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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연구로 박사학위 1호를 기록한 서중석의 <한국현대사>
현대사 연구로 박사학위 1호를 기록한 서중석의 <한국현대사> ⓒ 정근영
우리 할아버지 정석규 선생은 1943년 무더운 여름 일본 후쿠오카현 유쿠하시 경찰서에서 붙잡혀 부산 수상경찰서로 압송되었다. 거기서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 끝에 창밖에서 흰눈이 펄펄 휘날리는 성탄절인 12월 25일 36살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하얀 눈밭 위에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해 여름 부관연락선을 타고 귀국을 하던 조선인 두 젊은이, 기무라와 야마시다. 기무라의 수첩에서 '배일가'의 가사가 나왔다. 그때 할아버지는 후쿠오카현 스이키, 조선인 정오문의 '함바집'에서 서사 일을 하면서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조선역사를 가르치는 등 이른바 독립운동을 하였다. 할아버지와 같이 정오문의 '함바'에서 기숙했던 기무라(이경률이라고도 하지만 정확하지 않음)의 수첩에서 나온 '배일가'는 물론 할아버지 정석규 선생한테서 배운 것이었던 것이다.

내가 역사를 전공하지는 않았으면서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것은 내 몸 속에 할아버지 정석규 선생의 애국의 피가 흐르고 있는 탓일까. <삼국사기> <삼국유사> <한단고기> <화랑세기>에서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이덕일·이희근의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이덕일 역사서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왕조실록, 신복룡의 <한국사 새로 보기>,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강준만의 <한국현대사 산책>에 이르기까지 내 머릿속에 다 부어 담기엔 너무 힘든 제법 많은 국사책들이 책장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나라 역사를 제대로 안다고 자신할 수가 없다. 다수의 역사책을 달리는 말 타고 산 구경하듯 스치고 지나간 느낌이다. 이제 단 한 권이라도 정확한 역사책을 몇 번이라도 읽어 그 속살을 완전히 꿰뚫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사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제법 반듯한 대한민국사

원불교의 정산 종법사(송규 1900~1962)는 원불교 창건사 서문에서 "역사는 세상의 거울"이라고 했다. 그 까닭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일의 흥망성쇠가 다 이 역사에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역사를 보는 이는 글자에 의지하여 땅이름, 사람이름, 연대만 기억하는 것으로 역사를 제대로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 때의 대세와 등장인물의 심경과 그 법도 조직과 그 실행 경로를 잘 알아야 역사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라고 했다.

과거사 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 그것은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어 있다. 비단 우리나라에서 뿐이 아니라 한중일 동양 삼국은 지금 역사를 두고 외교 분쟁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그래서 동양 삼국의 역사를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그 결과 삼국의 역사가 참여해서 공동의 역사책을 펴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삼국 공동의 역사책 발간에 즈음해서 '역사는 미래를 내다보는 창'이라고 했다. 우리는 역사를 읽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하겠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다면 더욱 다행한 일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젖어 있는데 서중석의 <한국현대사>가 나왔다. 바로 이 책이다. 우리 한국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우리 한국의 앞날을 내다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전공한 박사학위 소지자로서는 처음으로 내는 책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에 관해서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 너무도 다르다. 그래서 우리 역사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서술한 역사책의 필요성은 더욱 높다. 이 책은 이런 우리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책이다. 우리의 모습을 바로 보기를 원하는 이라면 모든 편견을 버리고 서중석의 <한국 현대사>를 펴보자.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광인효현 숙경영 정순헌철 고순전" 초등학생도 달달 외우는 근세조선 왕조다. 나 역시 사오십년 전 초등학생 시절에 조선왕조를 외웠다.

그러나 이른바 '대한민국사'에 이르면 외우고 자실 것도 없다. 대통령 하면 이승만, 박정희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박정희 죽고 벌써 26년, 제법 반듯한 대한민국사를 갖게 되었다. 찌든 가난과 인권탄압의 캄캄한 굴속을 벗어나서 이제 겨우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승만의 민간독재, 박정희의 군사독재의 길고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동안 우리 국민을 질식할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였다. W이론의 창시자로 유명한 서울대학교의 이면우 교수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경찰의 장발 단속에 걸렸다. 그때 한 제자가 나서서 "이 분은 우리 교수님인데요" 하니까 그 경찰관은 "이놈아 네가 교수면 나는 대통령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교수가 이 정도로 당했다면 이 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국가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은 것인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노동조합의 시위를 해산하기 위해 똥을 뿌린 사건을 다룬 내용의 본문
노동조합의 시위를 해산하기 위해 똥을 뿌린 사건을 다룬 내용의 본문 ⓒ 정근영
그때는 이 나라의 모든 공무원과 지도자는 박 정권의 선거 운동원이 되어야 했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사들까지 유신계몽과 유신선거 운동원으로 내몰려야 했던 시절이었다. 선거 운동은 물론 육성회비를 받기 위해 수십 리 길을 걸어 가정방문을 다녀야 했으며 반상회 지도 공무원으로 내몰려 9급 말단 면 직원 앞에서 훈시를 들어야 했다.

박정희 유신시절, 온 나라는 멸공 구호로 지축이 흔들리고 있었다.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무찌르자 북괴군, 이룩하자 유신과업" 예비군 훈련을 가면 한 시간 교육이 끝나고 10분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이 멸공구호를 시간마다 외쳐야 했다. 그런가 하면 초등학교의 운동회에서는 김일성 화형식 놀이가 빠지지 않았고 12시 55분만 되면 어김없이 5분 드라마 '김삿갓 북한 방랑기'가 라디오 전파를 타고 온 나라로 퍼져 나갔다.

박 정권은 국민의 주권을 유린하여 대통령을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형식적인 선거로 뽑도록 했다. 국회의원의 3분의 1(77석)도 대통령이 임명하였다. 나머지 국회의원도 여당의 경우 대통령의 의중을 벗어나서 공천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심지어는 야당의 국회의원도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할 수 없었다.

총선에서 야당이 여당보다 1.1%를 더 얻어 승리했다. 하지만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68석을 얻고 야당인 신민당은 61석을 얻어 야당의 의석은 국회의석의 3분의 1도 얻지 못했다. 역사에서 이처럼 완벽한 독재를 찾기도 힘들 것이다.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는커녕 아예 헌법을 입에 담을 수 없게 했다. 이 나라에 법은 없었다. 오로지 박정희의 명령만 있었다.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한 대학교수는 교단을 쫓겨나고서도 감옥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도망을 다녀야 했다. 계엄령, 위수령, 긴급조치는 온 국민을 옥죄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최루탄을 터뜨려 온 국토가 최루탄 연기 속에 잠기고 온 백성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때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온 국민의 저항은 하늘을 찔렀다. 유학생들은 간첩으로 몰리는가 하면 수많은 지식인들이 자유를 찾아 외국으로 망명을 해야 했다. 박정희 정권의 국민탄압은 세계적인 저항운동을 일으켰다. 반민주적 국민탄압을 보다 못한 시노트 신부, 오글 목사 같은 외국인 선교사들까지 유신체제에 저항하였다. 박 정권은 이들 양심적인 종교인은 물론 진실을 전파하는 외국인 언론사 기자들까지 추방했다.

박 정권 18년은 독재정권을 지키려는 독재자들과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온 국민의 저항의 역사였다.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생을 중심으로 부마항쟁의 깃발은 올랐다. 대학생뿐만이 아니라 온 시민이 합세하게 되여 부산은 무정부 사태에 이르렀다.

이 사태를 두고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은 캄보디아 킬링필더처럼 수백만 부마 시민을 죽여서라도 정권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이런 비극을 막아야 하겠다는 결심을 한 정보부장 김재규는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를 시해함으로써 박정희 독재는 막을 내렸다.

만약 김재규 정보부장의 의거가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부산 시민, 마산 시민이 희생되었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으로서 박 정권 시대를 그리워하고 박정희를 존경할 사람이 있을까. 박정희는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들어선 암과 같은 존재였다. 박정희를 우리 국민의 가슴에 놓아두고 우리 국민은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없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또 다른 군사 쿠데타를 유발할 수도 있겠기에 하는 말이다. 박정희 향수를 부추기는 수구세력들은 심지어는 군사쿠데타를 공공연하게 부추기고 있다. 정말 우려스럽다. 박정희의 죽음으로 유신 독재가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김대중의 수평적 정권교체와 노무현의 승계로 민주주의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목이 된 것은 아니다.

5·18로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했고 그 뒤 몇 차례의 선거로 박정희의 향수가 도지고 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또 한번 우리는 전두환의 꼭두각시가 되어야 했다. 그때 이 나라 공무원들은 온 시내를 돌며 전두환을 지지하는 시위를 해야 했다. 우리 온 국민은 약 먹은 파리 떼처럼 비실거리면서 전두환의 뒤를 따라야 했다.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종식한 부산이 그리고 마산이 이제 박정희 향수로 박정희의 그림자를 쫓고 있다.

서중석의 <한국 현대사>로 대한민국의 모습을 바로 살펴보자.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의 독재에 맞서서 피를 흘렸는가.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두 번 다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더 이상의 피가 요구되어서는 안 된다.

박 정권 시절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200년 걸려 이루어 놓은 민주주의를 겨우 반세기 만에 이루어 놓았다. 조롱의 눈길로 비웃던 그들이 이제 경이의 눈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경이의 눈으로 우리를 보게 된 것은 독재에 맞서 싸워온 우리 국민이 용기이지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우리는 <한국현대사>를 통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자. 미래를 위한 오늘 우리가 할 일을 알아보자.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덧붙이는 글 | 서중석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는 2005년 4월 8일 초판이 나왔으며 사진과 그림, 각종 통계 자료 등으로 객관적인 한국 현대사를 밝힌 역사책이다.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우리 역사책을 읽고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자. 

웅진 지식하우스 펴냄, 360여쪽 책값 1만8000원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 개정증보판

서중석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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