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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저녁, 종일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비 오는 날은 콩을 볶아 먹든지, 부침개를 부쳐서 막걸리 한잔을 걸치면 제격입니다.

"마누라! 비도 오는데 막걸리 한잔 합시다!"
"무슨 말씀! 막걸리는 '꺽, 꺽' 트림을 하면 냄새도 지독하고, 나는 무엇보다도 머리가 아파서 싫어요!"


아내는 무척 단호했습니다. 달래도 보고, 애원도 해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좋다! 그 까잇거, 나도 오기가 있다' 나는 슈퍼에서 맥주 한 병을 사왔습니다. 그리고 냉장고를 뒤져 오징어포를 찾아냈습니다. 나는 연거푸 맥주잔을 입에다 털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거실에다 이불을 깔고 잠을 청했습니다. 아내는 몇 번이나 들락거리며 눈을 흘기지만 나는 그냥 잠이 들었습니다.

어제, 저녁밥을 먹고 나서 다시 거실에서 서성거렸는데, 아내가 부침개를 부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시위가 통했다'고 쾌재를 부르면서도, 모른 척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침개가 기분 좋게 지글거리며 익는 소리와 구수한 냄새는 나의 인내심에 바닥을 드러내게 했습니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아내는 절대 카메라는 '노'라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아내는 부추와 당근을 적당한 크기로 썰고, 고추와 오징어도 잘게 썰어 저며서 넣었습니다. 샛노랗게 익은 부침개는 참 맛있어 보입니다. 나는 급히 손으로 떼어 입에 넣습니다. 고소한 맛이 입속으로 전해집니다. 아내가 쫓는 시늉을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다시 한입을 베어 물었습니다.

▲ 부추 부침개와 막걸리 두잔
ⓒ 한성수
작은 상위에 막걸리와 부추 부침개가 놓이고 우리는 러브 샷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깔깔거렸습니다. 아내는 '막걸리가 맛있다'며 거푸 들이켰습니다. 내가 잔을 빼앗는데도 이제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런데 기어코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혀 꼬부라진 말을 하더니 기어코 상을 밀쳐서 술잔이 넘어져버렸습니다. 바지가 젖고 바닥에도 막걸리가 흥건히 고였습니다. 나는 걸레로 훔쳐내는데, 마누라는 생글거리며 내 손을 잡았습니다.

"내가 자기 만나서 얼마나 행복한 줄 아나? 내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했기에 당신을 만났을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내 발을 씻겨 주라!"

나는 마누라의 양말을 벗겼습니다. 세숫대야에 물을 붓고 나는 아내의 발을 살며시 담갔습니다. 건조하고 딱딱한 마누라의 발에 물기가 젖어들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내의 발을 어루만졌습니다.

"당신도 못난 남편 만나서 참 고생이 많았다."

갑자기 울컥해져서 올려다보았더니 아내의 눈도 촉촉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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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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