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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10년이 넘게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어리숙한 내가 이렇게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오래 할 수 있게 된 것은 유학 생활 초기에 겪은 어떤 사건 덕분이다. 그 사건은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가장 남는다.

페루자라는 조그만 도시로 옮겨 첫 유학생활을 시작할 때 원룸에서 일주일 먼저 유학 온 어떤 한국 유학생 형님과 함께 지냈다. 타국 땅에서 처음 발을 떼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럴 때마다 그 형님은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어려운 일을 도와주는, 정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천사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안에 도둑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방문은 열려있고 손잡이는 찌그러져 있고 아직 제대로 풀지 않은 유학 짐은 지퍼가 활짝 열려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달간 쓰려고 가져간 비상금까지 몽땅 털린 것이다.

그 날 나는 난생 처음 눈 앞이 캄캄해지며 번쩍이는 별을 보는 경험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같은 방 형 소지품에는 별 탈이 없는 듯했다. 나는 망연자실 이 사실을 어떻게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우리 집은 그리 경제 형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은 더했다. 혼자 방안에 남아 어떡하지란 말만 되새기면서 정신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귀가 무척이나 밝은 내가 방문을 따고 들어오는 도둑의 소리를 못 들었다는 것과 내 소지품에만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의심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부터 이것 저것 추리를 하기 시작했더니 전 날 밤부터 같은 방 형의 행동이 의심스러웠다.

사람을 의심하면 안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모든 사실을 밝혀내 자백을 받기에 이르렀다. 궁색한 형의 변명은 내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다. 더구나 모든 일을 잊고 나중에 좋은 얼굴로 다시 만나자고 하고 헤어졌는데 돌아오는 것은 내가 도둑이었다는 소문 뿐이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좋은 일을 경험하는 일만 인생을 깨우치는 것은 아닌 가 보다. 유학을 시작할 때 겪은 이 도둑 사건은 10여년이 넘는 외국 유학생활동안 정말 어리숙한 촌뜨기였던 나를 완전히 바꿔놓는 일이 되었다.

아마 그런 일을 처음에 겪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리 좋지만은 않은 기억속의 '스승'을 만나 이제는 술 한잔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여러분 인생의 멘토는 무엇입니까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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