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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현’이란 푯말이 보인다. 풀어쓰면 ‘나무골’이다. 바로 아내가 태어난 곳이다. 아내는 연신 차창 너머로 고개를 돌린다. 보이는 모든 게 아름다운가보다. 행복한 얼굴이다. 처가가 보인다. 단아한 양옥이다. 집 앞에는 밭이 있다. 논도 있다. 말 그대로 문전옥답인 셈이다. 장모님과 셋째 처남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아내가 집 앞에 차를 댔다. 아이들이 밭으로 뛰어간다.

▲ 처가 마을 푯말입니다
ⓒ 박희우
“할머니!”
“아이고, 우리 새끼들. 넘어질라, 뛰지 말거라.”

장모님이 허리를 펴신다. 셋째 처남도 반갑게 웃는다. 나는 밭으로 들어갔다. 고개 숙여 두 분께 인사를 했다. 죄스런 마음이 앞선다. 날짜를 잘못 알아 장인어른 제사 때 오지 못한 탓이다. 내가 사죄하자 장모님이 손을 흔드신다.

“괜찮다. 집에서 쉬지 않고. 오느라 고생했다.”

다시 장모님이 쭈그려 앉으신다. 호미로 마늘을 캐고 계신다. 처남이 마늘을 짚으로 묶고 있다. 마늘 냄새가 좋다. 옆 고랑에는 양파가 심어져 있다. 아이들이 양파를 캐기 시작한다. 나도 쭈그려 앉았다. 태어나서 처음 캐보는 양파다. 양파가 제법 알이 굵다. 그런데 처남은 오히려 작다고 한다. 가뭄 때문에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 염소가 풀을 뜯고 있습니다
ⓒ 박희우
아이들이 양손에 한 다발씩 양파를 들고 온다. 기특한 놈들이다. 나는 아이들로부터 양파를 건네 받았다. 양파줄기를 손으로 잡아뗐다. 아이들이 양파 캐기에 재미가 붙은 모양이다. 서로 많이 캐겠다고 부산하게 움직인다. 처남이 물꼬를 보겠다며 논으로 간다. 처남이 탄 오토바이가 들길을 가로질러간다.

양파 캐는 일도 쉽지 않다. 다리가 결리고 허리가 뻐근하다. 장갑을 끼지 않아서 손가락이 벗겨졌다. 그래도 마음은 더없이 편하다. 장모님도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연신 웃음을 흘리신다. 미안했던지 장모님이 한 말씀하신다.

“오자마자 일을 해서 되겠나?”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어머니.”

이건 내 진심이었다. 아이들이 지친 모양이다. 큰놈이 작은놈을 데리고 밭을 나간다. 그런데 이상하다. 갑자기 힘이 쭉 빠지는 것이었다. 나는 어슴푸레하게 깨닫는다. 그놈들이 알게 모르게 내게는 큰 힘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렇다.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었을 것이다. 장인어른이 농사철이면 나를 부르는 이유를 너무도 늦게 깨달았다.

그러나 그때는 아니었다. 장인어른의 부름이 마냥 부담스럽기만 한 것이었다. 내가 농사일을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장인어른은 나를 곧잘 불렀다. 나는 장인어른 옆에서 일을 도왔다. 그런 나를 보며 장인어른이 말씀하신다.

“박 서방 덕에 오늘 일을 빨리 마칠 것 같다.”

▲ 작은애가 두 손에 양파를 들고 있습니다
ⓒ 박희우
나는 이제야 장인어른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장인어른은 내게 일을 시키고자 했던 게 아니었다. 나를 당신 곁에 두고 싶어하셨을 뿐이다. 장인어른은 내게 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싶어하셨다. 처남들과의 우의를 돈독히 다져두고 싶어하셨다. 그때 이미 당신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계셨다. 암으로 고생한 지 3년째다. 의사는 3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하셨다. 나는 장인어른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슬퍼하였다. 벌써 8년이 지났다.

“박 서방, 이제 들어가게나?”

나는 흠칫 놀랐다. 나는 처음에 장인어른이려니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장모님의 꾸부정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망태기에 양파를 담는 모습이 생전의 장인어른 같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무릎이 쑤신다. 고작 2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힘들어 한다.

“어머니, 제가 담겠습니다.”

나는 장모님으로부터 망태기를 빼앗았다. 양파를 주워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양파가 잘 보이지를 않는다. 벌써 어둠이 내려앉고 있다. 그래, 지금은 밤이다. 나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통해 밤임을 확인하다. 개구리는 밤에만 울었다.

▲ 장모님이 심은 접시꽃입니다
ⓒ 박희우
장모님이 호미며 낫을 챙겼다. 나머지 고랑은 내일 캐기로 했다. 장모님이 앞장 서 걸었다. 나는 장모님 뒤를 따랐다. 내 어깨에는 양파 망태기가 메어져 있었다. 제법 묵직할 법도 하건만 전혀 그런 느낌은 없었다.

개굴, 개굴. 개구리 울음소리가 어둠을 뚫고 있었다. 뜰에는 접시꽃이 다소곳이 피어 있었다. 장모님이 장인어른을 생각하면 심은 꽃이라고 아내가 말했었다. 그래서일까, 접시꽃은 아름다우면서도 애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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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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