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부패관헌에 짓밟힌 분노의 폭발을 상징하는 농민군의 아크로바트.
부패관헌에 짓밟힌 분노의 폭발을 상징하는 농민군의 아크로바트. ⓒ 곽교신
'6·15통일대축전' 남측 행사의 하나로 오는 15일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릴 예정인 남한의 창작가극 '금강' 공연단은 지난 달 10일부터 시작된 연이은 밤샘 연습의 강행군에도 피곤을 느낄 겨를이 없어 보였다. '앞으로 남은 9일은 잠을 자지 않겠다'는 공연진의 다부진 각오는 이 작품에 바치는 그들의 뜨거운 열정을 느끼게 한다.

이번에 공연되는 '금강'은 민족사의 수난을 사랑으로 은은히 바라보는 장시(長詩)를 많이 쓴 민족시인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을 바탕으로 한 창작가극이다. 조선 말기 난세에 관군과 외세로 상징되는 집권층에 맞서 농민을 비롯한 기층 서민들이 생존권 쟁취 차원의 저항을 벌인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다뤘다.

폭발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동학이란 주제에 '하늬'와 '진아'라는 농민 출신 남녀의 사랑을 얹고, 농민혁명의 와중에 두 남녀의 사랑이 깨지는 애절한 부제를 얹었다.

이런 감정선(線)의 배치는 연출하기에 따라 또는 관객이 보기에 따라서 부제가 주제를 넘나들 염려는 있지만, 폭발하는 주제가 극단적으로 무제한 상승하는 것을 부제가 적절히 제어하고, 무대의 제어에 관객은 반사적으로 극 중으로 몰입되며 오히려 감정을 상승시키는 구조를 갖는 의도적인 구성이다.

이른바 '혁명전투'에는 사사로운 감정의 개입을 허락지 않는 북측의 잣대로는 이 작품을 어떻게 볼까 하는 점도 관심거리이다.

외세를 상징하는 대형 가면의 등장. 미국의 스텔스기 배치를 6.15 축전 방북인원 축소 요구 근거로 댄 북측의 반응이 궁금하다.
외세를 상징하는 대형 가면의 등장. 미국의 스텔스기 배치를 6.15 축전 방북인원 축소 요구 근거로 댄 북측의 반응이 궁금하다. ⓒ 곽교신
이 작품은 '외세에 저항하는 기층 민중의 항거'라는 남과 북이 공유할 수 있는 민족자주 정신이 작품의 주제이며 격한 감정을 적절히 제어하는 세련된 구조도 지니고 있어 이번 평양 공연에 대한 북측의 반응이 주목된다.

리허설이 끝난 후 일부 초청객은 평양 공연을 의식해 연출자에게 대사의 세밀한 부분에 대해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등 진지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날 공연은 일부 출연자가 불가피한 일정으로 빠지고 조명, 장치, 음향 등을 최소한으로 갖춘 가운데 열린 "마지막 연습 성격의 무대"(김석만 연출의 말)였지만, 역사적인 평양 공연을 앞둔 리허설이라는 기대에 출연자들과 초청 관객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과연 무사히 평양에서 막을 올릴 수 있을 것인가 염려하는 무거운 분위기는, 정치권이나 시민 단체의 의견 대립과는 또 다른 긴장감으로 무대를 눌렀다.

연출을 맡은 김석만(53·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평양에 갈 수 있다 아니다의 생각을 버리고, 그간의 연습 결과를 솔직하게 보여드리고 싶다. 인원 축소로 공연에 어려움이 많지만 꼭 평양에서 무대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공연을 불과 10일 앞두고 무대 위 출연진 23명을 포함, 공연 지원 인원을 60명으로 제한하는 일이 얼마나 황당했을지는 물을 여지가 없으리라.

최고령 출연자인 원로배우 장민호(81)씨는 공연 내내 목소리가 감회에 젖어있었다. 그가 맡은 '아소'역이 동학군의 정신적 지도자 역이어서 캐릭터 표현상 그렇기도 했겠지만 장민호는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이다.

장씨가 아니더라도 우리 국민치고 두 세 다리 건너 실향민 아닌 사람이 드물겠지만, 이런저런 인연으로 북쪽 땅과 연결되는 배우가 많아 연습장 분위기가 유달리 뜨거웠다는 스태프들의 말에서도 이 공연의 열기는 짐작이 된다.

농기구를 무기로 삼고 필사(必死)의 각오를 다지는 농민군의 비장한 출정 결의.
농기구를 무기로 삼고 필사(必死)의 각오를 다지는 농민군의 비장한 출정 결의. ⓒ 곽교신
6·15통일대축전 남측준비위원회 백낙청 상임대표 등 방북 대표단 9명이 4일간의 평양 방문을 마치고 7일 돌아오면 방북 인원의 세부 확정 등 보다 확실한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이는데, 김석만 교수 등 공연진들은 "우린 꼭 간다"는 한 마디로 평양 공연의 강한 의지를 밝혔다.

백낙청 상임대표는 지난 3일 방북 출발 전 언론에 "남북 민간끼리의 약속은 정세의 변화와 관계없이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백 대표가 북으로 떠난 3일에는 진보단체와 보수단체가 미대사관 앞에서 정반대의 주장으로 노상 기자회견을 열었는가 하면, 보수 경향의 정당과 언론에서 "평양공연에 연연하지 말라"는 주장을 펴는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7일 돌아오는 백낙청 상임대표의 가방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이 공연은 평양 공연을 마친 후 남쪽 관객을 위해 6월 28~29일 양일간 경기도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무료로 공연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공연단이 최종 리허설 무대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한성대 측에서, '낙산관'의 무대를 무료로 내주어서 라허설 공연이 성사되었음을 독자들께 전합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