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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
서강대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 ⓒ 안윤학
6월 10일 오전 서강대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는 6명의 민간인 총장 후보자를 공개했다. 총장 후보는 전경련 부회장을 역임한 손병두(64)씨와 전 꽃동네사회복지대학 총장 이동호(68)씨를 비롯, 현재 총장 직무 대행을 맡고 있는 최창섭(63·신문방송학) 교학부총장과 지용희(62·경영학) 교수, 유기풍(53·화공생명공학) 교수, 전 교수협의회 회장 정요일(59·국어국문학) 교수이다.

예수회 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서강대에서 신부가 아닌 사람이 총장으로 선출되는 것은 1960년 개교 이래 올해가 처음이다. 서강대는 케네스 E. 길로런 초대 학장부터 11대 류장선 총장까지 예수회 출신 신부가 줄곧 총장직을 맡아왔다.

지난 2월 입시 부정에 책임을 지고 류장선 전 총장이 물러난 후 서강대 총장직은 공석으로 있었다. 4월 3일 서강대는 박홍 이사장 명의의 공지를 통해 "서강의 위상과 정체성을 되찾고, 지금의 도전을 도약의 계기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45년 역사상 처음으로 총장직을 개방한다"고 밝혔다. 또 "예수회는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을 씻기 위해 이번 총장 선출 때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했다.

이번 총장 후보 개방은 입시 부정과 학교 발전 정체 등의 암초에 부딪힌 서강대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학내에서는 이번 총장 선출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재단과 학교 당국은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는 조치라는 입장인 데 반해 서강대 교수협의회와 학생회는 말만 총장직 개방이지, 여전히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예수회의 동의 없이는 총장이 될 수 없다?

사진은 지난 5월 30일 있었던 '민주적 총장 선출을 위한 범서강 공청회' 모습.
사진은 지난 5월 30일 있었던 '민주적 총장 선출을 위한 범서강 공청회' 모습. ⓒ 서강학보
먼저 서강대 교수협의회(이하 교협)는 이번 총장 선출 규정이 실제로는 기존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규정만 바뀌었을 뿐 기존 예수회의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 교협 부회장 정유성(교양학부) 교수는 "이사회가 5월 18일 발표한 총장 추천 규정은 그동안 총장 검증 절차에 대해 교수단이 제기한 요구 사항을 묵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행 서강대 총장후보자추천위 규정
5월 18일 공표

1. 총장후보대상자 자격요건 :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을 기초로 가톨릭 세계관 및 예수회 교육이념에 투철하고 학교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학식과 덕망이 있는 가톨릭 신자로서,

(1) 대학교 발전을 위한 비젼을 제시할 수 있으며
(2) 대학교 구조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3) 대학교 국제화 전략을 추진할 수 있으며
(4) 대학교 발전기금 및 재정확충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함.

2. 추천 절차

(1) 본교에 10년 이상 재직하고 있는 교수로서 교직원, 예수회원, 동문을 포함한 20인 이상 30인 이하의 추천을 받은 자
(2) 총장의 자격과 능력을 가진 교외 인사로서 교직원, 예수회원, 동문을 포함한 20인 이상 30인 이하의 추천을 받은 자
(3) 총추위 위원 3인 이상의 추천을 받은 자
현행 총추위의 규정에 따르면 총장 후보자는 '교직원, 예수회원, 동문을 포함한 20인 이상 30인 이하의 추천을 받은 자'라고 되어 있다. 때문에 총장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회원의 추천을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 교협은 이 규정이 '누구라고 해도 예수회원의 동의 없이는 총장 후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예수회의 사전 비준을 전제로 한 규정이라는 것.

또 새로운 총장 선출안에 따르면 '총추위 위원 3인 이상의 추천을 받은 자'도 총장 후보에 입후보할 수 있다. 총추위는 총29명으로 교수 14인, 여교수 1인, 예수회 4인, 동문 4인, 직원 4인, 사회인사 대표 2인으로 구성된다(현재 총추위는 문과대, 사회과학대가 각각 두 명의 위원을 내지 않아 총 25명이다). 때문에 총추위 내 4명의 예수회 위원만으로도 총장 후보 추천이 가능하다. 더구나 동문 4명과 사회인사대표 2명은 예수회가 추천해 선출되기 때문에 예수회의 실질적인 영향력 아래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사람들의 지적이다.

한편 학생들은 새롭게 바뀐 총장 선출안에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규정안에는 교직원과 동문, 예수회원의 추천만이 명시되어 있을 뿐 학생들의 참여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한편 고려대는 총추위 30명 중 학생 3명이 참여해 의견을 낼 수 있다.

지난 2월 입시비리로 류장선 전 총장이 사임한 후 <서강학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6.89%(총 응답 250명 중 192명)가, 교지 <西江(서강)>의 설문조사에서는 90.03%(총 응답 371명 중 334명)가 '학생들이 총추위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박홍 이사장 "학생 놈들이 난리치고 있다?"

6월 2일 서강대 총학생회는 그간 총장선출제와 관련, 박홍 이사장의 막말을 고발하는 대자보를 일제히 게시했다.
6월 2일 서강대 총학생회는 그간 총장선출제와 관련, 박홍 이사장의 막말을 고발하는 대자보를 일제히 게시했다. ⓒ 한세구
총장 선출을 둘러싼 이견은 박홍 서강대 이사장의 돌발 발언으로 더욱 촉발됐다. 지난 5월 23일 박홍 이사장은 <데일리 서프라이즈>와의 인터뷰에서 "학생 놈들이 자기네들이 총장 뽑겠다고 난리치고 있다"며 "교수들은 자기 밥그릇 찾기에만 골몰한다"고 발언했다.

교수·학생 총장 선출안

교수협의회 안

1단계 : 총추위에서 총장 예비 후보 선출(5~7인)
2단계 : 총장 예비후보에 대한 전체교수 투표, 총장 후보 2~3인을 재단이사회에 추천
3단계 : 재단이사회에서 총장 선임

- 모든 주체의 참가 및 각 단과대 규모에 따른 실질적 위원수의 조정
- 총추위 활동의 공정성 담보를 위해, 총추위 위원교수의 보직임명 제한

학생회 교육위원회 안

1. 교수회, 교직원회, 학생회의 법제화
2. 대학평의원회 법적기구화 및 강화
3. 총장 직선제 실시와 구성원 참여 보장
4. 사립학교법 개정, 이사회의 민주적 구성, 대학운영위원회의 설치
5. 설립자 및 이사장 친인척의 학교 임직원 취임 배제
이에 대해 학생들은 자신들이 내는 등록금이 학교 재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총장 선출에도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총학생회 교육위원회(이하 교육위) 회장 윤석민(23·사학)씨는 "현재 서강대 재정에서 재단 전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반면 학생들의 등록금은 5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학교 운영에서 학생들의 의견은 일체 무시되고 있다. 얼마나 모순적인 상황인가"라고 반문했다.

2004년 서강대 결산 공고에 따르면 2004년 3월부터 2005년 2월까지 발생한 총 수입 1254여억원 중 등록금 수입은 769여억원으로 약 61%를 차지했다. 반면 재단의 전입금은 24억4천만원으로 2.68%에 그쳤다. 국내 타 사립대의 경우에는 10~20% 정도의 재단 전입금 비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교수협의회나 학생이 총장 선출에 관여할 여지 없어

이러한 주장에 대해 법인사무처 한 관계자는 "현행 사립학교법상 교수협의회나 학생이 총장 선출에 관여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현행 사립학교법에는 '임원의 임면'이나 '사립학교의 장 및 교원의 임면'에 관한 심의·의결권은 이사회만이 가질 수 있다(제16조 1항). 그리고 '각급 학교의 장은 당해 학교를 설치ㆍ경영하는 학교법인 또는 사립학교경영자가 임면'할 수 있다(제53조 1항). 또 현행법은 총학생회나 교수협의회 등의 학교자치기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다만 사립학교법 제26조의2, 1항에 '대학평의원회(학교자치기구)를 둘 수 있다'고만 명시되어 있다.

이사회는 학생대표 한명만을 '참관인' 자격으로 총추위에 초대한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학생대표 한명만을 '참관인' 자격으로 총추위에 초대한다고 밝혔다. ⓒ 안윤학
한편 열린우리당의 사립학교법개정안(고등교육법)에는 '학교구성원의 참여와 자치를' 위해 '대학평의원회·교수회·학생회·직원회를 구성·운영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대학평의원회는 '학생회 대표'를 포함하며 '학칙의 제정·개정 및 학교 예산·결산을 심의할 수 있는 권한' 등이 주어진다. '사립학교 장'의 임면에 참여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지만 최소한의 참여는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교육위 고은상(26·신방)씨는 "만약 사립학교법이 가장 진보적으로 개혁된다면, 총학생회·교직원노동조합·교수협의회가 법인화될 수 있다. 이는 상당한 파급력이 있다. 예를 들어 대외 감사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법적인 책임들을 재단에 물을 수 있다. 이처럼 최소한 '검토'의 권리만 주어져도 그 동안 비밀리에 진행되어 온 학교 운영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서강대 이사회는 총장 선출을 위한 약 2주간의 협의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총장 후보 마감일이었던 7일부터 기말고사가 시작된 데다가 여름방학 등으로 총장 선출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서강대 최초의 '비(非) 신부 총장'이 구성원들에게 얼마 만큼의 지지를 받으며 선출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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