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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중 일각에 전두환씨 얘기가 심심찮게 나돈다고 한다.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 등장하는 전두환 소장이 멋있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사모'(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까지 결성됐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이는 드라마가 갖는 극적 요소와 방송 전파의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새삼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게 한다.

언젠가 붙잡히지 않고 기록적으로 여러 번 도둑질을 해온 범죄자를 미디어들이 '대도'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보통 도둑은 할 수 없는 신출귀몰한 기술로 도둑질을 했다고 해서 대도라고 했고 시중 일각에서 화제가 됐다. 한편 엉뚱한 사람들은 그 대도를 미화했다. 범죄인인데도 대중적인 호기심과 인기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야말로 대중사회의 병적 현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전두환씨는 대법원 확정 판결에 의한 내란집단의 수괴

전두환 소장은 1979년 12·12군사반란과 80년 5·17 광주항쟁 살상 진압을 통해 정권을 찬탈한 내란의 수괴다. 이는 1997년 대법원이 내린 최종 확정 판결의 내용이다. 당시 그는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거기다 부정축재로 2천여억원의 추징금까지 부과 받았다. 그후 김대중 정부가 이른바 국민 통합과 화해를 내세우면서 그를 공범들과 함께 사면했다.

전두환씨 사면을 김대중 정부의 최대 실정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용서와 화해라기 보다는 상대의 조직 폭력 집단과 같은 응집력과 지역주의에 굴복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전두환씨는 석방됐지만 부정축재한 돈을 갚아야 한다. 그런데도 돈이 없다며 버티고 있어서 검찰은 근근이 은닉 재산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전두환씨는 자기 재산이 29만원밖에 안된다면서도 골프 등 나들이 행사 때면 수십 명의 부하들을 대동하고 빅 이벤트를 꾸민다. 국민들이 울화통 터지는 아이러니가 바로 이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5공 정권' 방식으로 처리했다면 벌써 여러번 붙잡혀가 두들겨 맞거나 녹화사업장에서 기합 받기에 정신 없었을 터다.

살상과 언론 탄압의 야만과 광기를 동경하는 저주 받을 병

대법원 판결은 그대로 실정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이에 따르면 전두환 소장은 분명 국가 권력을 훔친 도둑이라 해야 할 것이다. 마치 '대도'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는 것처럼 그런 범죄자를 영웅처럼 여긴다면 대중사회의 병적 현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살상 진압과 언론 공작을 위한 기자 강제 해직과 '땡전(全) 뉴스'에 대한 동경이라니, 병이라도 참으로 저주 받아야 할 병이다.

'박정희 향수'도 문제지만 아직 그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단죄할 법적 판결이 없다. 향후 과거사법에 따라 여러 인권 탄압과 의혹 사건들을 규명하고 나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전두환 소장에 대해서는 분명한 법적 판결이 나와 있다. 전두환 정권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근거가 된 '5·18특별법'이 소급입법이어서 위헌적이라는 궤변을 늘어 놓는다.

'소급입법'이란 행위 당시의 법률로는 범죄가 되지 않는 일에 대해 나중에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범죄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12·12와 5·17은 그 당시 실정법으로 분명한 범법 행위였다. 다만 모든 범죄는 그 행위가 끝난 후 일정한 시간 내에 처벌해야 하는 시효가 있기 때문에 이른바 시효에 관한 논쟁이 일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내란 행위가 끝난 시점이 언제인지, 그리고 그것을 고발하고 수사할 수 있었던 자유화의 시기가 언제부터인지에 관한 논란이었다. 이것을 5공 측에서 소급입법 문제로 강변하지만 그것은 가당찮은 둔사에 지나지 않는다.

전두환씨 개인에 대한 미화에 이어 5공 정권에 대한 재평가 시도가 또한 심각한 문제다. 첫째는 전두환 소장에 의해 5공 정권이 수립되지 않았다면 큰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고 따라서 그런 행동들이 불가피했다는 역사 날조다.

시민 시위 현장에 무자비한 특수부대 투입해 혼란 조작

이는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 이후의 상황을 분석해 보면 애들도 속여 먹을 수 없는 유치한 날조다. 5·18 광주시민 항쟁이 불붙자 내란 집단은 진압 부대로 공수특전단을 투입했다. 공수부대는 적지에 투입해서 거의 초인간적인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 훈련된 특수부대다. 시민시위를 진압하라고 그런 사나운 부대를 보낸 것이 과연 정상적인 판단으로 가능한가. 불 붙은 시위대를 일부러 살상 과잉 진압해서 기름을 부으려는 저의였다. 사회적 혼란상과 국가 위기를 조장해서 군부의 강권 통치자가 나서야 한다는 여론을 조작하기 위한 음모였다. 그런 여론 조작을 위해서 양심적 언론인들을 대량 해직 시키는 탄압을 자행한 것이다.

내란의 전주곡이던 12·12를 보아도 정치 장교 비밀사조직인 하나회가 군권을 장악하기 위한 군사 반란이었다. 당시 계엄령 상황에서 국가 수뇌부는 대통령- 국방장관- 계엄사령관으로 구성됐다. 그 아래에 보안사령부를 중심으로 한 합동수사본부가 있었다. 그런데 합수부가 직속 상관인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조사한다면서 총격 납치했다. 직속 상관이 의혹이 있어서 수사해야 한다면 그 차상급자인 국방장관과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 더구나 계엄 상황에서 계엄사령관을 통수부에 보고하지 않은 채 강제 납치한 것은 국헌문란 행위에 해당한다.

12·12는 정치적 군사적 차원 넘어선 반인륜적 반란

그날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은 계엄사령관 납치로 그친 것이 아니다. 전두환 소장의 지령을 받은 박희도 준장은 자기 휘하의 1공수여단을 불법 동원해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총격해서 강제 점령했다. 또 3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은 자신의 직속 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을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적군을 향한 것에 못지 않은 총격이 가해졌다. 정 소장은 총상을 입었고 그 부관 김오랑 소령은 그 자리서 사망했다. 또 수도경비사령부에서 그 헌병장교들이 직속상관인 사령관 장태완 소장을 역시 총으로 위협 체포했다. 여기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하소곤 소장이 총격을 받아 반신 불수의 몸이 됐다.

군사반란 과정에서 가해자는 모두 비밀사조직 하나회 장교들이었고 피해자는 정규 지휘계통의 직속 상관들이었다. 그래서 12·12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반인륜적 반란이다. 보안사를 중심으로 한 하나회 집단이 그렇게 무자비한 총격으로 정규 지휘 계통을 짓밟고 군권을 탈취한 후 정권 찬탈을 위한 내란이 본격화된 것이다. 그래도 5공 정권이 경제 성장 10%에 단임 약속을 지킨 것은 공적이라고 강변한다. 마치 도둑이 그래도 몽땅 다 훔쳐가지 않고 조금 남겨 놓았으니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얘기나 똑같다.

가해자와 피해자 아닌 내란과 정통성의 구도

전두환 소장의 범죄 행위를 언필칭 카리스마라는 말로 미화시키기도 한다. 그것은 유교 문화권의 봉건적 의리를 이용한 조폭 두목에게서도 볼 수 있는 카리스마다.

▲ 김재홍 의원
대통령 아닌 대통령으로서 전두환씨는 부패 금권 정치로 이 땅의 정치 문화를 타락시키고 정경유착을 악화시켰다.

또 그는 지역주의에 기생한 봉건 영주 같은 통치술을 구사했다. 5공 정권에 관한한 가해자와 피해자, 또는 여당과 야당으로서 관점이 다르다는 논리가 존재할 수 없다. 국가-국민-역사에 대한 내란이 일어났고 그것을 저지하려는 정통성이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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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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