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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처럼 생겼지만 늑대처럼 울부짖는 딩고
개처럼 생겼지만 늑대처럼 울부짖는 딩고 ⓒ 정철용
원래 살던 곳과는 딴판인 낯선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동물원의 많은 동물들의 삶을 생각해 볼 때 이곳에 사는 동물들은 분명 축복 받은 존재들이다. 비록 완벽한 야생의 환경을 갖추지는 못했기에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는 폐쇄감은 어쩔 수 없더라도 이질적인 기후에 따른 스트레스는 전혀 느끼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동물원을 구경하다 보면 으레 느끼기 마련인 우리 속에 갇힌 동물들의 답답함이나 슬픔이 이곳에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모습은 개를 꼭 닮았는데 주둥이를 쳐들며 울부짖는 소리는 늑대와 거의 구분이 안 가는 딩고(dingo), 몹시 살이 찐 커다란 쥐처럼 보이는 태즈메이니아 데빌(Tasmania Devil), 자동차 타이어에 구멍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강철 가시들로 무장한 가시두더쥐(echidna), 어린 돼지와 토끼의 얼굴을 반반씩 섞어 넣은 듯한 순한 얼굴의 웜바트(wombat) 등 평범해 보이지만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토종 동물들을 우리는 흥미롭게 구경했다.

호주를 대표하는 귀여운 동물 코알라
호주를 대표하는 귀여운 동물 코알라 ⓒ 정철용
하지만 '호주의 토종 동물' 하면 떠올리게 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코알라와 캥거루. 딸아이 동윤이는 코알라와 캥거루 무리 앞에서 좀처럼 떠날 줄을 몰랐다. 코알라 무리들은 대부분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질겅질겅 씹거나 느릿느릿 나무를 타고 다른 자리로 옮기는 놈들도 더러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도 이내 기면 발작증에 걸린 환자처럼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설명문에 따르면 코알라는 생애의 약 90%를 잠으로 보낸다고 한다. 코알라에게 삶은 곧 꿈인 셈이다.

코알라가 이렇게 잠꾸러기가 된 것은 유칼립투스 나뭇잎만 먹는 특이한 식성 때문이라고 한다. 코알라는 몸에 필수적인 수분조차도 오직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통해서만 섭취한다. 이러한 특이한 식습관이 이 동물에게 '코알라' 라는 이름을 안겨주었다. '코알라'는 호주 원주민의 말로 '물을 마시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코알라는 생애의 90퍼센트를 자면서 보낸다
코알라는 생애의 90퍼센트를 자면서 보낸다 ⓒ 정철용
코알라가 유칼립투스 나뭇잎만 먹으면서 섭취하는 열량은 제아무리 많이 먹는다고 해도 형편없는 수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코알라는 체력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거의 하루 종일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나마 나머지 10%의 시간조차도 코알라는 대부분 먹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먹고 자는 것으로 평생을 살아가다니! 매일 아침마다 단잠을 깨우는 자명종 소리가 마치 꿈속에서 터지는 지뢰의 폭음처럼 들리고, 그 모자란 잠을 채우기 위하여 점심을 먹는 즐거움마저 단 10분으로 줄이고 그 나머지 시간은 노곤한 낮잠으로 채우는 도시의 직장인들은 이런 코알라의 팔자가 부러울지니! 다 큰 어른들조차도 코알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선망도 조금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아이들이 코알라에 매혹되는 것은, 야생 동물에게서 흔히 연상되는 공격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귀엽고 평화로운 모습 때문이다. 코알라는 아이들이 꿈꾸는 장난감 나라에 더 없이 잘 어울리는 동물이다. 그래서 그의 혼곤한 잠조차도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마법사가 걸어 놓은 잠의 저주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있는 캥거루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있는 캥거루 ⓒ 정철용
이러한 코알라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호주의 토종이 바로 캥거루다. 캥거루는 언제나 껑충껑충 뛰어 다니는 모습으로 떠오른다. 캥거루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은 좀처럼 상상이 안 된다. 둘 다 순한 얼굴이기는 해도 코알라는 미련곰탱이처럼 보이는 반면 캥거루는 날렵하고 명민해 보인다.

또 어린 새끼를 데리고 이동할 때 코알라는 등에 업는 방식을 취하는 반면, 캥거루는 복부에 있는 육아낭에 안고 다니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대조적이다.

우리는 먹이 주는 시간에 맞춰 캥거루가 떼지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사람들을 전혀 피하는 기색이 없이 캥거루들이 몰려들었다. 캥거루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앞발을 공손하게 모은 채, 동윤이의 손바닥에 놓인 과자 부스러기를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었다.

캥거루 어미의 배에 달린 육아낭에서 새끼의 다리가 삐쭉 나와 있다
캥거루 어미의 배에 달린 육아낭에서 새끼의 다리가 삐쭉 나와 있다 ⓒ 정철용
어미의 뱃속에서 삐죽 얼굴을 내밀었던 새끼는 이러한 풍경이 아직 낯선지 바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얼굴 대신 새끼의 새까만 다리가 삐쭉 삐져나와 덜렁거렸다. 좀 더 있다가 새끼가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보고 가자는 동윤이를 재촉해, 우리는 다음 볼거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입장할 때 받은 동물원 안내 지도를 보면 이제 주요 볼거리는 모두 보았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남아 있는 그 볼거리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거야말로, 이번 골드 코스트 여행에서 우리가 얻은 뜻밖의 기쁨이 될 줄이야!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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