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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도장

"또 떨어졌어."

붉은 색 '불합격' 도장이 찍힌다. 눈물이 찔끔 났다. 나 스스로에게 화도 나고, 많이 속상했다. 그렇지만 떼 쓸 일이 아니기에 받아들였다. 난 오늘도 떨어졌다.
처음 '설마'하는 마음으로 말한 그대로 10번을 채우려나 보다. 내가 이렇게 둔한 줄 몰랐다. 내가 길을 못 찾는 '길치'에 운동 신경이 아주 둔한 '몸치'인 줄은 알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한달이면 따는 운전면허를 석 달이 되도록 못 따는 내가 이젠 창피하기까지 했다. 남편에게 말고는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 아! 또 눈물이 난다.

면허 시험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내가 시험을 보는 곳은 '청주 면허 시험장'이다. 이제는 시험 요령이라고 보여주는 비디오 테이프의 내용도 거의 외울 판이다. 갈 때마다 두 번 보는 얼굴은 없으니 대부분 붙고 나만 다시 오는 것 같다. 시험을 기다리면서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같은 목적을 갖고 있고, 서로가 경쟁 상대가 아니니까 궁금한 걸 물어보면 대부분 다 잘 말해 준다.

면허 시험장에서 감독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경찰 아저씨다. 너무 많이 가 이제는 이름도 다 기억한다. 권씨 아저씨는 깐깐한 것 같고, 이씨 아저씨는 한 번 타서 잘 모르겠고, 이씨 아저씨도 조금 깐깐한 것 같다. 아마 경찰들도 내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 그렇게 이야기 할 것 이다. ‘저 아줌마 또 왔네.’ 하지만 어쩌랴 또 떨어졌는걸. 또 올 수 밖에.

▲ 이제 인지를 어디에 붙이나?
ⓒ 김은숙

포기보다는 실패가 낫다

난 올해 초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운전면허를 따는 것과, 학위 논문을 다 쓰는 것, 그리고 아기를 갖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그나마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 가장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한 달 안에 딴다고 들었다. 석 달 동안 시험을 보고 싶어도 그렇게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뭔가.

자꾸 떨어지니까 더 긴장이 되나보다. 점점 나아진다고 생각했는데 실패가 많아 질수록 잘 하던 것도 못하니 꼭 붙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점점 더 강해지는지 자꾸 떨어진다.

그래도 이런 불합격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이렇게 힘들게 땄는데 절대 면허 취소나 정지 되는 일을 왜 해? 절대 안 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기특하다. 남편은 떨어지고 눈물 찔끔거리는 나에게 늘 위로의 말을 한다. 시험을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떨어진 것은 앞으로 안전 운전을 위해서는 오히려 더 나은 것이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래도 속상한 걸 어찌하랴.

'운전 그까이꺼'하고 시작했다. 그런데 아니다. 운전은 참 어렵고 신중하게 해야 하는 일이다. 내 생명뿐 아니라 남의 생명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운전은 결코 '그까이꺼'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화가 나고 속상해서 그만두려다가 이것이 모두 나를 위한 실패라는 생각에, 그래도 포기보다는 실패가 낫다는 마음에 지갑에 18000원을 챙겨 둔다. 이번에는 꼭 5000원만 쓰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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