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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창에 기댄 동력선과 멀리 자유로이 정박해 있는 어선들
선창에 기댄 동력선과 멀리 자유로이 정박해 있는 어선들 ⓒ 염종호

그런 제부항의 앞바다는 그처럼 바람만이 횡행할 뿐 황량했다.
동력선과 보트들은 군데군데 늘어서서 바닥을 드러내듯이 걸쳐있거나, 나 홀로 모양으로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닻을 꽂고는 널 부러져 있을 뿐이다. 이곳에는 그 흔한 방파제마저 없어서인지 저렇게 제 멋대로 인가 싶을 정도로….

해가 중천에서 점차 기울어지기 시작하면서 밀물로 바뀌는가 싶더니 기어코 배가 들어온다. 그런데 수평선너머로부터 가물가물 들어오는 배는 이상하게도 날렵했다. 대꼬작도, 선실도 없어 보이는 그런 껑충한 배다. 그런 그것이 서서히 눈에 차면서 배 안에는 푸른 부대에 쌓인 뭔가를 가득히 담은, 선원들도 대 여섯은 족히 되어 보이고 저마다 무장한 듯이 단단해 보였다.

채취한 김 부대자루 와 기름 통들
채취한 김 부대자루 와 기름 통들 ⓒ 염종호
배가 선창에 도착하자 몇 몇은 몇 십 개나 되는 초록색 플라스틱 통들을 내리거나 푸른 부대를 정리하느라 부산하다. 근데 그 플라스틱 통이 무엇에 쓰이는 것인지, 그물에 끼우는 부유물로 사용되는 것인지, 아니면 바다에서 위치를 알려주는 부표인지 문득 궁금증이 인다. 그것도 잠시, 갈고리를 달은 커다란 트럭이 들어오면서 하역 작업이 시작됐다.

그런데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들이 심상치 않게 날렵하면서 시원시원해 보인다. 이른 새벽부터 뱃일을 했으면 조금은 느슨히도 보이련만 전혀 그런 몸놀림이 아니다. 나는 선창으로 내려갔다.

채취한 김 부대자루를 옮기는 어부들
채취한 김 부대자루를 옮기는 어부들 ⓒ 염종호
“저것이 뭡니까?” 그 옆에서 하역을 지켜보는 나이 지긋하신 분께 물었다.
“ 김이요.” 퉁명스럽고도 짧은 대답이 돌아오고,
“ 어디서 따오는 것인가요?” 그런 내 질문이 그만 생뚱맞았는지,
“아~ 바다서 따오지요, 어디서 따와요. 여기서 배로 삼십 여 분 나가요.”
“거기에 양식 그물을 쳐 놓았거든요. 대략 아침 7~8시 경에 나가 오후 3~4시 경에 들어오지요.” 하며 덤덤하게 일러준다.

“오늘 어획량은 괜찮은가요?”
“그냥, 그렇지요. 뭐 130부대 했다 네요. 그 정도면 적정량이라고 봐야지요.”
그런 중에도 연이여 김이 담긴 푸른색의 부대들이 갈고리에 의해 트럭으로 옮겨졌다. 그러면서 그 어부들이 점점 더 가까이 눈에 들어온다.

갈고리에 걸기 위해 작업 중인 어부들
갈고리에 걸기 위해 작업 중인 어부들 ⓒ 염종호
여실히 그들은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에 제일 젊어 보이는 청년은 정말 이 십대 중반이나 되어 보일까. 기껏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삼십 대 초반에서 중반의 사람들쯤이다. 이곳 어부들은 그렇게 젊은 사람들 이었다. 그래서 일까, 그들의 표정에는 예의 무뚝뚝함이나 노쇠함보다는 쌩쌩함과 패기가 엿보였으며, 젊은이들에게서 흔히 느낄 수 있는 활력 같은 것이 곁들여 있었다.

온 몸으로는 김을 긁어내면서 튀었던 흔적들이 마치 훈장처럼 엉겨 있고, 복장마저 모자에서 장화까지 험한 바다와 모진 바람들을 이겨내기 위해 그렇게 단단히 무장했으리라.

제부항의 풋풋한 젊은 어부
제부항의 풋풋한 젊은 어부 ⓒ 염종호
삼십 여분의 작업 끝에 푸른 부대들을 모두 옮겨놓은 그들은 그제야 천천히 옷매무새를 여미며, 서로 농지거리도 하면서 다른 트럭으로 옮겨 갔다.

“수고 많으시네요, 저기요, 저 녹색 통이 무엇에 사용하는 것인가요?”
“저거요, 기름통이죠 뭐, 김 채취할 때 돌리는 기계에 쓰는 경유에요.”
“그래요? 그럼 용량은 얼마나 됩니까?”
“ 한 말짜리지요.”
차에 하나 둘씩 타며 그곳을 떠날 채비를 하는데 뭔가 보이지 않는 아쉬움이 자꾸 나를 밀어낸다.
“저기요, 젊은 아저씨. 일도 아주 멋있게 잘 하던데….”

험한 바다 일을 무사히 마치고 귀로에 든 어부들
험한 바다 일을 무사히 마치고 귀로에 든 어부들 ⓒ 염종호

그렇게 이곳 제부항은 12월부터 3월까지 양식한 김을 채취한다고 했다.
겨울의 끝이라지만 동틀 무렵에 나가 오후 늦게까지 오로지 바다에서, 그것도 매서운 바다 바람을 맞으며 온종일 작업을 한다는 것은 여간 고단하고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렵고 힘든 일은 안 하려 든다는데, 이곳 젊은이들처럼 그 고된 바다 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묵묵히 그리고 즐거이 해내는 것을 보면서, 이들이 진정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동량들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트럭에 몸을 맡기고 떠나는 그들의 뚜렷한 눈빛들을 보면서….

덧붙이는 글 | 우리 서해의 바다는 소박합니다. 
동해처럼 깊거나 푸르지도 않고, 남해처럼 굴곡과 섬들이 많지도 않습니다. 
그저 내 속을 다 내보이듯이 그대로 드러내놓은 무한정한 갯벌과 십여 척 안팎으로 꾸려진 아담한 포구들로 즐비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포구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어림보다 더 많은 포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까운 경기도에는 도서까지 삼 십여 개가 넘는 항, 포구들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글과 사진들은 제가 육지에 면한 경기도의 포구들을 이년 여에 걸쳐 직접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끼면서 기록한 것을 분량에 맞게 재정리 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이곳 제부항은 올해 2 월말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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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브리태니커회사 콘텐츠개발본부 멀티미디어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스마트스튜디오 사진, 동영상 촬영/편집 PD로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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