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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뽕나무 열매 '오디'가 벌써 익기 시작했습니다.
ⓒ 박미경
전국에 비가 내리던 지난 1일, 제가 사는 화순에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습니다. 무슨 노래 가사처럼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사무실을 정리하고 화순이 농촌인지라 물꼬를 트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촌부들의 사진이나 한 컷 담아보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농땡이를 치자는 게 아니라 비가 와서 거추장스러운 정장을 벗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빗발이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집이 9층인데 비가 위에서 옆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대각선을 그리며 물보라(?)를 날리며 떨어지더라구요.

그건 ‘은근히 찌는 날씨에 시원하게 내리는 비’가 아니라 마치 태풍을 연상케하는 비였습니다. “선생님이 우산 씌워서 보내주겠지!” 하며 느긋해 하던 남편은 강혁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자 “어? 비가 장난이 아니네! 우리 아들 날아가면 안 된디” 하더니 허겁지겁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갔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비보다 대각선으로 내리는 비에 온몸이 쉽게 젖기 마련이지요. 남편과 아이가 흠뻑 비에 젖어 들어온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웃기죠? 그렇게 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 순간이 지나자 빗줄기가 잠잠해지는 겁니다.

비록 흐리긴 하지만 날도 훤하고 빗줄기도 잠잠해져서 차를 몰고 논두렁으로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역시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농부들이 우비를 입고 혹은 우산을 쓰고 한 손에 괭이며 삽을 들고 물길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사진 몇 컷을 찍고 난 후 집으로 향하는데 눈 앞에 까맣게 익은 ‘오디’를 단 뽕나무 한 그루가 보였습니다. 벌써 오디가 익었구나 싶은 마음에 차에서 내려 잘 익은 오디 몇 개를 따고 있자니 남편이 옆에서 한 마디 합니다.

“****에 가면 뽕밭이 있는데 오디가 아주 많이 익었다고 아는 형님이 따다가 5일장에 내다 팔자더라. 거기 가보자.”

부창부수라고 “정말?” 하고는 씩씩하게 따라 나섰습니다. 과연 수백 그루(이제 심어놓은 작은 나무들까지 포함해서 입니다)가 늘어선 뽕밭 가장자리를 따라 수령이 오래된 뽕나무에는 까만 오디가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남편과 저, 강혁이는 각자 나무가지를 붙잡고 오디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 강혁이는 모기가 이마를 물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디를 따 먹느라 바쁩니다.
ⓒ 박미경
한참 오디를 따다보니 강혁이의 행동이 참 묘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학원이며 놀이방에서 돌아올 혜준이, 남혁이와 함께 먹으려고 자동차의 트렁크를 뒤져 미리 준비한 비닐봉지 안에 열심히 오디를 따서 담고 있는데 강혁이는 열심히 따서 자기 ‘입안’에 담고 있는 겁니다.

참내 기가 막혀서…. 거기다 엄마 아빠가 열심히 따서 담아놓은 봉지 안에 든 오디를 보더니 아예 봉지를 붙잡고 졸졸 따라다니면서 오디를 꺼내 먹더라구요. 안 되겠다 싶어서 “문강혁! 너 저쪽으로 가서 네 것은 네가 따먹어!” 했더니 이제 7살된 아들 녀석, 뭐 나무는 키가 크고 지는 키가 작아서 오디를 먹을 수가 없다는 둥 엄마가 딴 오디가 훨씬 더 맛있다는 둥 하면서 툴툴대더라구요.

어쨌거나 내리는 비를 맞으며 눈에 보이는 오디는 모두 따서 봉지 안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들 앞에 오디를 꺼내 줬더니 혜준이는 자기는 안 데려가고 동생만 데려갔다고 투덜거리더군요. 깨끗이 씻어 접시에 담아 주니 4살 박이 남혁이는 아무리 ‘오디’라고 말해줘도 “오디 아니야, 까만 딸기야!”하면서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먹더니 종이 위에 꾹꾹 눌러가며 도장을 찍습니다.

뭐 사는 재미가 이런 거 아닐가 싶습니다. 어때요. 저희 가족 비 내리는 날 날궂이 한 번 재미있게 잘한 것 같지 않나요? 하지만 저희 가족의 날궂이에도 불구하고 다음날인 2일인 햇빛이 쨍쨍 화창했답니다.

▲ 우리 강혁이 입, 정말 크죠?
ⓒ 박미경

▲ 오디를 까만 딸기라고 우기던 남혁이는 결국 오디를 먹기보다는 도장을 찍으며 노는 편을 택했습니다.
ⓒ 박미경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화순의 소식을 알리는 디지탈 화순뉴스(http://www.hwasunnews.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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