무형문화재 장인의 작품. 여기에 지역의 화가들이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 무대에 내다 걸면 맘에 드는 부채를 사간다.
합죽선은 10만원, 평부채는 2만원으로 딱 120점만 한정 판매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나마 다 떨어져 없다. 어떤 사람은 늦은 저녁까지 거나하게 한잔 하고는 값을 한다고 부채를 사려고 하다가 다 떨어졌다는 주인의 말에 머쓱해져 다음을 기약하고 가기도 한다.
매년 주제를 조금씩 바꿔가는 도솔단오축제의 올해 주제는 '가락'이다. 지역의 풍물단인 '두두리'와 대금소리모임인 '금율'을 이끌어가는 김주형씨가 흥겨운 풍물장단과 고즈넉한 대금가락을 들려 줬다. 지역 소리꾼인 권정씨는 심청가 중 눈먼 백발부친 등을, 경기민요보존회 경북지회 최은경 지회장은 창부타령과 뱃노래 등을 불러 많은 갈채를 받았다.
사회를 맡은 김윤근 선생은 걸죽한 입담과 재치로 행사 전체를 이끌어 갔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창포 비녀를 꽂아 주는 대목에서는 관객의 웃음보따리가 터져 버리기도 했다.
단오날 행사가 끝나면 도솔마을은 늘 밑진다. 그래도 도솔마을 주인인 무심화씨는 "단오날 모두 모여 즐겁게 놀면 그게 남는 거죠, 뭐"하면서 찌짐은 떨어지지 않았는지 국수는 모자라지 않는지 손님상들을 살핀다.
단오 부채 하나로 여름을 나고 창포물로 한여름 더위를 삭힐 수야 없겠지만 도솔마을단오축제는 각박해져만 가는 우리네 삶에 신라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을 후하게 전해준다. 내년 단오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