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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하고 놀아 줄 동생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장세린.
자기하고 놀아 줄 동생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장세린. ⓒ 장희용
놀기 위해 동생이 필요하다는 우리 딸아이. '역시 우리 딸은 타고 난 놀아줘 대마왕이구나'하는 생각이 다시 듭니다.

딸아이가 놀기 위해 동생이 필요하다는 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자기 딴에는 동생하고 놀고 싶은데 동생이 자기 맘대로 잘 따라주지 않으니까 태민이가 맘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 자기하고 놀아줄 새로운 동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하긴 태민이가 누나를 귀찮아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 같이 걸어가면서도 세린이가 손만 잡으면 신경질을 내면서 뿌리칩니다. 안아줘도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막 울어대고, 과자를 주어도 받지도 않고, 혹여 받더라도 금세 바닥에 집어 던집니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 아빠 흉내 내면서 "태민아 잘 잤어?"하고 가까이 다가가 등이라도 토닥일라치면 누나를 막 밀어내면서 악을 쓰며 운답니다. 아무튼 누나하고 관련된 모든 일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니 아마 제 딴에는 새로운 동생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살아가면서 이 철없는 어린 남매들 때문에 신경질도 많이 나고, 이로 인해 싸움 아닌 부부 싸움도 하지만 화나는 날보다는 웃는 행복한 날들이 더 많습니다.

아무튼 둘째 돌잔치 끝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셋째 아이 이야기 했다가 본전도 못 건진 후 금기(?)시 돼왔던 셋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세린이가 동생 이야기를 하는 틈을 타 아내한테 넌지시 꺼내봅니다.

"우리, 세린이 말대로 셋째 낳을까?"

웃으면서 말했건만 아내는 다소 언성을 높입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왜? 뭐가 말이 안돼? 애들 많으면 재밌고 좋잖아. 자기도 인간극장이나 그런 거에서 애들 많은 집 얘기 나오면 좋겠다고 해놓고선. 그리고 애들이 많으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명절 때나 그럴 때 집이 북적대서 좋을 것 같다면서?"
"그거야, 텔레비전에서 재미있고 행복하게 나오니까 그냥 그거 보고 그러는 거지. 내가 뭐 많이 낳겠다는 소린가? 그리고 그 사람들은 우리하고 다르잖아."
"다르긴 뭐가 달라. 다 똑같지."

아내가 갑자기 화를 내면서 한마디 던집니다.

"그럼, 셋째 낳으면 당신이 키울 거야?"

순간 저도 신경질이 납니다. 다른 때는 무슨 일이건 아내하고 싸움으로까지 번질 것 같으면 차라리 침묵을 선택했는데 이 날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말을 그렇게 하냐. 그럼, 당신이 회사 나갈래?"
"남자들이야 좋지. 퇴근해서 애들하고 잠깐 놀아주고 그러니까 노는 게 재미있지. 자기도 매일 집에서 애 봐봐 그런 소리 나오나.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남자들은 다 이기적이야."

"뭐가 이기적이야? 그리고 퇴근해서 잠깐 놀아준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남자들한테는 그 잠깐이 엄마가 하루 종일 애들하고 놀아준 시간하고 똑같아. 그리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퇴근하면 '이제부터 당신 차례야'하면서 다 아빠한테 떠넘기잖아.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와서 쉬고 싶은데도, 집에 와서 또 아이들하고 놀아줘야 하고. 애들하고 노는 게 싫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남자들도 힘들다는 얘기야.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남자들이 더 힘들어. 엄마들이야 짜증나고 힘들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건 내 자식 때문에 생긴 일이잖아. 내 자식 때문에 짜증나고 힘든 것하고, 밖에서 일하면서 짜증나고 힘든 것하고 같아? 아빠가 뭐 슈퍼맨인가?"

아내가 물끄러미 차창을 바라봅니다. 이번에는 아내가 저 대신 침묵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저도 아무 소리 안 하고 운전만 합니다. 세린이는 엄마 아빠가 싸운다고 생각했는지 방금 전과는 다르게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내의 반대로 이 사진이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사진이 될 것 같습니다. "세린아, 여자동생은 포기해라! 엄마가 안된단다."
아무래도 아내의 반대로 이 사진이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사진이 될 것 같습니다. "세린아, 여자동생은 포기해라! 엄마가 안된단다." ⓒ 장희용
처갓집에 거의 다 왔는데도 아내와 저의 침묵은 계속됩니다. 괜히 이런 표정으로 들어가면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눈치를 챌 것 같아 걱정이 되지만 마땅히 분위기를 돌릴 만한 대책이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어두운 표정으로 처갓집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서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애써 어른들 앞에서는 기분 좋은 척 합니다. 아내는 짐을 풀어놓고 곧바로 장모님의 일손을 거들러 마당으로 나갑니다. 아무튼 처갓집에서는 어른들 덕분(?)으로 일단 웃기는 했지만 오늘 아침 출근할 때까지 서로 굳은 표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누구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일요일에 아이들하고 놀다 보면 무심코 "차라리 회사 나가는 게 낫겠다"고 몇 번 말할 정도로 아이들 보기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 지금쯤 제 아내도 제가 기분 안 좋게 출근한 탓에 마음이 좋지는 않을 겁니다. 저녁에 가면 화내서 미안하다고 말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엄마 아빠를 만든 주범 장세린.

"태민이하고 잘 놀아라. 아무래도 여자 동생은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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